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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글서체의 아름다움' 세종대왕 탄신 622돌

등록 2019.04.25 15: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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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제·정인지·안지 등, 용비어천가 복제품, 1445, 36.0×22.4㎝,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권제·정인지·안지 등, 용비어천가 복제품, 1445, 36.0×22.4㎝,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세종대왕유적관리소가 30일부터 6월30일까지 세종대왕역사문화관 기획전시실에서 '조선시대 한글서체의 아름다움'전을 개최한다. 5월15일 세종대왕 탄신 622돌 기념 기획전이다.

한글 서체 변화를 볼 수 있도록 조선 전기·중기·후기로 나눠 대표 유물을 선보인다.

 조선 전기 서체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틀 속에서 동일한 두께와 각진 획의 모습을 보인다. 필기보다는 인쇄를 전제한 것으로 흔히 판본체 혹은 판각체라고 부른다.

'용비어천가'는 당시 한글 서체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창제 당시 한글 형태는 일반적인 필기도구인 붓으로 쉽게 쓰기 어려운 기하학적 모양이었다.
보물 제1947호 숙명신한첩 복제품, 1652~1659, 50.0×39.0㎝, 국립청주박물관

보물 제1947호 숙명신한첩 복제품, 1652~1659, 50.0×39.0㎝, 국립청주박물관


조선 중기 한글 서체의 특징은 보물 제1947호 '숙명신한첩'을 통해 알 수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한글 서체는 궁체를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 초기 판본이나 활자의 기본 형태에 붓으로 쓴 느낌이 가미됐다.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 전형이 만들어진다.

궁체는 주로 왕실 필사본 서적에서 모습을 볼 수 있고, 붓의 꺾임과 부드러운 흐름을 조화롭게 구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명성황후 한글 간찰, 1890년대, 22.5×12.4㎝, 국립고궁박물관

명성황후 한글 간찰, 1890년대, 22.5×12.4㎝, 국립고궁박물관


한글 서체는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국문학의 융성으로 필사가 늘어나던 영·정조 시대를 거치며 정제됐다. 이후 순조부터 고종 시대에 이르기까지가 전성기다.

순조비인 순원왕후와 순조의 셋째 딸 덕온공주의 글씨와 명성황후의 편지글은 조선왕실의 한글문화를 보여주는 대표 자료다.

사대부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와 궁체로 쓴 글, 민간에서 베껴 쓴 필사본 소설들에서 획의 변화와 강하고 약한 기운이 교차하는 선들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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