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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의 숨은그림찾기]샘바이펜 "'미쉐린 맨'과 ‘88만원 세대’ 대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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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6-09-04 09:20:16  |  수정 2016-12-28 17:3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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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watchman.2016, Sambypen
【서울=뉴시스】이언주 문화칼럼니스트 = 동글동글 빵빵하지만 유연한 몸매가 압권인 세계적인 타이어 브랜드 미쉐린(Michelin)의 캐릭터 ‘비벤덤’(Bibendum)이다. 2000년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로고’로 선정하기도 했던 이 캐릭터가 한결 경쾌해진 모습으로 서울에 상륙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샘바이펜(Sambypen, 본명 김세동·24)이 오는 10월 14~23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피프티피프티 갤러리에서‘웨이스티드’(WASTED)를 주제로 '비벤덤'을 선보인다.

 샘바이펜이 '비벤덤'을 오마주하게 된 건 아픈 사연이 있다. “초등학생 때 유난히 뚱뚱해서 친구가 없었어요. 혼자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소심한 아이였는데 우연히 통통한 타이어맨을 보니 꼭 저 같더라고요. 그때부터 캐릭터에 관심을 갖게 됐고 '비벤덤'은 자연스럽게 저를 대변해주는 캐릭터가 되었죠.”

  티몬과 품바를 비롯한 디즈니 캐릭터와 당시 인기 있었던 포트리스, 메가맨, 록맨 등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친구들도 주위에 모이기 시작했고 신바람이 났다.

 “친구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그려주는 대신 딱지를 받기도 했고, 그림을 잘 그려서 상을 받은 적도 있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내가 잘 하는 걸 하면서 무언가 대가를 받는 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왕이 된 기분마저 들었죠. 제가 순수미술 보다는 상업미술에 더 꽂히게 된 계기가 아닌가 싶어요.”

 캐릭터를 잘그리던 아이는 '패션디자이너'를 꿈꿨다.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에 입학했지만 더 하고 싶은 걸 찾기 위해 학교를 그만뒀다. 학생신분이었다가 백수로 전락했다. 부모님으로부터 받던 용돈도 끊겼다.  이태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었다. 주중엔 펍에서 시급 7000원을 받고 일했고, 주말엔 시급 6000원의 갤러리 지킴이를 하기도 했다. 이 '알바'가 도화선이 됐다.

 “심심하게 갤러리에 앉아 있으면서 이 공간에 내 작업을 전시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사실 오래 전부터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현실화 할 만한 공간이 없었는데, 갤러리에 있다 보니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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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샘바이펜, 캐릭터 ‘비벤덤’
 주말 알바생에게 덜컥 전시 기회가 주어진다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알바를 시작한지 3개월만인 지난해 9월에 꿈은 현실이 됐다. 이태원 경리단길, 젊은 작가들의 전시를 주로 선보이는 ‘드로잉 블라인드’라는 작은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작가가 됐다.

 “갤러리 측에 제가 처음 전시 얘기를 꺼냈을 땐 ‘아니 이 녀석 봐라’ 했을 거에요. 지금 생각하면 저도 신기해요. 전시 반응도 좋았고 재미있다는 분들이 많아서 뿌듯했어요. 아직은 누가 ‘작가님’이라고 부르면 오글거리지만 솔직히 기분이 정말 좋아요. 하하.”

 만 24세의 작가, 타투를 몸에 새기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그는 소위 말하는 ‘88만원 세대’를 대변하고 싶다고 했다.

 “요즘 우리 세대는 표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있는 그대로 말하고 행동하죠. 하지만 어떤 어른들은 표현하는 것 자체를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취직준비하고 공부해야 할 시간에 음악을 하고 그림을 그리느라 인생을 낭비한다고 하죠. 그런데 과연 그게 낭비일까요? 사실 정답은 모르겠어요.”

 그는 최근 그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작업 중이다. 1년만에 오는 10월 여는 두번째 전시는 다시 설렘이 앞선다. '버벤덤'은 현실적으로 진화했다.

 ‘크라이시스’(Crisis)라는 작품이 눈에 띈다. 귀여운 비벤덤이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데 석유가 뚝뚝 떨어진다. 한쪽 눈만 뜨고 있고 다른 눈은 하트뿅, 뭔가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욕구를 채우고자 열심히 먹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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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샘바이펜
 “샌드위치를 먹다가 그 속에서 석유가 나오면 보통 사람들은 깜짝 놀라 당장 버리겠지만, 얘는 맛있을 수도 있겠단 상상을 했어요.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고 돈을 쫓는 내 모습, 또는 우리 세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엎드려 좌절하고 있는 비벤덤을 그린 ‘브로큰’(Broken) 역시 작가 자신이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 말고 진짜 내 속은 어떨까, 스스로 물어보며 그렸다”고 한다. 때때로 마음이 꺾이고 낭패를 당하고 쓰러지는 우리의 모습, 하지만 또 일어나야 하는 그런 현실을 개성 있는 젊은 감성으로 풀어냈다.

 “미술 시장을 대표하는 어떤 작가이기 보다는 아직은 어린 제 또래, 20대 친구들의 상황을 그리고 싶어요. 취업난에 시달리고 하루하루 아르바이트 하면서 꿈을 쫓는 우리의 모습 말이죠. 10년, 20년 후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마 나중엔 또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현재 모습 그대로 표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전시에 필요한 재료를 사러 방산시장에 간다며 서두르며 돌아가는 작가를 보니TV CF 카피가 오버랩됐다. “오늘도 세상은 성공해라 취직해라 정해진 틀에 날 가두려고 하지만 난 내가 원하는 걸 할거야. 세상에 정답은 없어. 내가 가는 길이 정답이야.”

◆ 작가 샘바이펜(Sambypen, 김세동)= △파슨스 디자인 스쿨 중퇴 △아트1(http://art1.com) 플랫폼 작가로, 작품은 '아트1'에서 더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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