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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원, 그녀는 최진실이다…낮은데로 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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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0-11-28 12:18:51  |  수정 2017-01-11 12: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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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문원의 문화비평

 배우 하지원 출연한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무시무시한 시청률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첫 회 시청률이 17.2%(AGB닐슨)의 호조를 보여 화제를 모으더니, 지난 21일 불과 4회차만에 21.5%까지 시청률이 치솟았다. 향후 30% 돌파도 무난하리라는 예상이다. 간만의 트렌디 드라마 대박이 예고되고 있는 상황이다.

 ‘시크릿 가든’은 하지원으로서 KBS2 ‘황진이’ 이후 4년 만의 TV드라마 나들이다. 그 점만으로도 화제를 모을 만했지만, 더 신기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원은 일반적으로 ‘영화배우’로 분류된다. 영화배우의 TV 나들이는 대개 해당 배우의 티켓파워가 소진될 때쯤에 시도된다. 떨어진 대중 밀착도를 회복하려는 전략의 일환인 셈이다. 영화 ‘인어공주’의 참패 등으로 티켓파워에 이상이 생겼던 전도연이 이듬해 SBS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을 선택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프라하의 연인’ 이후 전도연은 영화 ‘너는 내 운명’을 다시 히트시켰다.

 그러나 하지원의 ‘4년 만의 TV 나들이’는 경우가 크게 다르다. ‘시크릿 가든’ 바로 직전 하지원의 영화 출연작은 ‘해운대’와 ‘내 사랑 내 곁에’였다. 전자는 1000만 관객 동원 영화였고, 후자 역시 2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한 히트작이었다. 거기다 하지원은 ‘내 사랑 내 곁에’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까지 수상했었다. 영화배우로서 최절정기에 TV로 선회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하지원은 과거에도 이런 선택을 했었다. 2002년 ‘폰’과 ‘색즉시공’의 연속히트 이후에도 MBC 드라마 ‘다모’를 선택했다. 이후 영화 커리어와 방송 커리어를 병행하며 TV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과 ‘황진이’ 등을, 영화 ‘내사랑 싸가지’와 ‘신부수업’, ‘1번가의 기적’ 등을 일거에 쏟아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식으로 무분별하게 미디어를 옮겨가며 작품들을 내놓으면 이미지 소진이 빨라지고 티켓파워와 시청률파워 전선에 혼란이 오게 되는데, 하지원의 경우는 그렇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현재까지 총 14편의 영화 출연작 중 5편이 200만 이상 대박, 100만 이상 중박도 6편이나 됐다. 딱히 흥행보증수표랄 것까진 아니지만, 좀처럼 실패작이 없는 안정적인 흥행구도를 보여줬다. TV드라마 쪽에선 더 화려했다. 실질적 첫 주조연급 출연작이었던 2000년 MBC ‘비밀’ 이후 전 작품이 성공을 거뒀다. 시청률 40%대마저 넘은 SBS ‘발리에서 생긴 일’, 퓨전사극의 기틀을 잡은 기념비적 작품 MBC ‘다모’와 SBS ‘황진이’, 트렌디 드라마 열풍의 주역 KBS2 ‘햇빛사냥’ 등 모든 작품이 주목을 받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TV드라마 이미지와 영화 이미지를 확실히 갈랐던 김하늘 정도가 이런 성과를 내고 있지만, 하지원은 그런 경우도 아니다. 작품마다 대개 이미지가 비슷비슷하다. 이미지의 빠른 소진 문제도 있지만, 굳이 TV에서 줄곧 봐오던 이미지를 보기 위해 돈을 내고 극장 티켓을 산다는 전제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다. 하지원의 꾸준한 성공가도는 일종의 미스터리가 돼버린다.

 그러나 돌아보면 하지원과 매우 유사한 성공 패턴을 지녔던 배우를 한 명 더 찾아볼 수가 있다. 고(故) 최진실이다.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최진실은 TV와 스크린을 종횡무진하며 승승장구하던 최고의 스타였다. TV드라마로 MBC ‘우리들의 천국’(1990), ‘질투’(1992), ‘폭풍의 계절’(1992), SBS ‘재즈’(1995), ‘아스팔트 사나이’(1995), MBC ‘별은 내 가슴에’(1997), ‘그대 그리고 나’(1997) 등을 히트시키면서도, 영화 쪽에서도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 ‘미스터 맘마’(1992), ‘사랑하고 싶은 여자, 결혼하고 싶은 여자’(1993), ‘마누라 죽이기’(1994), ‘고스트 맘마’(1996), ‘편지’(1997) 등을 히트시켰다. 이후 티켓파워와 스타성이 현저히 떨어져 영화 커리어를 접은 뒤 TV드라마에 올인하긴 했지만, 1990년부터 97년 사이의 종횡무진은 가히 기록적인 것이었다.

