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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75년만에 바로잡았다, 세종대왕 ‘어제’ 훈민정음

등록 2017.08.22 13: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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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 소장의 훈민정음 언해본 복원본, 2015. 國之語音(국지어음) 부분은 2007년 문화재청 복원본과 같고, ‘나랏말싸미’부터는 서강대본(1459)과 같다.

【서울=뉴시스】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 소장의 훈민정음 언해본 복원본, 2015. 國之語音(국지어음) 부분은 2007년 문화재청 복원본과 같고, ‘나랏말싸미’부터는 서강대본(1459)과 같다.

【서울=뉴시스】신동립 ‘잡기노트’ <560> 쾌거, 훈민정음 어제서문 75년만에 복원 ③·끝

 서강대 언해본(1459) 제3장 뒷면에 작은 글씨로 쓰인 협주 부분은 문제의 제1장 앞면의 글 제목과 주석 내용에 대한 단서이자 증거다. 처음 나온 2단어(5글자) “초발성 병서(初發聲 並書)”에 대해 “初는 처음이라, 發은 펼씨라”식의 낱글자 풀이 없이 곧바로 단어 설명을 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어제훈민정음(御製訓民正音)’도 2단어(6글자)로 돼 있다. 오직 2행의 공간만 주어진 상황에서, 1459년 변개 이전에는 “御는 임금이라, 製는 글지을씨라”할 필요 없이 곧바로 “御製는 임금 지으신 글이라. 訓民正音은 백성 가르치시는 正한 소리라”는 단어설명으로 시작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세종이 돌아가시자 묘호인 ‘세종(世宗)’을 첨가할 필요가 생겨 칸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2행을 차지하는 ‘국지어음(國之語音)’ 부분을 1행으로 줄이는 과정에서 공간이 확보돼 몇 글자에 대한 풀이를 더 집어넣은 것으로 보인다. 

 박대종 대종언어연구소장은 “세종실록(1446년 9월29일) 기사에 분명히 사관이 ‘훈민정음’ 책 서문에 쓰인 ‘어제’ 부분을 눈으로 보고 “이 달 훈민정음이 완성됐다. 어제왈(曰)”이라고 국가 최고 공문서인 실록에 기록을 했다. 또 서강대 언해본에도 분명히 ‘세종어제훈민정음’이라고 ‘어제’가 기록돼 있으니 경솔히 이를 무시하면 안 된다. 사정이 이와 같으므로 ‘어제’를 부정하는 정우영 동국대 교수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게 되고, 2007년 문화재청의 언해본은 왜곡본이 된다”고 지적했다.  

 제2차 복원안(1986)을 낸 안병희 서울대 교수는 세종대왕 서문 1쪽 마지막 글자 ‘聲’ 바로 뒤에 ‘並書’를 곧바로 연결해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논문 ‘훈민정음 한문본의 낙장 복원에 대한 재론’(2001)에서 이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 1940년 제1차 복원본의 편집을 고수했다. 박 소장은 “초성 ‘ㄱ’부터 중성 ‘ㅕ’까지의 기존 편집은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 깔끔하다. 그렇다 해도 디자인이 한문서법 원칙에 우선할 수 없는 법이다. 정 교수는 시원시원하게 보이는 기존의 편집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인지,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매우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그 자신의 논지 말미(국어국문학 129, 212쪽)에 쟁점의 해답이 존재한다”고 봤다.

 병서 행 “並書如虯字初發聲”의 경우에, ‘병서’는 [나란히 쓴/쓰는 것], 즉 명사류로 이해되는데, 합자해에서 各自並書나 合用並書처럼 명사로 사용된 경우도 있으므로 (1940년 1차 복원본처럼) ‘並書’ 뒤에 구점을 찍고 병서 행의 첫칸을 비워 (6)과 같이 재구한다.

