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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가족 같은 개 죽여도… "재물로 처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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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3-09-08 14:24:38  |  수정 2016-12-28 08: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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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김태원 기자 = 지난달 20일 경북 청송 현동면의 한 시골마을에서 박지혜(23)씨가 8년간 키워오던 개 길용이를 이웃주민이 잡아먹기 위해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 위쪽은 길용이의 생전 모습, 아래쪽은 이웃주민 A(60)씨의 집 냉장고에서 발견된 길용이의 사체 2013.09.08 (사진= 박지혜씨 제공)  photo@newsis.com
【대구=뉴시스】김태원 기자 = "8년을 가족 같이 키운 개가 고깃덩이가 돼서 돌아왔는데 20~30만원 상당의 재물 손괴래요"

 지난달 20일, 8년 동안 동생처럼 키워왔던 개 길용이를 이웃 주민의 몸보신 욕심으로 잃은 박지혜(23)씨가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경북 청송 현동면의 한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네이트판, 동물자유연대, 소셜네트워크시스템 등을 타고 '길용이 사건'으로 이름 붙여져 퍼졌다.

 당시 용변을 위해 아침에 잠깐 풀어두었던 길용이가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던 중, 지혜씨의 아버지가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탐문한 결과 바로 이웃집인 A(60)씨의 집 냉장고에서 길용이의 사체가 발견된 것.

 A씨는 처음에는 "길 잃은 개가 들어왔길래 주인을 찾아주려고 마당에 묶어놨었는데 어느샌가 도망쳤다"고 하다가 경찰이 추궁하자 그제서야 "잡아먹으려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혜씨는 "(길용이는)농사를 위해 시골에 남아계신 아버지가 적적한 마음을 달래시려고 데려다 키운 강아지"라며 "자식들이 외지에서 일을 하고 있어 외로운 아버지의 곁을 지켜주는 또 다른 자식이나 다름없는데 어떻게 그 사정을 뻔히 아는 이웃이 잡아먹으려 들 수 있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혜씨와 아버지의 마음을 더 상하게 한 것은 경찰의 태도였다.

 당시 지혜씨 아버지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구대의 한 경찰은 "이웃끼리 문제인데 좋게 해결하라"며 합의를 종용하기도 했다.

 청송경찰서로 옮겨진 이후에도 "시가 20~30만원 상당의 재물 손괴로 들어갈 것"이라고만 말한 뒤 사건 처리 과정을 알기 위해 지속적으로 전화하는 피해자 측에 제대로 된 조사 과정을 알려 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혜씨는 "재물 손괴 뿐 아니라 동물학대죄도 함께 물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며 "그런데도 우리가 동물학대죄를 이야기하기 전까지 경찰은 어떤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재물 손괴의 최고 형량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청송경찰서 관계자는 "재물 손괴의 형량이 동물 학대보다 높아 먼저 적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의 행동으로 여러 범죄행위가 발생할 경우 가장 중한 죄를 먼저 묻는 관념적 경합 규정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동물보호법도 동물학대죄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형에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개정됐음에도 이를 적용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따르고 있다.

 지난 7월 대구 달성군에서 발생한 '공장 개 독살 사건'과 이어 8월 대구 동구에서 발생한 '이웃집 애완견 둔기 살해사건' 모두 동물학대죄가 포함되지 않은 재물손괴죄로만 처리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이전까지 이런 사건은 재물손괴로 우선 처리되기 때문에 동물학대죄 등은 피해자가 요구할 경우에만 적용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물자유연대 이기순 정책기획국장은 "피해자들 중에서도 동물보호법을 제대로 몰라 경찰 측이 '가장 높은 형량의 죄를 적용하자'는 말에 재물손괴로만 사건을 종결하는 경우가 많다"며 "법을 잘 아는 경찰이 먼저 앞장 서 어떤 혐의가 함께 적용될 수 있는 지를 피해자에게 말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동물의 법적지위가 물건에 지나지 않다보니 경찰들도 이와 같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동물을 죽이거나 위해를 가해도 금품, 차량 등과 같은 재물 하나를 손괴한 것처럼 그 시가에 합당한 벌금이나 합의금을 내는 것으로 종결짓는 식이다.

 이에 이국장은 "개정된 보호법을 바탕으로 동물 역시 하나의 생명체임을 인식하고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는 1990년 이후 민법 등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조항을 추가해 시행하고 있다.

 우리 나라 역시 동물을 물건이 아닌 하나의 생명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 법률적 지위를 명확히 함으로써 폭넓은 법의 적용과 함께 생명체 경시 풍조가 근절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재정비가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bplace2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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