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이후 후보 못내고 후광만
'호남정치의 한계' 극복해야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당선 이후 치러진 4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광주·전남 출신 후보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가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박준영 전 전남지사가 2012년 통합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박주선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 2017년 국민의당 대선후보 경선에 각각 참여했으나 사퇴 또는 패배한 것을 제외하고 주요 정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당시 정치지형 탓도 있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DJ에 버금가는 인물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DJ의 위기관리 능력, 국민통합과 소통 능력, 불굴의 의지, 개혁성 등을 갖춘 정치인이 없었다는 것이다. 전남 출신이면서 수도권이 지역구인 A의원은 최근 한 모임에서 "남의 농사 그만 짓고, 이제 우리 농사 지어야 한다"며 "호남지역 출신 정치인들이 제대로 된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지리멸렬한 호남정치 광주·전남은 역대 총선에서 특정 정당이 지역구 전체 의석을 싹쓸이하는 경향이 짙었다. 19대 총선에서는 통합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 20대는 국민의당이 압도적인 광주·전남 제1당이 됐다. 이는 광주·전남 만의 독특한 정치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정치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군사정권에서 소외받고 차별받은 '한(恨)의 정치'가 표로 연결됐고, DJ라는 정치 지도자에 대한 무한 신뢰가 가져온 결과라는 것이다. 현재 18개 지역구 의원은 6선 1명(천정배), 4선 4명(박주선·김동철·박지원·주승용), 3선 2명(장병완·이정현), 재선 3명(권은희·이개호·황주홍), 초선 8명 (김경진·송갑석·최경환·윤영일·서삼석·손금주·정인화·이용주)으로 구성돼 있다. 정당별로 보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4명, 바른미래당 4명, 민주평화당 1명, 대안신당 5명, 무소속 4명이다. 지난 총선에서 호남정치를 복원하라고 국민의당에 16개 선거구 승리를 몰아줬으나 이처럼 지리멸렬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들은 초선 의원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DJ와 연관된 인물들이다. DJ의 영원한 비서실장 박지원, 마지막 비서관 최경환, 새정치국민회의 총재특별보좌관 천정배, 국민의정부 청와대 근무 박주선·김동철, 아태평화재단 출신 황주홍 의원 등이다. 이들은 본인의 처세와 함께 DJ 후광에 힘입어 정치권에 들어와 중진으로까지 도약했다. ◇DJ 정신 제대로 실천하는 정치인이 없다 DJ는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연방제 통일안'을 주장했다. 진보적이면서도 현실적인 DJ의 성향이 반영된 정책이었다. DJ는 대통령이 되자 '한반도 3단계 통일방안'을 중심으로 국민들에게 전쟁 재발 방지와 우리 민족의 화합과 통일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같은 '햇볕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 금강산 관광사업과 함께 2006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지역 정치인들은 DJ가 닦아 놓은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는 원론적 주장만 되풀이 하지 각론으로 들어가면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DJ와 같은 비전제시는 두 말할 것도 없고, 아직까지도 'DJ 팔이'로 정치생명을 연장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뉴DJ'를 발굴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국은 후배들을 이용해 자신만 승승장구했다. 뉴DJ 발굴은 지역민들의 내면에 잠재된 DJ에 대한 향수를 자극해 표를 얻겠다는 선거전략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8월 DJ 서거 10주기를 맞아 무등일보와 인터뷰를 한 권노갑 전 민주평화당 상임고문은 "DJ의 햇볕정책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실천한 정치인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며 아쉬워 했다. ◇현역 의원 지역에만 매몰…중앙무대 역할도 중요 DJ는 항상 큰 그림을 그렸다. 국가와 민족의 비전, 경제발전, 국민통합 등 국가의 리더가 해야 할 일을 고민했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물론 경쟁 정당의 지도자와 수시로 대화하고 소통했다. 그리고 위기 때는 국민과 직접 대화하는 방식으로 소통하고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현재 지역 정치인에게는 이런 모습을 찾아 보기는 힘들다. 언제부턴가 지역 의원들은 지역민과 소통한다며 '금귀월래(금요일 지역구에 내려갔다가 월요일 상경하는)'만 강조하고 있다. 국회가 열리지 않는 주말·휴일에 지역구민을 만나 대화하고,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것은 지역구 의원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마치 이것을 소통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며 '오늘 행사 00건 참석' 등으로 매주 SNS에 올리고 있다. DJ를 잇겠다는 지역 정치인들이 큰 그림이 아니라 오로지 지역에만 매물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아가 금배지를 한번 더 달기 위해 '호남 팔이'를 한다는 비아냥까지 받고 있다. 지역민들은 금귀월래도 중요하지만 중앙 무대에서 지역발전은 물론 호남정치 발전도 도모하는 정치를 요구하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동료 의원들의 관심과 존경을 받는 리더를 원하는 것이다. ◇정치·공부, 두 수레바퀴 굴리는 의원이 없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DJ에 대해 정치와 공부를 적절히 병행한 정치인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인은 정치만 잘해서, 아니면 공부만 해서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리더로 성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 원장은 현재 광주·전남 지역구 의원 18명 가운데 정치와 공부, 두 수레바퀴가 잘 돌아가는 의원은 거의 없다고 단언했다. 정치만 해온 의원은 전문성이 떨어지고, 공부만 해온 의원은 정무적 감각이 뒤쳐져 호남정치가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다. 최 원장은 "정부를 상대로 지역발전을 위해 그랜드플랜을 제시하려면 정치적 감각과 함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며 "현재 지역 의원 18명 중 누가 이런 것을 제시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DJ 정신을 배우고 따르겠다는 지역 정치인들이 정작 가장 기본이 되는 DJ의 두 수레바퀴는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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