 (6)ㄱ。牙音。如君字初發聲
【서울=뉴시스】서강대본 훈민정음 언해본, 제3장 뒷면

【서울=뉴시스】서강대본 훈민정음 언해본, 제3장 뒷면

 並書。如虯字初發聲  

 박 소장은 “위 ‘ㄱ’ 다음의 ‘아음(牙音)’이란 말은 명사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와 대등한 위치의 편집을 위해서는 ‘병서’라는 말 또한 명사여야 한다. 그런 관계로 정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고자 위 문장에서의 ‘병서’를 ‘명사류로 이해되는데’라고 했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세종대왕과 신하들은 언해본에서 위 ‘병서’를 ‘ㄱㆍㄹㅸㅏ쓰면(나란히 쓰면)’이라고 명사가 아닌 동사로 번역했다. 또 ‘병서하면,’은 문장이 아직 끝나지 않은 부사절이기 때문에 ‘서’자 뒤에는 쉼표 두점을 찍어야 한다. 따라서 위 (6)과 같이 마침표 구점으로 재구한 그의 견해는 오류다. 그리고 위 ‘병서’는 ‘ㄱ을 나란히 쓰면’이므로 안병희 서울대 교수의 주장처럼 당연히 ‘聲’자 뒤에 붙여 써야 한문 어법에 맞다. 언해본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고 못박았다.

 이상, 간송 해례본 낙장 부위에 대한 1940년 김태준과 이용준의 제1차 복원안부터 2001년 정우영의 제5차 복원본까지 모두 살펴봤다. 이어 훈민정음 월인석보 언해본 중 제1장 앞면의 변개 부분에 대해, 정 교수의 안을 수용해 제작한 2007년 문화재청의 훈민정음 언해본 또한 정밀 점검한 결과물이 바로 ‘2015년 박대종의 훈민정음 언해본 복원본’이다.

 박 소장은 “훈민정음 언해본의 세종대왕 서문의 원제가 ‘御엉製졩訓훈民민正졍音ㆆㅡㅁ’임은, 그것이 해례본을 대상으로 언해한 것이기 때문에, 해례본 서문의 제목이 ‘어제훈민정음’임을 증명한다”며 “선학들의 연구를 종합적으로 검토, 해례본 낙장 부분에 대한 최종 결론안”을 제시했다.  

 御製訓民正音
 國之語音∘異乎中國∘與文字
【서울=뉴시스】박대종 소장의 훈민정음 해례본 세종서문 1장 앞면(왼쪽)과 뒷면 복원본, 2015. <왼쪽>은 간송본에 비해 앞부분 ‘御製(어제)’와 끝부분 ‘&#20006;書(병서)’가 추가되는 등 글자 모양과 권점 등이 매우 다르다. <오른쪽>은 ㄴ, ㅌ, ㄷ, ㆁ,ㅋ에 대한 크기, 배치 등을 철저히 고증해 복원한 것이다. 글자는 자가줄기세포 이식법처럼 해례본 본문에서 취했고, 없는 네 글자(御, 製, 予, 憫)는 같은 필진에 의해 제작된 용비어천가에서 취해 최대한 원본에 가깝도록 했다.

【서울=뉴시스】박대종 소장의 훈민정음 해례본 세종서문 1장 앞면(왼쪽)과 뒷면 복원본, 2015. <왼쪽>은 간송본에 비해 앞부분 ‘御製(어제)’와 끝부분 ‘並書(병서)’가 추가되는 등 글자 모양과 권점 등이 매우 다르다. <오른쪽>은 ㄴ, ㅌ, ㄷ, ㆁ,ㅋ에 대한 크기, 배치 등을 철저히 고증해 복원한 것이다. 글자는 자가줄기세포 이식법처럼 해례본 본문에서 취했고, 없는 네 글자(御, 製, 予, 憫)는 같은 필진에 의해 제작된 용비어천가에서 취해 최대한 원본에 가깝도록 했다.

