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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터뷰] '미성 테너' 김세일 "메시지 주는 성악가 되고 싶어요"

등록 2015.08.01 06:00:00수정 2017.01.05 00: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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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일, 테너(사진=목(MOC)프로덕션)

김세일, 테너(사진=목(MOC)프로덕션)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테너 김세일(38)은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드물게 유럽에서 에반겔리스트(Evangelist)로 활약하고 있다.

 복음사가, 즉 복음서를 집필한 저자를 뜻하는 에반겔리스트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과 '요한 수난곡' 등의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동시에 해설자 역이다.

 정확한 발음의 가사 전달력과 경건하고 섬세한 음색이 요구되는 작품이라 동양인에게 이 역이 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탈리아 작곡가 몬테베르디(1567~1643)의 오페라 '오르페오'의 국내 초연 무대에서 김세일은 그래서 빛났다. 타이틀롤를 맡은 그는 러닝타임 내내 거의 무대에 오르며 극을 이끌어갔다.

 바로크시대부터 현대까지 시대와 장르, 언어를 초월하는 레퍼토리를 지녔으니 한국에서 생소한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라고 해도 그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소년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미성을 지닌 신사 이미지로 배역에 우아함을 더하고 있는 김세일을 최근 광화문에서 만났다.

 세계적인 성악가인 요나스 카우프만의 반주자인 헬무트 도이치와 작업하는 등 한국보다 유럽에서 더 유명한 그는 이제 고국 활동도 본격화하겠다고 눈을 빛냈다.  

 -'오르페오'를 잘 마쳤어요. 세일 씨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지난해 국립오페라단의 '돈 조반니' 이후 국내에서는 두 번째 오페라 무대인데요.  

 "일단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오페라의 가능성을 봤죠. 대중 분들 입장에서도 신선했을 것 같아요. 그 동안 이런 종류의 오페라 맛을 보시지 못해서 그런지 반응이 더 좋았어요. 10년 전만 해도 한국에 이렇게 카페가 많지 않았잖아요. 이태원에도 식당이 정말 다양하게 생기고. 클래식 음악도 그처럼 다양하지 못했지만 점점 폭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은 어때요? 특히 네덜란드 기반으로 거주하는 한국인 성악가는 거의 없는데요.

 "일단 네덜란드는 고음악이 발달돼 있어 정말 좋아요. 고음악이 한창 유행하던 때에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그 중심이었거든요. 오페라가 이탈리아에서 중심이었던 것처럼요. 네덜란드에 거주하게 된 이유는 에반겔리스트와 밀접한 관계가 있죠. 이곳은 사순절, 부활절만 되면 전국의 모든 콘서트홀에서 바흐의 '마태수난곡'이 울려퍼져요. 인기 있는 장르죠. 제가 노래할 기회가 많은 거죠. 오라토리오(종교음악)가 많이 발달돼 있어요."  

 -유럽에서 아시아인이 에반겔리스트로 활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들었어요.  

 "자막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노래를 듣는 순간 현지인들이 그 언어를 바로 이해해야 하거든요. 일종의 '노래하는 아나운서'죠. 레치타티보(오페라나 종교극 따위에서 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로 노래를 해야 하거든요."

 -다양한 나라에서 여러 언어를 습득하며 다양한 음악을 공부했어요.(서울예고 재학 시절 유럽으로 건너간 김세일은 로마 산타체칠리아 음악원, 스위스 제네바 음악원, 스위스 취리히 음대 최고연주자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오페라 스튜디오, 네덜란드 콘서트헤보우, 베를린국립오페라극장 등에서 활약했다. 이탈리아어, 독일어, 영어 등에 능통하다.)

 "처음에 저도 에반겔리스트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처음에 오페라의 본거지인 이탈리아에서 공부하고 싶어 고등학교 때 용기 내 유학을 갔죠. 그러다 스위스로 옮겼는데 그곳은 4개 국어를 써요. 불어, 독일어 문화권이 섞여 있죠. 거기서 공부를 하다 이런 장르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스물 일곱살 때, 뒤늦게 알게 됐는데 재미를 느껴서 비교적 빨리 좋은 결과를 냈어요."

 -에반겔리스트로서 좋은 점이 있나요?  

 "담백하게 집중할 수 있는 점이 매력이죠. 오페라가 마라톤이라면 에반겔리스트는 단거리에요. 성격이 달라서 각자 매력이 있죠."  

김세일, 테너(사진=목(MOC)프로덕션)

김세일, 테너(사진=목(MOC)프로덕션)

 -맨 처음에 어떻게 노래를 시작하게 됐어요?  

 "MBC 어린이 합창단 출신이에요(웃음). (1980년대 초 인기를 끈 어린이 프로그램인) '야! 일요일이다'에 나오기도 했어요. 그 때 음악을 처음 시작했죠. 성악을 하게 된 것은 이 장르에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는 것을 보고 흥미를 가졌기 때문이에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고 이탈리아에 간 것은 정말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일입니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어요. 제가 외동 아들이라서요. 근데 이왕 성악을 할 거면 종주국인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죠."

 -세일 씨는 훈남풍으로 매너 좋은, 귀족적인 이미지가 있어요. 부담스럽지는 않나요?

 "제가 하는 역에 큰 도움이 돼요. 그런 이미지를 만들려고 한 게 아니라 우연치 않게 됐는데 여러가지 레퍼토리를 소화하는데 보탬이 됩니다."  

 -무엇보다 풍부한 미성이 느껴져요. 소년의 목소리 같기도 합니다.  

 "소년을 생각해서 부러 소리를 내요. 70~80세가 돼서도 노래를 하고 싶은데 벌써부터 소리를 늙게 내면 나중에 힘들어질 것 같아서요. 그래서 항상 소년이라고 생각하면서 노래하죠. 80세까지 노래한다고 생각하면 아직 반도 안 왔거든요(웃음)."

 -EBS 라디오 '클래식 드라이브'(8월말까지 방송) 진행자로도 활약하며 더 많은 대중과 만났어요.

 "재미있게 했어요. 이미 녹음은 다 마쳤는데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웠죠. PD님이 외국에 있으니 현지의 색다른 이야기를 많이 들려달라며 섭외하셨고 저도 그곳의 여러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노력했죠."  

 -클래식음악과 대중의 접점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클래식음악은 예전부터 대중적이지 않았어요. 일부 계층에서 하고 듣는 음악이었죠. 그래서 대중화가 목표라기보다, 말장난일 수 있죠. 대중의 클래식화를 바라고 있어요. 클래식 음악은 천년동안 내려온 음악이기 때문에 특별한 무엇이 있다고 생각해요.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도 늘 재해석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는 음악이죠. 분명히 큰 의미가 있어요. 그러니 어느 정도 마음을 열면 조금씩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클래식 음악이죠. 접하면 반드시 큰 수확이 있을 거라고 자신해요."  

 -종종 차세대 테너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세일 씨에겐 이미 지나간 수식 같아요. 이미 정상급이죠. 앞으로 어떤 성악가가 되고 싶나요?  

 "노래를 잘 하는 사람, 좋은 사람이 아니라 뭔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중요한 메시지가 있으면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귀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오감을 즐겁게 하고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제 노래로 치유가 될 수 있으면 그보다 기쁜 건 없을 것 같아요. 또 오라토리오가 한국에서는 생소한 분야인데 이 음악을 알릴 수 있는 전도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종교적이라기보다 그 음악 자체에 큰 매력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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