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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95세의 나치 강제수용소 경비병 전력 미 시민권자 드디어 독일 추방"

등록 2018.08.21 19: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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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신분 밝혀지고 15년 전 시민권 박탈됐으나 추방 대상국 없어 계속 체류

【오스비침=AP/뉴시스】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한 뒤 세웠던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를 20일 독일의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이 찾아 헌화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곳에서 전쟁 말기 하루 수천 명의 유대인과 폴란드인들이 가스실에서 살해됐다. 2018. 8. 20.

【오스비침=AP/뉴시스】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한 뒤 세웠던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를 20일 독일의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이 찾아 헌화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곳에서 전쟁 말기 하루 수천 명의 유대인과 폴란드인들이 가스실에서 살해됐다. 2018. 8. 20.

【뉴욕=뉴시스】 김재영 기자 = 69년 전 미국으로 이민왔던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 경비병 근무자가 21일 아침 뉴욕시 자택에서 끌려나와 독일로 추방됐다고 백악관이 말했다.

95세의 야키위 팔리지는 이미 25년 전에 미 사법 당국으로부터 나치 전력을 의심 받아 추방 대상이었다. 팔리지는 미국에 들어오면서 농부와 공장 직공으로 전쟁을 겪었다고 거짓말 한 사실을 인정했다. 나치 전력에 앞서 이민 당국 거짓 진술은 추방 조치 감이나 팔리지는 여러 사정으로 25년 동안 계속 미국에 머물렀다.

미국에 와 7년 후 시민권을 따내고 제도공으로 일하다 은퇴했던 팔리지는 1993년 어느날 미 연방 법무부 요원들의 방문을 받았다. 요원들은 그의 이름을 나치 근무 명부에서 발견했으며 그의 전직 동료가 "미국 어딘가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을 흘려 결국 과거가 드러났다.

팔리지는 미국에 들어오면서 거짓말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사실을 말했으면 비자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며 "다들 그렇게 거짓말 했다"고 주장했다.

발각 된 지 10년 후인 2003년 미 연방 법원 판사가 "나치 점령하 폴란드 트라우니키 강제수용소에서 무장 경비병으로 근무해 유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을 했다"며 팔리지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다음해 추방을 명령했다.

그러나 독일, 폴란드, 우크라이나 및 여러 유럽 국가들이 팔리지를 떠맡는 것을 거부해 그는 뉴욕시 퀸즈의 2층 자택에서 어정쩡한 신분으로 부인과 계속 살게 됐다.  

뉴욕의 유대인들이 이를 알고 그의 집 앞에서 시위를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뉴욕주 연방 상하원 29명 전원이 국무부에 팔리지의 추방을 걍력히 촉구하는 서한에 서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올 초 새 주독일 미 대사로 부임한 리차드 그레넬 대사는 팔리지의 독일 추방 성사를 최우선 과제로 언급할 정도였다.

미국과 독일이 수주 간 외교 협상을 벌인 결과 추방이 성사됐는데 백악관은 이날 이를 발표하는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밝혔다.

팔리지는 지난 2009년 독일이 나치 전범 용의자 신분으로 미국 시민권자 존 뎀잔주크를 받아들이기로 합의한 이후 첫 독일 추방 나치 전력자다. 뎀잔주크는 오하이오주에서 자동차공으로 은퇴하고 살고 있다 역시 강제수용소 경비원 전력이 드러나 독일 법정에 세워져 2011년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10개월 후 항소심 도중 91세로 사망했다.

팔리지는 미국에 온 뒤에도 나치 동료들과 교유해 일부를 미국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미국 당국은 1970년대에 수천 명의 나치 전력자들이 신분을 속이고 미국에 들어온 사실을 파악하게 됐다. 미국에 편안하게 살고있는 이런 사람들이 1만 명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연방 법무부는 이들의 색출과 추방에 적극 나섰다. 137명의 나치 전력 혐의 미 시민권자 소재를 알아내 이 중 67명을 추방했다.

나머지 중 37명은 법적 절차 도중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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