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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박외진 아크릴 대표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인공지능 만들겠다"

등록 2018.06.01 15: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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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선후배 6명이 모여 첫 출발..."사람과 닮으려는 AI, 감성은 필수적"

"챗봇, 적절한 응답을 제공하기도 어려워...사람같은 소통을 위해 공감능력 필요"

"AI, 계산기같은 기계...두려움의 대상은 데이터를 해석하고 설계하는 사람"

박외진 아크릴 대표

박외진 아크릴 대표


【서울=뉴시스】이종희 기자 = "전문가마다 이야기가 다르지만, 인공지능이 절대로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가 창의성, 두 번째가 임기응변, 세 번째가 위로에요. 아크릴은 인공지능이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알려진 것들을 현실에서 가능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우선,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은 '사람처럼 느끼고 생각하는 기계'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를 구현하는 건 아직 한참 멀었다고 봐야 한다. AI는 일반적으로 데이터에 대한 기계학습을 통해 지식을 익혀 반복적으로 적용하는 특성이 있다. AI가 창의적인 업무나 복잡한 상황 판단에는 취약하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이유다. 다시 말해 현재로선 제한된 특정 영역에서만 조금 똑똑한 기계라고 보는 편이 맞다.

무엇보다 '감성'의 영역은 아직 AI가 넘보기 어려운 영역으로 치부된다. 사람의 감정은 창의적이면서 다양한 학습을 통해서도 익히기 어려운 탓이다. 

 AI에서는 불가능한 영역으로 꼽히는 '감성' 분야에 도전장을 내민 이들이 있다.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 출신 박외진 대표와 6명의 선후배가 모여 만든 스타트업 '아크릴'이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아크릴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박 대표는 유명 록 밴드의 보컬리스트처럼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노란색으로 염색한 긴 머리, 십자가 모양의 타투가 새겨진 손에는 커다란 반지도 착용하는 등 자유분방한 모습이었다. 그는 감성영역을 연구하게 된 계기도 '우연'이라고 설명했다.

 "제가 학위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감성을 정보로 다룬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MIT 미디어 랩에서 연구한 '감성 컴퓨팅'을 그때 처음 접했죠.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서 '감성적'이라고 평가하곤 했습니다. 감성을 가지고 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많이 느꼈습니다."

 문과는 '감성', 이과는 '이성'이 중요시된다고 가정하면, 박 대표는 '문과생'스러운 '이과생'이었다. 한마디로 감성을 갖춘 연구자라는 의미다. 기자가 국내 최고의 이공계생들이 모인다는 카이스트 입학 과정을 묻자 잠시 고민을 하던 그는 '멋져서'라고 대답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카이스트에 대해 알게 됐어요. 학교 소개 책자를 보고 너무 멋진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저를 보면서 주변 어르신들은 '너는 대학에 가면 미친 듯이 놀 것 같으니, 시스템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카이스트를 가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카이스트는 어른들의 권유로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당시에는 필기시험부터 난관이었다. 그는 입학을 위해 시험공부만 하는 '모범생'이었다면 통과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자가 시험 통과 비결을 묻자 무협지 '김용의 사조영웅전'을 꼽았다.
 
 "그때 당시 국어 과목 시험을 보는데 24절기를 쓰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때인 상강(霜降)이 문제로 나왔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무협지에서 본 한자들이 떠올랐습니다. 사조영웅전의 주인공인 곽정이 쓰는 '강룡 18장'이라는 기술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무협지에 빠져 있지 않았으면 맞추지 못할 문제였죠."

박외진 아크릴 대표

박외진 아크릴 대표

그는 대학 시절을 무협지를 탐독하고, 때로는 서태지와 신해철의 음악을 들으며 보냈다. 박 대표는 지금도 때로는 인상적인 영화나 소설을 보고 나면 직원들에게 자신의 '감성'을 적어 이메일로 보낸다고 했다. 이런 그가 AI와 감성을 접목하려 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처럼 오랜 기간 감성과 AI를 다뤄온 그가 내린 결론은 사람을 닮으려 하는 AI는 반드시 감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사실 굉장히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지능이라는 말도, 인공이라는 말도 제대로 정의하기 어렵죠. 처음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나온 과정을 돌이켜 보면 사람이 인지하는 능력을 기계에 부여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됐습니다. 새로운 인류를 만드는 것이 아닌 기계를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같은 기계를 만들어간다고 했을 때, 기계와 사람과의 차이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감성이 대표적입니다."

 그가 연구한 감성 컴퓨팅은 '감성 지능'에 기반을 뒀다. 감성 지능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 필요한 능력 중에 하나다. 감성 지능을 앞서 연구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좇아가다 보니 아크릴 창업에 이르렀다고 고백했다.

