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특활비 전달 경로 법정 재구성…007작전 같았던 '상납'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국정원 특활비'혐의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이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을 받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8.01.19. [email protected]
광화문 세실극장 앞에서 청와대 차량 타
연풍문 통할 땐 방문목적 '다른 파견 직원'
"치사하다 느꼈고, 창피하고 기분 나빴다"
【서울=뉴시스】김현섭 기자 = 19일 열린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의 '특활비' 혐의 재판에는 남재준 전 국정원장의 전 특별보좌관 오모씨와 전 비서실장 박모씨가 나와 돈 전달 경위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전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 심리로 열린 이날 재판에서 나온 두 사람의 증언으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가 청와대로 전달된 과정을 재구성해봤다.
남 전 원장이 청와대로부터 특활비 일부를 보내라는 지시를 받은 건 국정원 직원들 자녀 대상의 어린이날 행사가 열린 2015년 5월이었다. 그가 국정원장으로 부임하고 약 2개월이 된 시점이었다.
남 전 원장은 산책 중 청와대 비서관으로부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 특활비 일부를 보내달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이 통화내용을 오씨에게 전하면서 "아무리 형편없고 나쁜 놈들(비서관들)이라도 대통령 속이고 날 농락하는 짓은 않겠지"라고도 말했다. '실세' 비서관들이 중간에서 농간 행위를 할 수도 있다고 걱정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국정원 특활비'혐의 이재만 전 청와대 비서관이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을 받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8.01.19. [email protected]
남 전 원장에게 처음 전화를 한 비서관에 대해 오씨는 "명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안 전 비서관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 전 원장 시절의 국정원 특활비 상납은 이렇게 시작됐다.
전화를 받고 열흘 정도가 지났을 때 남 전 원장이 인터폰으로 오씨에게 "비서실장(박씨)을 너한테 보낼테니 준비한 것을 줘라"라고 지시했다.
이에 오씨는 5만원권 5000만원을 박스 한 상자에 담고 그걸 다시 서류봉투에 넣어 테이핑을 해 박씨에게 줬다. 오씨가 돈을 준비하고 박씨가 전달책 역할을 하는 형태가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오씨는 창피하다는 기분이 들었고 청와대가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급한 사정으로 인한 1회성 요구인 줄 알았는데 반복되면서 기분이 나빴다고도 한다. 그래서 박씨에게도 몇 달이 지나서야 안에 들은 것이 사실은 돈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박씨는 청와대로 직행하지 않았다.
그는 국정원 차량을 타고 광화문 세실극장 앞까지만 갔다. 그리고 거기서 이 전 비서관이 보내준 차량으로 갈아타고 출입 신고도 없이 청와대 총무비서관실까지 곧장 갔다. 총 12번을 갔는데 박씨는 10번 정도를 이런 방식으로 간 것으로 기억했다.
차량 없이 연풍문(청와대 민원인 안내시설)을 거쳐서 가기도 했다. 이 때는 출입신고서를 기재해야 했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국정원 특활비'혐의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이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을 받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8.01.19. [email protected]
다만 박씨는 이를 특활비 전달을 숨기기 위한 꼼수는 아니라는 취지로 이날 법정에서 말했다. 국정원 직원들은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들고 가더라도 관례적으로 그랬다는 것이다.
이 때는 실제로 다른 국정원 직원을 만난 후 이 전 비서관에게 갔다.
'상납'을 하러 갔지만 분위기가 고압적이거나 딱딱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이 전 비서관이 바빠 보였는데도 "따뜻한 차 한잔 드시겠냐"고 권했을 때를 특별히 기억나는 점으로 증언했다.
또 고등학생으로 같은 또래인 이 전 비서관 딸과 박씨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수의 차림으로 처음 법정에 함께 선 '문고리 3인방' 비서관들은 입정 후 서로를 힐끔거리고 쳐다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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