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인터뷰]유인택 "평생 을로 살면서, 고개 숙이는 것은 자신"

등록 2019.04.30 14:11:04수정 2019.04.30 14:11:29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예술의전당 신임 사장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유인택 예술의전당 제16대 사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2019.04.30.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유인택 예술의전당 제16대 사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2019.04.3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예술계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아요. 예술계에 공론화가 필요한데, 마인드가 변해야 합니다. 공공기관장, 예술단 단장, 예술가들이 남의 돈을 가져오려면 고개를 숙여야 해요. 근데 그게 안 되요. 고개를 안 숙여요."

예술의전당 사장,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고고한 예술가처럼 굴어야 할 것 같은 자리다.

유인택(64) 신임 예술의전당 사장은 결이 다르다.

유 사장은 30일 "저는 평생 을로 살면서, 고개를 숙이는 부분은 자신이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예술계 최고의 갑으로 여겨지는 예술의전당 사장이 됐는데도 을을 자처한다.

"교육수준과 경제수준이 높아지고, 세계 여행도 많이 하면서 대한민국에 엄청난 변화가 왔어요. 과연 예술계 안에 있는 예술가들이 그것이 얼마나 파악하고 계실까요. 국공립 예술단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 60, 70년대인데 당시 1인당 국민 소득이 1000달러였어요. 찢어지게 가난했으니 국공립 예술단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거죠. 예술은 고고하니까 너희들 천박하게 돈 번 것으로 예술을 당연히 후원해야지라는 생각은 30, 40년 전 우리 사회 모습이니까 이제 바꿔야 하지요."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유인택 예술의전당 제16대 사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 하고 있다. 2019.04.30.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유인택 예술의전당 제16대 사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 하고 있다. 2019.04.30. [email protected]

1인 소득 3만달러 시대에 "국공립 극장이 갑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 유 사장의 판단이다. 공공성을 위해 25%선에 그치는 국고보조금을 50% 수준으로 늘리기 위해 우선 발벗고 나선다. 예술의전당 1년 예산 440억원 중 25%인 120억원이 국가보조금이다. 다른 국공립 예술단체와 비교할 때 비중이 적어 예술사업이 위축되고 대관, 임대 사업이 불가피했다는 것이 유 사장의 진단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예술의전당이 '대관 장사'를 하는 것이냐, '복덕방' 등 일견 타당한 비판을 하셨는데 내부 사정을 보니까 재무 구조 자체가 그렇더라고요. 공공성을 위해서는 재무 구조가 바뀌어야 합니다"라고 짚었다.

예술의전당 회원 규모를 10배 이상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 임기인 2022년까지 연회비 10만원을 내는 골드회원을 10만명 모집하려 한다. 1988년 십시일반으로 1억8000만원을 모아 신촌에 예술극장 한마당을 지었고, 1994년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제작 당시 7700명으로부터 3억원을 모은 전력에 근거한 자신감이다.

중소 벤처 기업 등 자신의 인맥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공언했다. 임직원들뿐 아니라, 재원 부족에 시달리는 상주 예술단체장들에게도 펀딩의 지식과 노하우를 전수한다.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대한민국발레페스티벌 등 예술의전당 사장이 조직위원회 멤버인 축제의 스폰서십을 위해서도 뛰겠다는 각오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유인택 예술의전당 제16대 사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9.04.30.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유인택 예술의전당 제16대 사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9.04.30. [email protected]

지난달 21일 16대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취임한 유 사장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했다. 한국영화 '프로듀서 1세대'로 통하는 영화 기획·제작자 출신이다.

30년 역사의 예술의전당 사장들은 예술행정가가 대부분이었다. 유 사장은 한국형 기획영화 제작자의 효시로 통하는 영화 '결혼이야기'와 '미스터 맘마'를 비롯해 '화려한 휴가' '너에게 나를 보낸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목포는 항구다' 등을 제작했다. 영화 제작사 기획시대 대표이사를 지냈고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창립을 주도했다.

