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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대한민국 조율명장 1호 이종열의 기록

등록 2019.10.28 15:46:30수정 2019.10.28 17:5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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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조율의 시간'

[오늘의 책] 대한민국 조율명장 1호 이종열의 기록



【서울=뉴시스】정철훈 기자 = 세계 정상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은 내한할 때마다 공연 티켓이 조기 매진된다. 한때 미켈란젤리의 조율사를 꿈꿨다는 지메르만은 피아노에 박식한 만큼 까다롭기로 유명해 자신의 피아노들을 비행기에 싣고 다닐 정도다. 첫 내한한 2003년, 연주회를 마쳤을 때, 그는 객석이 떠나갈 듯 박수가 쏟아지는 가운데 커튼콜에서 나와 이렇게 말했다. "완벽한 조율로 최상의 피아노를 만들어 준 미스터 리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피아니스트가 무대에서 조율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지메르만이 고마움을 털어놓은 미스터 리. 그는 대한민국 조율명장 1호 이종렬(81)이다.

"예술의전당에는 무대에 나가는 피아노가 일곱 대 있다. 피아노마다 성격과 음색이 조금씩 다 다르다. 피아니스트가 여러 대 중에서 자기가 연주할 피아노를 고른다. 작곡가별로, 또 작품 성격에 따라 피아노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개인 취향도 작용한다. 어떤 곡이든 음이 화려하게 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부드러운 음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제일 힘든 요구는 부드러운 소리의 피아노를 골라놓고 소리를 쨍쨍하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이종열은 어떤 사람인가. 그의 조부는 순수 만든 단소를 잘 불었다. 대나무에 구멍을 뚫어 음정을 맞추는데 그 음정 맞추는 것이 지금 말로 조율이었다. 소년 이종열은 중학생이 되면서 직접 단소를 만들어보았다. 그러나 조부가 만든 단소와는 달랐다. 조부의 단소는 궁상각치우 국악 오음계가 나왔다. 그가 만든 단소는 도레미파솔라시도 서양 음계가 나왔다.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반음계가 나오는 단소를 독창적으로 개발하기에 이른다. 소리를 곱게 만드는 일을 정음(整音)이라고 하는데 그는 중학생 때 이미 정음의 세계에 입문했던 것이다.

1938년 전주에서 태어나 1956년 피아노 조율사로 입문했으니 18세의 일이다. 고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가서도 휴일이면 군 부대 내 교회에서 풍금 고치는 일을 했다. 제대 후 비료공장에 취직하려다 말고 시내 악기점에 가서 "조율을 할 줄 안다"며 일거리를 달라고 졸랐다. 풍금 수리일을 군청 단위로 받았던 악기점에서는 그에게 수십 대의 풍금을 수리하는 일을 맡겼다. 물고기가 물 만난 것처럼 신바람이 났다.

이후 수도피아노사와 삼익피아노사를 거쳐 프리랜서 조율사로 독립했다. 세종문화회관 전속 조율사를 그만두고 예술의전당으로 간 게 1995년 1월. 그는 예술의전당에서 지금까지 24년 동안 전속 조율사로 활약중이다.

"이렇게 따뜻하고 힘 있는 피아노 음색은 처음"이라고 기뻐한 라두 루푸, 자신이 처음으로 직접 주문한 사항을 5초만에 해결해준 주율사 앞에서 크게 웃은 예브게니 키신, 파아노를 쳐 보고 벌떡 일어나 감탄사를 연발한 조지 윈스턴, 10년이나 된 피아노가 새 피아노처럼 고른 소리를 낸다며 피아노 몸체를 부드럽게 쓰다듬은 잉그리드 헤블러 등등. 때로는 연주자의 몰이해 때문에, 때로는 과로에 병원행을 하면서도 완벽한 피아노 소리를 만들기 위해 사명감을 잃지 않았던 대한민국 조율명장 이종열.

그는 이제 후임자를 뽑아 몇 년째 음향의 기술을 전수하는 우리 시대의 드문 사표이다. 짧막한 에세이를 읽는 것처럼 감칠맛을 선사하는 꼭지들이 피아노의 88개 건반처럼 고른 치아의 책이다. 이종열, 291쪽,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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