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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선 제사 지내기 전 이분께 꼭 허락을 받아야 해요"

등록 2017.10.03 10:2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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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뉴시스】조수진 기자 = 여연 작가가 지난 9월30일 오전 제주시 도련동에 위치한 자택에서 최근 펴낸 인문기행서 ‘제주당올레’를 설명하고 있다. 2017.10.03. susie@newsis.com

【제주=뉴시스】조수진 기자 = 여연 작가가 지난 9월30일 오전 제주시 도련동에 위치한 자택에서 최근 펴낸 인문기행서 ‘제주당올레’를 설명하고 있다. 2017.10.03.  [email protected]


인문기행서 ‘제주당올레’ 펴낸 작가 여연 인터뷰
문전제, 신구간…1만8천신과 함께 하는 제주사람의 삶
“제주의 신화는 허구가 아닌 귀중한 역사 자료”

【제주=뉴시스】조수진 기자 = “제주도에서는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전에 문전신(門前神)에게 제사를 먼저 지냅니다. 조상이 집에 들어오려면 문을 지키는 문전신에게 우선 허락을 구해야 하거든요. 제사라는 유교 풍습에 제주 지역의 무속 신앙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죠.”

 지난 9월30일 제주의 역사와 신화를 연구하고 있는 작가 여연이 신간 ‘제주당올레’를 발표했다. 이날 오전 제주시 도련동에 위치한 작가의 자택 앞마당에서 가을 단풍처럼 붉은 옷을 입은 그를 만났다.

 ‘제주당올레’는 여연과 민속학자인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 소장이 제주 내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신당을 탐방한 기록들을 모은 기행서이다. 길 안내는 물론 당 본풀이(신화), 해설 등이 곁들여져 있다. 제주 신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나 색다른 올레길을 찾으려는 관광객들에게 여행 가이드북으로도 손색이 없다.   

 당올레는 예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신이 머무는 ‘신당(神堂)’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 불리기도 한다. 대부분의 신당이 숲속에 숨겨져 있어 당올레는 신비롭고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할망(할머니)들이 과일 같은 제물을 넣은 구덕(대바구니)을 등에 지고 당올레를 걸으면 다른 사람이 불러도 대답도 하지 않고 앞만 보고 갔다고 합니다. 부정 탈까봐 그랬던거죠. 그래서 당올레는 일반 제주올레와 달리 호젓하고 은밀한 것이 매력입니다.”

【제주=뉴시스】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송당본향당. 제주 신당은 대부분이 마을 안쪽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위), 송당본향당(아래). (사진=제주관광공사 홈페이지)

【제주=뉴시스】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송당본향당. 제주 신당은 대부분이 마을 안쪽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위), 송당본향당(아래). (사진=제주관광공사 홈페이지)



 1만8000신들의 고향이라 불리는 제주도는 ‘절 오백, 당 오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당이 많다. 제주신화연구소에 따르면 실제로 제주 내 230여개에 이르는 신당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름만 남아 있는 신당만 400개가 넘는다.

 이렇듯 다른 지역에 비해 제주도에서 무속신앙이 발달한 수 있었던 이유는 섬이라는 지리적 요인 때문이다.   

 “제주도는 절해고도(絶海孤島)라는 말이 있죠. 바다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외로운 섬이라는 뜻입니다. 제주는 예전만 해도 땅이 척박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 먹고 살기 힘든 곳이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섬에서 자꾸 빠져나가니까 조선시대에는 아예 출입금지령을 내려 제주 사람이 바다 건너로 가지 못하게 했죠. 제주도는 점점 더 고립됐겠죠.”

 고립된 섬이다 보니 다른 지역과의 교류도 드물었다. 그렇게 제주 지역의 무속 신앙은 길게는 수천 년이 넘도록 지금까지 남아있게 됐다. 이렇다보니 제주 신화는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20여년을 국어 교사로 지내던 여연 작가가 제주 신화에 빠지게 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중앙 위주로만 기술되다보니 변방인 제주도의 역사는 자료로 남아있는 경우가 잘 없습니다. 제주 사람조차 제주 역사를 잘 모르죠. 그런데 신화를 들여다보면 마을이 어떻게 형성됐고 어떤 문화가 발달했는지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얽힌 신화는 서울에서 내려온 ‘백주또’라는 여신과 한라산에서 사냥을 하던 ‘소천국’이 결혼을 하며 시작한다. 이는 사냥을 하며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둘의 아들 중 한 명은 아버지의 수염을 잡아당긴 죄로 바다에 버려졌다가 용궁의 공주와 결혼한다. 이는 어촌 마을이 형성하는 과정을 뜻한다. 

【제주=뉴시스】조수진 기자 = 제주 신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작가 여연이 지난 9월30일 오전 제주시 도련동에 위치한 자택 앞마당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10.03. susie@newsis.com

【제주=뉴시스】조수진 기자 = 제주 신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작가 여연이 지난 9월30일 오전 제주시 도련동에 위치한 자택 앞마당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10.03. [email protected]



 제주 지역의 무속 신앙은 제주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신구간(新舊間)이다. 절기상 대한(大寒)이 지나고 닷새되는 날부터 (立春)이 되기 사흘 전까지 일주일 정도의 시기를 일컫는다. 이때는 집안의 신들이 업무 교대를 위해 하늘로 올라가 있는 기간이다. 제주 사람들은 땅 위에 신들이 없는 이 시기에 맞춰 이사를 하거나 집을 고친다.

 조상 제사를 지내기 전에 문전제를 지내는 풍습도 제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제사가 끝나면 술잔에 제사 음식을 조금씩 풀어 지붕 위에 올려둔다. 잡신(雜神)을 위한 제물이다.

 작가는 이번 책을 펴내면서 행정이 당올레와 신당을 보존하는 방식의 접근법이 아쉬웠다고 토로했다.

 “당올레 중 가장 좋아하는 와산당올레를 가끔 가는데 최근 주변에 타운하우스 공사를 하느라 그 아름다운 길이 파헤쳐져 있더라고요. 또 이곳을 정비를 한다며 신목(神木) 위를 뒤덮은 넝쿨식물을 다 쳐내고 주변에 담을 쌓아놓고 야외 탁자까지 설치돼 있었어요. 신당이 본디 경건한 장소인데 그에 맞지 않게 보존하는 모습들이 많이 아쉽습니다.”

 작가는 신화를 통해 제주도의 역사를 발굴하고 알리는 일을 꾸준히 이어나갈 계획이다. 지금은 제주신화연구소의 한 모임에서 열두 개의 본풀이를 해석하고 쉽게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마무리되는 대로 신화 관련 책을 출판할 예정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나서는 기자에게 그는 이번 황금연휴 기간 송당본향당과 와산당올레를 꼭 가보라며 일러줬다.

 “송당본향당은 걷기 쉬워서 가족끼리 가기 좋은 곳이에요. 당올레를 걷고 당 바로 뒤편에 있는 당오름까지 갔다오는 코스로 다녀오세요. 또 와산당올레는 차도 거의 안 다니고 정말 호젓하고 예쁜 산길입니다. 들꽃을 보며 숲길을 걷다보면 넓은 초원이 펼쳐진 길이 나오는데 그 풍경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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