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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점]사후피임약 처방전 없이 구입 추진…안전성 논란 가열

등록 2012.06.07 12:00:00수정 2016.12.28 00: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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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정옥주 기자 = 정부가 사후긴급피임약을 의사의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약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사전피임약은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하고, 부작용 우려가 더 크다고 알려진 사후긴급피임약을 오히려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어 사회적으로 커다란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7일 ‘의약품 재분류안 및 향후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현재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된 사후긴급피임제 노레보정(레보노르게스트렐)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사후긴급피임약은 배란기라고 생각되는 시기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피임을 하지 않았을 경우 대처할 수 있는 피임법 중 하나다. 예컨대 계획되지 않은 성관계가 있었거나, 성폭력 등 원하지 않은 성교로 인한 임신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된다.

 최대 72시간 이내에 복용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가급적 12시간 이내 복용을 권장하고 있다. 피임성공률은 약 85% 정도다.

 일반의약품 전환이 확정될 경우 현재 국내 판매 중인 11종의 사후긴급피임약을 의사의 처방 없이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된다. 다만 보건복지부와 식약청은 청소년 등은 의사 처방을 받아야만 구입할 수 있게 하는 등 연령 제한과 성별 제한 등을 통해 오남용을 방지하겠다는 계획이다.

 식약청 관계자는 “사후긴급피임제는 장기간 또는 정기적으로 복용하지 않고 1회 복용하는 의약품”이라며 “임상시험, 학술논문, 시판후 조사 결과 등을 검토한 결과 사전피임제에서 문제가 되는 혈전증 등 심각한 부작용 우려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장 흔한 부작용인 구역, 구토, 일시적인 생리주기 변화 등은 일반적으로 48시간 내에 사라진다”며 “사후긴급피임제의 주요 작용기전은 배란 억제 또는 수정억제이며 일단 수정란이 착상된 이후 임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므로 낙태약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17세 미만은 처방 필요), 영국(16세 미만 처방 필요), 프랑스, 스위스, 캐나다 등 의약선진국 8개국 중 5개국에서 사후긴급피임제를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하고 있다.

◇사전피임약보다 호르몬 함량이 10~15배…과연 안전한가

 정부의 이 같은 계획에 의료계와 종교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의료계와 학계에서는 사후피임약을 오남용할 경우 극심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학회에 따르면 응급피임약은 일반피임약 보다 호르몬 함량이 10~15배나 많은 고농도의 호르몬제여 오남용은 물론 적정 사용시에도 여성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한 월경주기에 사후긴급피임약을 반복 사용할 경우 그 부작용이 더욱 심각하고 정상 용량 범위 안에서 사용하더라도 출혈(31%), 오심, 복통 등의 부작용 발현의 빈도가 높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판되는 모든 의약품 중 오남용의 우려가 가장 큰 약제의 하나가 응급피임약”이라며 “응급피임약은 정상적인 피임방법과 달리 피임 실패율이 높고 원치 않은 임신과 낙태율 감소에 효과가 없음이 이미 여러 나라에서 입증되고 있다”며 일반의약품 전환 계획에 강력히 대처할 방침임을 알렸다.

 이들에 따르면 2000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한 노르웨이는 일반의약품 전환 이후 응급피임약 판매량은 30배 이상 증가했지만 낙태율 감소 효과는 없었다.

 스웨덴의 경우 2001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한 이후 2007년까지 응급피임약의 매출액은 3배 가까이 성장한 반면 같은 기간 낙태율도 17% 증가했고, 중국의 경우 응급피임약을 자유롭게 구입한 경우 처방한 경우보다 응급피임약을 2배 더 사용하고 임신율이나 낙태율에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회는 “응급피임약은 실패율이 15% 내외로 높은데 일반의약품으로 전환될 경우 일반인들이 여기에 의존해 사전 피임을 소홀히 할 가능성도 높아진다”며 “이럴 경우 오히려 낙태 위험이 증가하고 콘돔 사용의 감소로 성병이나 여성 골반염 등이 증가할 우려가 있고 이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성의식과 피임에 대한 인식이 낮은 우리나라의 경우 사후긴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에 대해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의약선진국들의 사례를 따르는 것은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의 모임' 대변인인 최안나 산부인과 전문의는 "사전피임률이 형편없이 낮은 우리나라의 경우 무작정 외국의 사례를 따라할 것이 아니라 철저한 성교육을 통해 사전피임률부터 높여야 한다"며 "또 분만을 하는 여성병원에서는 24시간 응급피임약을 처방받을 수 있고 휴일에도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응급실에 비치하고 있어 야간, 연휴, 휴일 등에 처방을 받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사후긴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약사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사후 피임제는 성관계후 가능한 한 빨리, 늦어도 72시간 이내에 복용해야 응급피임 효과가 제대로 발현된다”며 “특히 배란기의 성관계 당시에는 수정 여부를 의사 또한 진찰을 통해서 확인할 수 없고 결국 의사의 진료결과에 무관하게 소비자 자신의 판단으로 복용여부를 결정하는 특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소화기 장애, 두통, 현기증, 월경외 출혈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나 대개 48시간 이내 사라지며, 여성호르몬제의 혈전증, 심혈관계 부작용 등은 1회 복용으로 나타나지 않는 등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논란에 대해 식약청 관계자는 “사후긴급피임약을 긴급한 경우 이외에 일상적으로 복용할 경우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면서도 “다만 최대한 빠르게 복용해야 효과가 있고 연령제한 등을 통해 성의식을 제대로 갖춘 성인들에게만 판매하는 등 신중히 고민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의약단체, 종교계, 여성단체, 시민단체, 언론 등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열고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 분류 결정을 7월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가 여성 건강을 위협하지 않는 예방책과 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확실한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일반약 전환을 강행할 경우 거센 비판을 피해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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