 이 같은 미디어 종횡무진 성공의 공통점을 지닌 최진실과 하지원 사이 또 다른 공통점은 더 없을까. 당연히 있다. 그것도 대단히 중심적인 이미지 차원에서 존재한다. 최진실과 하지원은 모두 ‘서민 여성’ 이미지의 대표주자라는 점이다. 최진실이 활약하던 1990년대와 하지원의 2000년대 사이 사회적 분위기만 조금 변화시킨 ‘서민 여성’의 연속 형태다. 하지원은 사실상 ‘최진실의 21세기 버전’이라는 얘기다.

 애초 최진실이 시대를 풍미했던 것도 돌아보면 이 같은 ‘서민 여성’ 이미지를 주축으로 삼은 데서 비롯됐다. 이전까지 여배우들이 모두 신비스럽고 고혹적인 이미지를 취해왔다면, 최진실은 철저히 ‘아래’로 내려가 서민 출신임을 강조하고, 대부분 그런 배역들을 맡아왔다. 한 소설가의 ‘무식한’ 아내 역을 맡았던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그녀의 첫 주연 히트작이었다.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에서는 고통 받는 해외입양아 역할로 또 다시 성공을 거뒀다. 영화 커리어 후반부에 역시 ‘고스트 맘마’에서 이미 죽은 아내이자 엄마의 유령 역할, ‘편지’에서 시한부환자의 아내 역할 등으로 같은 맥락의 이미지를 이어갔다.

 TV드라마도 대부분 이와 유사한 역할을 자주 맡았고, 특히 TV드라마에 올인하기 시작한 1997년 이후부터는 ‘서민층 가정의 아내’ 역할에 몰두했다. MBC ‘장미와 콩나물’, KBS2 ‘장밋빛 인생’ 등이 대표적이며, 마지막 출연작이었던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는 아예 가정부 역할까지 맡아 대성공을 거뒀다.

 하지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섹시한 이미지로 관심을 모으던 데뷔 초부터 그랬다. 빈한한 가정의 여대생 딸 ‘현지’ 역을 맡았던 ‘동감’, 어릴 적 왕따를 당하던 여대생으로 출연한 ‘가위’ 등으로 초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이후 영화 쪽에서는 ‘역전에 산다’, 그리고 철거촌에 거주하는 여성복서 역할을 맡은 ‘1번가의 기적’, 부산 해안가에서 좌판 행상을 하는 여성 역을 맡은 ‘해운대’ 등에서 유사한 이미지가 반복됐다. TV드라마 쪽도 마찬가지다. ‘비밀’, ‘햇빛사냥’, ‘발리에서 생긴 일’ 그리고 ‘시크릿 가든’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서민층 여성 이미지를 도맡고 있다. 심지어 퓨전사극에서마저도 사실상 시대적으로 하위계급에 속하는 역할들만 맡았다. 여성 형사 역할을 맡은 ‘다모’와 기생 역할을 맡은 ‘황진이’다.

 물론 언급했듯 시대적 배경 탓에 같은 ‘서민 여성’이더라도 최진실과 하지원 사이 차이점은 있다. 최진실이 주로 열악한 환경에 고통 받는 젊은 여성이나 소박한 서민 삶을 아기자기하게 꾸려나가는 주부 역할을 맡았다면, 하지원은 이에 대담하게 맞서 싸워나가는 진취적인 이미지를 보여줬다. 대부분 직업적 전문성으로 이를 행해나가며, 육체적인 강인함이 그 무기가 된다. 여형사 ‘다모’, 여성복서 ‘1번가의 기적’, 스턴트우먼 ‘시크릿 가든’에 이르기까지 반복된 이미지다.

 그렇다면 왜 이 같은 ‘서민 여성’ 이미지가 최진실과 하지원의 미디어 종횡무진 커리어에 도움을 주고 있을까. 왜 같은 이미지를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도 이미지 소진 얘기가 나오지 않는 걸까. 답은 단순하다. 이미 하지원은 이미지가 소진된 상태가 맞다. 최진실도 사실상 1990년대 중반 이전 이미지가 고갈된 상태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서민 여성’ 이미지는 계속 팔려나가게 된다. 왜 그럴까.

 첫째, 여배우의 상품 가치를 만들어내는 남성층의 반응은 확실히 동일 이미지가 반복될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실질적 소비의 주체인 여성층에 있어서는 꾸준한 ‘서민 여성’ 이미지가 충분히 안정감 있고 호감 가는 코드로 작용하게 된다. 그래서 스타성이 떨어진 것처럼 느껴져도 계속 팔려나가는 것이다.

