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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그때 그시절]'명다방을 아시나요'…서울 한복판 50년된 추억의 휴식처

등록 2015.12.19 05:00:00수정 2016.12.28 1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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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명다방. 처음 개장한 50년 전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장사를 하고 있다.

서대문역 인근에 마지막 남은 50년전 그대로 '만남의 장소'

【서울=뉴시스】 이혜원 기자 = '약속하신 분 찾으러 오셨어요?'

 10일 오전 10시30분께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명다방'. 불 꺼진 가게 앞을 서성이던 기자에게 다방 주인이 물었다. 인근에 커피전문점 여러 곳이 개장한지 3시간도 넘은 시간. 명다방은 다소 늦게 장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정해진 시간 없이 단골손님이 나올 시간에 맞춰 문을 열어왔지만 손님들의 불만은 없었다.  

 커피전쟁이 뜨거운 요즘 원조 다방을 찾았다.  

 명다방은 미근동 오피스가의 터줏대감이다.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늘어선 충정로와 통일로 사이 골목에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60년대 현재 건물이 세워짐과 동시에 지하 1층에 문을 열었다.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건물에 입주한 다른 점포의 주인, 종류는 수없이 바뀌었지만 명다방은 아직도 그대로다. 주인이 몇 번 바뀌긴 했지만 예전 상호, 간판을 사용한다.  

 가게 안에는 초기에 들여놨을 것으로 보이는 소파 67개와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다. 회색 가죽소파는 현재 주인이 22년 전 가게를 인수하면서 들여왔다고 한다. 팔걸이 없는 구식 소파는 찢어진 곳 하나 없이 수십 년을 버텼다. 50년 전 다방을 처음 열 때부터 사용한 탁자는 곧 회갑을 맞이한다. 벽에 걸린 동양화, 상호가 새겨진 칸막이 거울 등 인테리어도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부인이 운영할 건데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았겠어. 당시 생각하면 인테리어가 상당히 세련된 거지. 그땐 주방에 카운터 딸린 곳도 얼마 없었어요" 50대 초반 명다방 주인 권정자(가명·여)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도 명다방과 함께 젊은시절을 보냈다. 22년째 운영 중이라는 2대 사장 권씨는 "가게 곳곳 건축가의 애정이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명다방은 건물 건축주가 부인을 위해 차려놓은 선물이었던 탓에 내부 장식으로 고급 자재들이 사용됐다. 천장 전면을 방음효과가 있는 코르크로 덮고 곳곳에 스테인드 글라스를 박았다. 당시에는 음악을 꽤나 크게 틀었다고 한다. 테이블을 많이 놓은 탓에 칸막이가 없어 옆 테이블 손님들간에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한 조치였다.  

 주방과 카운터가 붙어 있어 내부에서 커피를 끓이다가도 손님이 계산을 하겠다고 자리에서 일어서면 한 걸음에 카운터로 달려갈 수 있게 했다. 프랜차이즈 대형 커피브랜드들도 다들 그렇지만 60년대만 해도 생소한 구조다. 때문에 당시 한 번 들른 손님들은 명다방만 찾았다고 한다.  

 한 때 몰려드는 손님들로 시끌벅적했다. 당시 명다방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한다. 마담이 끌여주는 쌍화차를 마시기 위해 아침부터 인근 경찰청과 서대문경찰서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경찰서에 민원을 보려고 몰려드는 사람들도 다 이곳 명다방에서 커피, 쌍화차를 마시면서 기다렸다. 당시 서대문사거리에 위치한 핫플레이스였던 셈이다.  

 ◇쌍화차부터 과일주스까지...15개 메뉴 중 커피는 한 종류

 "우리 가게 명물은 쌍화차지. 아침 안드셨으면 든든하게 한 잔 마셔요." 처음 와보는 기자가 메뉴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자 권씨는 쌍화차를 권했다.  

 가스레인지 위에 주전자를 올려 미리 만들어 놓은 쌍화차를 데워냈다. 직접 응축액에 계피와 대추 등을 넣고 끓였다며 자랑했다. 15가지 견과류와 노른자가 둥둥 뜬 쌍화차가 흰색 사기 찻잔에 담겨 나왔다. 한 잔 5000원. 이곳에서 가장 비싼 메뉴면서 인기도 가장 많다.

