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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네팔에서 온 편지(17)]'복구만 잘 하면 되리라 싶었는데…' 네팔 피해는 '현재진행형'

등록 2015.05.29 06:00:00수정 2016.12.28 15: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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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카트만두=뉴시스】카담바스 마을에서 진료받는 아이. (사진 = 대한적십자사 제공) 2015.05.29.  photo@newsis.com

【서울/카트만두=뉴시스】카담바스 마을에서 진료받는 아이. (사진 = 대한적십자사 제공) 2015.05.29.  [email protected]

【서울/카트만두=뉴시스】열일곱번째 편지-대한적십자사 전대식 긴급구호요원

 2015년 5월25일.

 네팔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다니다보면 찰리 채플린의 말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

 그렇게 몇 대를 거슬러 올라 도대체 언제부터였을지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은 높고 험준한 산을 깎고 또 깎아 거대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사람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이 거대한 자연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을 떡 벌어지게 한다. 하지만 그저 아름답게만 보이던 풍경 속으로 점점 들어가보면 무너진 집, 흘러내린 산, 천막 속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아까와는 또 다른 의미로 입이 떡 벌어진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본 네팔은 비극이었다.

 대한적십자사 긴급의료단은 오늘도 의약품과 필요 물품을 챙겨 비극의 네팔 속으로 들어간다.

 평온하게 흘러가는 강줄기를 향해 차는 한참을 돌아 내려갔다. 오늘 의료단이 방문한 지역은 버떼강이 평온하게 흘러가는 카담바스 지역 반시마을. 네팔적십자사와 지역 보건담당자는 설사와 감기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며 긴급의료단의 진료를 요청해왔다.  

 처음 진료활동 장소로 선정한 곳은 강가의 그늘 한 점 없는 학교 운동장이었으나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지역주민이 의료진을 위해 본인이 운영하는 식당을 진료장소로 흔쾌히 내어주었다. 늘 천막 속 간의책상에서 진료하던 의료진은 고마움에 연신 고개를 숙였다.

 흙먼지에 마스크를 하고, 해가 움직일 때마다 그늘을 찾아 조금씩 의료텐트를 옮기지 않고 그늘에서 진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든 환경 속에서도 이웃을 위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고,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네팔 사람들의 따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카트만두=뉴시스】눈이 보이지 않는 부인 손을 잡고 3시간을 걸어온 노부부. (사진 = 대한적십자사 제공) 2015.05.29.  photo@newsis.com

【서울/카트만두=뉴시스】눈이 보이지 않는 부인 손을 잡고 3시간을 걸어온 노부부. (사진 = 대한적십자사 제공) 2015.05.29.  [email protected]

 네팔 지진 후 한 달. 집을 잃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재료를 이용해 간이천막을 쳤다. 천막 생활은 어른에게도 버티기 힘든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엄마, 아빠 손을 잡은 꼬마 손님들이 콜록 거리며 넓은 식당을 채웠다.

 뭐가 그리 서러운지 훌쩍이는 코를 닦아줘도 눈물을 멈출 줄 모르는 아이부터, 맨발로 지진복구를 하다 양철판을 밟아 발을 찢어진 아이까지 진료소가 차려진 식당에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점심 무렵,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더운 날씨 속에 손을 꼭 잡은 노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계단 하나 오르고 잠시 쉬고, 또 계단 하나 오르고 쉬길 반복하는 노부부의 얼굴은 평온함 그 자체였다.

 "할머니 눈이 잘 안보이세요?"

 손짓으로 물으니 할머니 손을 꼭 잡은 할아버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에서 의료진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부터 집을 나서 3시간 가까이 걸어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한국에서와 같이 최적의 치료를 해 주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노부부의 꼭 잡은 손이 오늘 우리가 처방해준 약보다 더 효과가 좋은 약임은 분명하다.

 오후 4시. 아침 8시부터 진행된 의료 활동을 마무리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간다. 멀리 돌아가는 포장된 도로 대신 좀 더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을 택했다.

 울퉁불퉁한 네팔의 산길을 오르는 동안 몸은 좌우로 흔들흔들 춤을 춘다. 한참 춤을 추던 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분명 지난번까진 길이 괜찮다고 했었는데 언제 산사태가 나서 내려앉은 것인지, 무너져 내린 바위들로 도로는 막혀 있었다.

 조심스레 지나가볼까 했지만 강한 지진과 수차례의 여진으로 지반이 약해졌는지 길 한편이 계속 허물어지는 형태여서 차를 돌려 우회도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서울/카트만두=뉴시스】대한적십자사 전대식 긴급구호요원. (사진 = 대한적십자사 제공) 2015.05.23.  photo@newsis.com

【서울/카트만두=뉴시스】대한적십자사 전대식 긴급구호요원. (사진 = 대한적십자사 제공) 2015.05.23.  [email protected]

 이틀 전엔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의료활동을 마무리 하고 저녁을 먹으려던 캠프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베이스캠프를 둘러싸고 있던 천막이 바람에 찢어지고, 물건들이 날아다녔다.

 나종권 구호요원에 따르면 지난번 7.4 규모의 여진이 오기 전날도 꼭 이런 비바람이 캠프를 지나갔다고 했다. 오늘 밤도 강한 비바람이 캠프를 찾아왔다. 그래도 지난번에 한번 겪어서인지 멀리서 보이는 번개에 미리미리 짐들을 치우고 재정비에 돌입했지만, 우리의 준비태세가 무색하리만치 강한 바람은 또 천막을 찢고 비를 뿌렸다.  

 이제 복구만 잘 하면 되리라 생각했는데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이곳의 상황이 불안하기만 하다.

 앞으로 이런 비바람은 몇 차례는 더 올 것이고, 몬순이 그 뒤를 기다리고 있는데 길거리에 나앉은 네팔사람들은 이 비바람을 어찌 넘어갈까.

 안전한 베이스캠프에서 지내는 우리도 이렇게 허둥거리는데, 하늘을 가릴 방수포 한 장 없는 집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근심이 깊어진다. 대한적십자사가 준비한 2600여장의 방수포가 네팔 이재민의 하늘을 모두 가려주진 못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대한적십자사 네팔 주민 돕기 모금 캠페인]

 대한적십자사는 대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네팔 주민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여러분의 정성을 모으고 있습니다.

 대한적십자사 네팔지진 모금 계좌(국민은행, 004437-04-006707 / 우리은행, 1005-002-719129 / 신한은행, 140-010-926666 / 외환은행 631-000546-915, 예금주 : 대한적십자사)를 개설하고 온라인 모금(해피빈, 희망해)과 ARS 모금(060-700-1234 1통화 2000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네팔 주민들을 돕기 위한 문의는 긴급재난구호대책본부 상황실 (02-3705-3680~6)로 해주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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