 영화예매 사이트 맥스무비가 지난 22일부터 23일까지 양일간 ‘SBS 주말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이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하지원이 연기한 ‘길라임’이 무려 52%의 여성에게서 지지를 받아 1위에 등극한 것이 한 예다. 물론 여성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것은 현빈이 연기한 ‘김주원’이었지만, 동성인 ‘길라임’에게도 그만큼의 애정과 호감을 표명한 셈이다. ‘서민 여성’, 그 중에서도 ‘강인한 서민 여성’은 여성의 사랑을 받고, 선택을 받고, 콘텐츠를 팔 수 있게끔 유도해준다.

 둘째, TV드라마건 영화건 한국의 극예술 장르는 기본적으로 ‘서민층’ 중심으로 내러티브가 흘러가게 돼있다. 부유층을 다루더라도 항상 서민층과의 갈등 상황을 반드시 고려하게 된다. 서민층 중심의 이야기를 원하는 것이 한국의 대중 정서이며, 그런 탓에 의사, 변호사 등 중산층 이상의 전문직을 다룬 드라마들이 연이어 실패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서민층 중심 극예술 콘텐츠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사실상 캐릭터의 안정감과 신뢰도다. 꾸준히 이런 역할들을 맡아온 배우들, 이런 역할들이 어울리는 배우들이 대중의 신뢰를 사 계속 콘텐츠를 팔 수 있게 되는 구조다. 그러나 남자배우들 중 송강호, 설경구, 김윤식 등이 이런 역할을 맡고 있다면, 여자배우들 중에서는 하지원과 전도연 외 딱히 내세울 인물이 없다. 단순히 지금 뿐만이 아니고, 최진실이 활약하던 1990년대도 마찬가지였다. 기이한 현상이지만, 어찌됐건 이런 수요공급의 불균형 탓에 하지원은 큰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하지원이 ‘필요한’ 콘텐츠들이 많아졌다. 그만큼 작품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성공률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최진실과 하지원이 다른 커리어 구도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진정한 차이점을 생각해보자. 최진실의 ‘서민 여성’ 이미지는 단순히 연이은 역할 선택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었다. 최진실 본인이 자신의 개인사들을 털어놓으며 배우 본인과 극중 캐릭터와의 이미지의 합일을 꾀했었다. 본인이 직접 자신의 ‘서민적’ 개인사를 알린 1991년 MBC ‘인간시대’의 ‘최진실의 진실’ 편은 무려 45%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시도들을 통해 최진실은 순식간에 ‘서민 여성’ 캐릭터의 여왕으로 떠올랐지만, 결국 발목을 잡힌 것도 그 때문이었다. 스타가 된 후 진행된 불행한 개인사들이 계속 화젯거리로 떠오르면서, 한 번 배우 본인과 일치시켰던 역할로서의 이미지도 함께 타격을 입게 됐다. ‘불편한’ 캐릭터가 된 셈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진실은 수년 이상 고전해야만 했고, 결국 이미지를 가히 ‘바닥’까지 떨어뜨린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까지 가서야 재기에 성공하게 됐다.

 그러나 하지원은 이와는 다르다. 자기 자신의 이미지는 거의 신비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노출시키지 않고 있다. 아무도 하지원이 누군지, 어떤 환경,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자라났는지 모른다.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적이 있긴 하지만, 거기서도 개인사적인 정보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하지원의 ‘서민 여성’ 이미지는 철저히 그녀가 선택한 콘텐츠에서 비롯된 것이며, 배우 본인과의 연계성은 사실상 거의 없는 셈이다. 그만큼 개인 사생활의 여부가 배우로서 커리어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적고, 한 마디로 ‘돌발변수’가 나오기 쉽지 않다. 하지원은 배우로서 최진실보다 더 안정적인 커리어를 만들어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끝으로, 하지원과 최진실 등 ‘서민 여성’ 이미지의 대표주자들이 보여주는 한 가지 속성을 생각해보자. ‘서민 여성’이 등장하는 콘텐츠 중 영화 장르는 대부분 상대 남자배우도 서민층으로 설정되곤 하지만, TV드라마 장르는 다르다. 그와 대비되는, 상대적으로 상위계급의 남성 캐릭터를 요구한다. 그리고 서민 여성 캐릭터가 안정감 있게 묘사될수록, 그에 대비되는 부유층 남성 캐릭터가 더 돋보이게 되는 효과를 발휘한다. 한 마디로, 하지원과 최진실이 콘텐츠에 안정감을 줘 판다면, 그 과정에서 스타로 떠오르는 건 결국 상대 남자배우가 돼버린다는 것.

 하지원과 최진실은 모두 이런 속성 하에서 상대 남자배우들을 스타로 등극시켰다. 최진실은 ‘별은 내 가슴에’를 통해 안재욱을 스타로 만드는데 일조했고, 하지원은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조인성을, ‘다모’에서 이서진을 스타로 등극시키고, ‘시크릿 가든’에서도 현빈을 스타로 떠올려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하지원은 스타가 되고 싶은 젊은 남자배우들이 가장 ‘함께 공연하고 싶은 여배우’로 꼽을 법한 배우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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