 不相流通。故愚民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予
 爲此憫然∘新制二十八字∘欲 ※爲(거성)
 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 ※易(거성), 便(평성)
 ㄱ。牙音。如君字初發聲。並書∘
 如虯字初發聲    ※1장 뒷면 첫줄. 이하 생략

 위 안을 최세화 동국대 교수의 제3차 복원안과 비교하면, ‘便’자에 대한 ‘평성표시 권점’ 하나만 제외하고 모두 동일하다. ‘便’의 권점 부분은 제2차 복원안을 낸 안병희 교수의 주장이 타당하다. 이 결론안을 토대로 박 소장은 낙장 부위에 대해 원본에 최대한 가까운 복원본을 만들었다. 제작 원칙은 크게 4가지다.

【서울=뉴시스】박대종 소장의 훈민정음 해례본 세종서문 2장 앞면(왼쪽)과 뒷면 복원본, 2015. 간송본에 비해 글자배치와 모양이 다르다. ㅊ, ㅈ, ㅁ, ㅍ, ㅂ(왼쪽)과 ㄹ, ㅇ, ㅎ, ㆆ, ㅅ(오른쪽)의 크기, 배치 등을 철저히 고증 복원했다.

【서울=뉴시스】박대종 소장의 훈민정음 해례본 세종서문 2장 앞면(왼쪽)과 뒷면 복원본, 2015. 간송본에 비해 글자배치와 모양이 다르다. ㅊ, ㅈ, ㅁ, ㅍ, ㅂ(왼쪽)과 ㄹ, ㅇ, ㅎ, ㆆ, ㅅ(오른쪽)의 크기, 배치 등을 철저히 고증 복원했다.

 첫째, 훈민정음의 정기를 살리기 위해 제작에 소용되는 글자들은 손으로 절대 쓰지 않고 해례본 원문 중에서 그 모습 그대로 취했다. 원문에 여러 개의 글자가 있으면 가급적 모양이 바른 해서체를 취하고, 1개의 글자만 있는 경우에는 행서체라도 취했다.

 둘째, 해례본 원문에 없는 ‘御, 製, 予, 憫’은 쪽자 방식을 쓰면 자칫 당시의 자형과는 다를 수 있으므로 해례본 제작진이 동시기에 동일 서체로 제작한 용비어천가에서 어울리는 것(序1a, 8권25b, 9권23a, 2권11b)을 취했다.

 셋째, 원문 글자가 흐릿하거나 일부가 잘린 경우는 보정 작업을 했다.

 넷째, 낙장 부위 총 4쪽에 대한 복원본은 쪽별로 제작하되, 테두리는 간송본 제4장 앞면의 것 등을 활용했고 닳아진 판심 부분은 복원하지 않았다.

 박 소장은 “1940년 판매의 목적으로 졸렬하게 복원된 결함투성이의 제1차 오작을 계속 방치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고 세종대왕을 모독하는 일이다. 이를 바로잡는 것은 우리의 당면과제다. 결론안과 원칙을 토대로 낙장된 훈민정음 해례본 어제서문 부분(2장 4쪽 분량)을 복원하면, 4쪽 모두 우리가 기존에 익히 보아온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며 훈민정음 언해본처럼 ‘어제훈민정음’으로 시작하는 최종 복원본을 완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한 복원본을 75년 만에 복원해 매우 감개무량하다”는 박 소장은 전국한자한글추진총연합회의 ‘한글+한자문화’ 12월호에 논문 ‘훈민정음 어제서문의 복원, 간송 해례본 낙장과 월인석보 언해본을 중심으로’를 발표할 예정이다.

 “세종실록의 ‘어제왈’ 부분과 ‘세종어제훈민정음’으로 시작하는 월인석보 언해본은 훈민정음 해례본 중 세종대왕 서문의 제목이 ‘어제훈민정음’임을 증명한다. 이를 무시하고 잘못된 관념 하에 ‘어제훈민정음’을 ‘훈민정음’으로 바꿔 제작 공포한 2007년 문화재청의 ‘복원언해본’은 오류다. 월인석보 이전의 바른 언해본 모습을 제시했고, 해례본 낙장 부분은 남아있는 훈민정음 원본 자체의 틀과 글씨들을 활용해 세종 당시의 모습과 최대한 가깝게 복원했다.”

 문화부국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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