 "심리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논리적 지능만 있을 때 보다, 일부 감성적 지능을 갖추고 있을 때 더 좋은 판단을 잘 내린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처럼 감성은 소통하고 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그룹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모임이 회사가 됐습니다. 사명인 아크릴도 감성 컴퓨팅(Affective computing)을 뜻하는 AC와 리얼라이프(real life)를 줄여서 만들었습니다."

 아크릴은 2011년 LG 스마트 TV에서 제공되는 콘텐츠 감성 추천 서비스를 국내 최초로 상용화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초기 개발과정의 어려움도 많았지만, 영화라는 범주를 정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극복했다.

 "처음에 인터넷상의 글이나 메신저의 대화에서 사람이 이런 감정을 느끼리라 판단하는 감성 인식 엔진을 만들었습니다. 초기에는 기술이 완성도가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서비스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영화에 주목했습니다. 영화 같은 경우 '한줄평'으로 평가가 돼 AI가 쉽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소비자가 남긴 댓글을 분석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분석, 분류하는 서비스를 제안했고 LG전자 스마트TV에서 감성추천으로 상용화됐습니다."

 이같은 성과가 국내 최초로 개발된 공감형 AI 플랫폼 '조나단(Jonathan)'으로 이어졌다. 조나단은 텍스트를 인식해 사람이 느낄 수 있는 34가지 감정으로 보여준다. 업계에서는 지식 기반 질의응답 서비스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감성을 인지해 가장 적절한 형태의 공감을 표현해주는 서비스로 평가하고 있다.

 "조나단은 CTO의 영어 이름에서 가져왔습니다. 전 세계 유명한 인공지능들은 사람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끼리 개발 과정에서 부르다 굳어졌죠. 여기에 더 멀리 날아오르기 위해 비행하는 소설 '갈매기의 꿈' 주인공 '조나단'이라는 상징까지 더해 부르게 됐습니다."

 조나단의 개발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컴퓨터의 언어를 통해 디지털로 구현해내는 일은 지식처리 기술들이 연쇄적으로 융합해야 가능한 일이다. 가장 어려운 일은 딥러닝에 필요한 막대한 데이터를 구하는 일이었다.

 "지금은 범정부적인 노력이 진행되고 있지만, 창업 초기에만 하더라도 연구소나 학교에서 수집한 데이터는 비교적 저렴한 편인데도 스타트업이 구매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더구나 데이터는 살아있는 동시대의 언어습관, 문화적인 배경들이 녹아 있기 때문에 유효기간이 길지도 않습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데이터의 통시대적 속성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결국 직접 발로 뛰며 하나하나 수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6명의 카이스트 선후배에서 출발한 작은 스타트업은 이제 인적 규모만 보면 10배가 넘게 성장했다. 올해 확장 이전한 강남구 사무실에는 60여명의 임직원들이 근무하며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감성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지만, 인문학 전공자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감성을 처음 연구할 때 인문학적인 지식이 도움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초기에 감성을 분류하고 체계를 만들면서 도움을 받았죠. 회사 내부에도 인문학 전공자들이 연구개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성들의 체계나 모델을 정립된 이후에는 집단지성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딥러닝 기술은 사용자들이 가진 일반지성이 AI에 녹아 들어간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아크릴은 현재 AI 플랫폼 조나단을 활용해 챗봇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사용자의 감정을 인지해 공감하는 특성을 활용해 한 차원 높은 모델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챗봇은 현재 적절한 대답을 잘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직 그마저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감성지능이 부족한 챗봇을 도입하기를 꺼린다는 말도 나옵니다. 그래서 미래형 인공지능이 갖춰야 할 요소가 바로 공감입니다. 현재 챗봇은 '챗봇을 챗봇처럼' 만드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는 것과 비슷하게 발전하려면 적절한 대답을 찾는 것은 시작입니다. 단순 지식 전달외에도 공감형 대화기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대기업부터 작은 스타트업까지 AI를 연구하고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 다반사지만, AI에 대한 우려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는 AI 연구자로서 인류가 지나친 공포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인공지능은 조금 똑똑한 기계일뿐이라는 것이다.
 
 "아직까지 인공지능의 수준은 비유하자면, 점으로 만들어진 데이터를 자동으로 그래프를 만들어 주는 수준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두려움을 가지는 원인은 그 대상을 알지 못해서 생깁니다. 중요한 점은 '어떤 데이터로, 어떻게 인공지능을 설계할 것인가'라는 윤리의 문제입니다. 결국 인공지능을 만드는 사람이 문제인 셈이죠. 두려움의 대상은 인간이어야 합니다. 결코 계산기를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데이터를 올바르게 활용하고 해석하는 새로운 윤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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