 명다방에서 파는 메뉴는 총 15가지다. 이중 커피는 '다방커피' 하나뿐이다. 쌍화차·대추차·유자차 등 전통차와 딸기·토마토·복숭아 주스 등이 대부분이다. 다방커피는 원두커피를 끓여낸 뒤 손님의 취향에 맞게 커피와 프리마를 섞어 마시는 것을 말한다. 흔히 먹는 믹스커피와 비슷한 맛이다. 예전에는 '설탕 2스푼, 프림 2스푼’이 인기였지만 그건 옛날식이란다. 커피는 "두 개의 브랜드 커피를 섞어 내는 게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2000년대 들어서기 전까지는 흔히 '레지'라고 불리는 다방 여종업원이 옆에 앉아 입맛대로 커피도 타 주고, 재떨이도 갖다줬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직원 구하기가 힘들어졌고, 2000년쯤부터는 혼자 일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권씨는 주방으로 들어갔고, 그 대신 테이블마다 설탕 단지를 놨다. 요새는 입맛이 다양해 알아서 먹도록 놔둔다.  

벽에 걸린 명다방 메뉴판. 이곳에서 파는 음료는 15여개. 이중 대부분이 쌍화차 등 전통차다.

 ◇2000년대 이후 사라진 다방들...IMF에 아가씨들까지 떠나니 손님 3분의 1로 줄어  

 하루에 명다방을 찾는 손님은 50명 가량. 권씨가 가게를 인수한 1990년대 중반 손님의 3분의 1규모다. 90년대 말까지 가게가 늘 만석일 정도로 손님이 즐비했다. 자리도 지금보다 7석이나 많았다. 당시를 그려보면 테이블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비좁았을 것으로 보인다. 찾아오는 손님도 손님이지만 배달도 많았다. 지금이야 탕비실에서 알아서들 타 먹지만 당시에는 커피하면 배달이었다고 한다.  

 권씨는 "당시 아가씨들이 배달 한 번 가면 한 손에 찻잔 열댓 개를, 다른 쪽엔 보온병을 들었어요. 무겁지만 그게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라고 회고했다.  

 손님은 90년대 이후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인근 직장인들이 대거 명예퇴직하자 다방 이용 연령대 직장인들이 거리에서 사라졌다.

 권씨는 "그때 주로 오던 손님들은 40대 이상이었는데, 이분들이 회사에서 나가니 다방 손님도 덩달아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방 문화도 변했다. 2000년대 초반 '노래방 도우미'가 등장하자 다방 종업원들이 대거 빠져나갔다. 권씨는 "아가씨들은 계속 그만두는데 새로 고용하기도 어려워 다방을 접을까도 생각했다"며 이후 종업원 없이 혼자서 가게를 지켜왔다. 현재 손님맞이부터 주방, 청소까지 셋 이상 하던 일을 권씨 혼자 맡고 있다.

 ◇'레지' 찾는 중년들은 옛말...3040 손님들이 대부분. 쌍화차 찾는 20대女 손님도 있어  

 손님은 줄었지만 단골은 꾸준하다. 주로 오는 손님은 인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 형사부터 신문사 간부까지 애용하는 약속 장소다. 이날 오전 11시도 안 된 시간에도 한 형사가 민원인을 만나기 위해 다방을 찾았다.

 중년층 손님이 많느냐는 질문에 권씨는 손사래 쳤다. 주로 찾는 손님들은 30대부터 40대까지. 가장 바쁜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오는 손님 대부분 근처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다. "젊은 남자 손님들이 많아요. 회사 상사 소개로 처음 온 후 다음에는 동료나 친구들과 오더라고. 여자친구와 데이트할 때나 커피전문점 찾지. 여긴 메뉴가 복잡하지 않아 고민할 필요도 없고 괜히 주문하면서 눈치 볼 필요 없잖아."

 최근에는 젊은 여성도 다방을 찾는다. 일주일에 한 번 다방에 와 쌍화차를 시켜먹는다는 20대 후반 여성 단골도 있다. "차(茶)문화가 변해도 다방에만 있는 매력이 있다"고 권씨는 설명한다. 매장에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달리 명다방은 고요하다. 손님들 마음도 차분해진다. 권씨가 켜놓은 TV 소리만 희미하게 들릴 뿐이다.

 가장 큰 매력은 '편안함'.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보다 소파를 선호하는 손님들이 줄지 않고 있다. 여기에 열댓개뿐인 메뉴도 손님의 수고를 던다. 고민하는 손님에겐 주인이 상황에 맞는 차를 내온다. 수십 가지 음료를 파는 커피전문점에서 겪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오후 12시30분께. 점심 장사를 준비하며 권씨가 주전자에 물과 재료를 넣고 쌍화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직장인 셋이 다방을 찾을 무렵. 명다방은 쌍화차 끓는 냄새로 가득찼다. 휴대용 잔에 팔지 않기 때문에 한 번 들어오면 30분 이상씩 앉았다 가는 사람들이 많다.  

 명다방이 앞으로 얼마나 문을 열 진 미지수다. 권씨는 "당장 문 닫을 생각은 없지만 언제까지 계속할진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그는 "해가 갈수록 몇 살까지 장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며 "요즘 시대에 다방을 인수하려는 사람도 없어 퇴직하면 명다방도 함께 끝나게 될 것"이라고 쓸쓸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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