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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몸살'...고경희 시인, '반짝이는 것이 눈물 나게 하네'

등록 2021.08.13 11:22:57수정 2021.08.13 11:3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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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쓴 시 갈무리한 다섯 번째 시집 출간

[서울=뉴시스] 고경희 시집 - 표지

[서울=뉴시스] 고경희 시집 - 표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반짝이는 것이 눈물 나게 하네
달리는 길 위에
튕겨져 나간 쇠 부스러기들이
잃어버린 제 형체를 간신히 꿈꾸는 듯
유월 햇살에 반짝이네
희망, 뭐 그런 것 같아라

다리 아래
저 강물 비늘이 산새처럼
저녁 숲의 산새처럼
작게 잘게 반짝이네
한사코 흐르는 눈물 같아라
우리들 참 힘든 사랑 같아라
―'고속도로에서' 중에서

고경희(71) 시인이 지난 20여 년간 쓴 시들을 갈무리해서 다섯 번째 시집 '반짝이는 것이 눈물 나게 하네'를 냈다. 양복천에 실드로잉으로 완성한 표지가 독특한 시집이다.(정철규 작가의 작업이다)

1983년 '현대시학' 천료로 등단한 시인은 그동안 '아홉의 끈을 풀고'(1987), '사슬뜨기'(1990), '창백한 아침'(1995), '안개구간'(1996)까지 4권의 시집을 펴낸 바 있다.

25년만에 출간하는 이번 시집은 숙성된 마음의 풍경이 깊은 맛을 선사한다. 이별의 아픔을 삭이는 시적 화자의 처연한 내면풍경이 강물처럼 반짝이며 흐른다.  

특히 이번 시집은 전문가의 해설이 아닌 독자가 해설을 달아 시를 읽는 맛을 전한다.

현재 미술 출판을 하고 있는 정민영 아트북스 대표가 시집 소감을 붙였다.정 대표는 “시 곳곳에 아픔과 그리움이 드러나 있다"며 "참 힘든 사랑으로 겪은 그리움의 몸살과 내적 갈등을 지켜보며 그녀를 응원하는 일이다. 그녀는 사람(‘그 사람’)에게 입은 상처를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의 기운으로 치유한다"고 했다.

“사랑과 그리움은 짝이다. 사랑이 꺾이면 그리움만 남는다. 아니 사랑은 꺾을 수 있어도 그리움은 꺾이지 않는다. 한 생을 뿌리째 흔든다."
 
시인은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산다. 주변에 강이 있고 호수가 있다. 숲과 들판이 있다. 감나무, 소나무, 아카시아, 함박꽃, 애기똥풀, 백일홍, 꽃다지, 냉이, 매미, 불개미, 잠자리, 개구리, 거미, 저어새, 새……. 나무와 꽃과 벌레와 새가 시를 수놓는다. 자연은 치유의 세계이고, 위로의 세계이다. 그녀의 홀로서기를 자연이 돕는다. 시인의 그리움과 아픔과 신생의 의지는, 자연을 경유해서 드러난다.

고경희 시인의 '봄' 시가 보여준다. “거꾸로 산다니까 거꾸로 사는 것도 재미있다고 그 사람이 환하게 웃었다. 눈 동그랗게 뜨고 바라본 그 사람 눈 참 맑았다. 거꾸로 사는 건 알았지만 재미있는 건 몰랐다. 하긴 많은 나무들이 꽃 다 핀 다음에 잎 나온다 는 것도 지난 봄에야 새삼 알았으니 양말 먼저 신고 모 자 쓰고 속옷 입고 집 나선다. 햇풀잎 뜯어 치마 만들면 고울 거라. 혼자 가는 들판은 바로 가도 거꾸로 가도 봄 이어서 철없이 굴어도 눈 흘기지 않았다. 따뜻이 어깨만 안아줬다.”(<봄> 전문).

홀로 세월을 견디며 그리움의 농도를 묽게 만든 시인은 말한다. '그래도 인생은 계속된다'고. 

"마음에 그 사람을 품고 있는 혼자"인 사람, "그리움이 술렁이며 숲을 이루는" 사람, "그 사람을 사랑하고 만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의 부침을 다스리는" 사람이라면 위로가 될 시집이다.   144쪽, 유한회사 켈파트프레스,1만2000원.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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