문화계에 발을 들인 것은 무대를 통해서다. 제약학과 시절부터 연극반 활동을 했고, 연우무대 사무국장 등을 거쳤다. 뮤지컬계에서도 활약했다. 청강문화산업대학 뮤지컬스쿨 교수를 지냈고 부산 동서대학교 뮤지컬학과와 산학협동으로 창작뮤지컬 '구름빵'을 제작했다. '구름빵' '화려한 휴가' '마법 천자문' '광화문연가' 등의 뮤지컬에 펀드매니저로 참여하기도 했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뮤지컬 단장도 지냈다. 이후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대표로 자리를 옮겨 연극을 비롯,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였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유인택 예술의전당 제16대 사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인택 사장, 박민정 문화예술본부장, 이은관 운영본부장. 2019.04.30.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유인택 예술의전당 제16대 사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인택 사장, 박민정 문화예술본부장, 이은관 운영본부장. 2019.04.30. [email protected]

민중문화운동협의회 사무국장을 지내는 등 대표적 운동권 문화인으로 꼽혀왔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최초의 독립 장편영화 '오! 꿈의 나라'(1989)를 당국의 사전검열 없이 상영한 혐의로 기소되자 헌법소원을 제기, 위헌 판결을 이끌어냈다. 문재인 대통령의 문화예술정책을 지원한 문화예술정책위 위원이었고, 형은 유인태(71) 국회 사무총장이다.

운동권 출신인 그는 당연히 공공성과 공정성을 앞세운다. 하지만 철학적으로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보다 실리적인 부분을 강조했다. 클래식 활성화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정부가 주는 돈은 적으니 민간에서 재원을 끌어들여 활성화하겠다는 식이다. CEO를 자처하며 "기획·창작·제작 활동 경험, 투자·자금 운용 등의 경영 능력“을 거듭 강조했다.

예술의전당과 비교하면 '구멍가게' 수준인 대학로의 소극장 운영자가 감당할 수 있겠냐는 의문도 일부 있다.영화, 뮤지컬 등 대중문화 장르에서 주로 일해왔는데 클래식음악, 오페라, 발레, 현대무용 등 순수 공연장르와 미술 전시가 주력인 예술의전당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표도 없잖다.

유 사장은 "오페라 하우스는 오페라하우스에 맞게 프로그램을 채워야 한다"며 우려를 불식하고자 한다. 오페라극장 대형 뮤지컬 공연도 비수기인 여름, 겨울로 한정하겠다고 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유인택 예술의전당 제16대 사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왼쪽부터 태승진 경영본부장, 전해웅 공연예술본부장, 유인택 사장, 박민정 문화예술본부장, 이은관 운영본부장. 2019.04.30.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유인택 예술의전당 제16대 사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왼쪽부터 태승진 경영본부장, 전해웅 공연예술본부장, 유인택 사장, 박민정 문화예술본부장, 이은관 운영본부장. 2019.04.30. [email protected]

"그런데 순수예술은 비수익성 장르죠. 수익성이 안 되니까 결국은 재원 조성을 해야 해요. 그래서 기-승-전-돈,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어요. 재무 구조가 개선이 됐을 때 예술계에서 바라는 국가 대표극장으로서 서울시민, 나아가 국민들이 향유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라고 답했다.

대관 위주의 한가람 미술관 등 미술 공간은 한국문화예술위권회, 예술경영지원센터 등 예술가 지원기관들과 손잡고 신진 작가와 가난한 작가에게 대여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예술의전당의 공공성과 공정성이 아직 자신이 기대하는 바에 미치지 못한다는 유 사장은 7월 계약이 만료되는 로비의 뷔페 식당 공간에 수입차를 전시하자는 내부 제안도 있었지만 "육아로 문화향유가 단절된 여성과 아이를 위한 라운지로 쓸 계획이에요. 이를 위해 공공 재원이든 민간 재원이든 따오겠다고 했습니다"고 했다.

"공공예술기관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하죠. 성평등 부분, 청년 예술인들을 위한 부분도 마찬가지죠. 예술의전당은 1등 자리를 차지하고 늘 좋은 위치에 있어, 자칫 을들의 사정과 심정을 간과하기 쉬워요. 좋은 위치에 있다고 권력화해서 갑질을 하면 안 됩니다. 전국의 230여개 되는 문예회관에게도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정권, 장관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인 것에 휘둘릴 수도 있는데 제가 있는 동안은 예술의전당 직원이 소신을 가질 수 있도록 근무 환경을 만들고자 해요."

비판은 얼마든지 수용한다는 자세다. "저희 홍보부장이, 공공기관이라 방어적이던데 '그러지 말라'고 했어요. 무관심보다는 두들겨맞거나 비판을 받는 것이 좋죠. 그건 관심이니까요. 예술가든 국민이든 예술의전당에게 관심을 갖게 되니까요. 저는 좋다고 이야기했어요. 진심이에요. 예술의전당이라는 온실 속에서 안주하지 않고 긴장하면서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