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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곽경호 칼럼]검사의 직(職)은 '역지사지(易地思之)'

등록 2016.02.13 15:51:05수정 2016.12.28 16: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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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사회부장 = 설연휴 극장가 박스오피스 1위는 단연 '검사외전'이었다. 살인(상해치사)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던 검사 변재욱(황정민 분)이 5년만에 재심을 통해 진실을 밝혀낸다는 줄거리다. 재심의 최후 진술에서 변 검사는 "재판장님께서 저의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요. 이제는 거기(감옥)에서 나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검사 변재욱은 조사중 피의자를 폭행해 죽음에 이르게했다는 누명을 뒤집어 쓴다. '검사의 누명'이라는 설정이 공감가는 부분은 아니지만, "검사도 '역지사지'입장이라면 어떨까"라는 공감은 대다수 관객들이 가졌을 것 같다. 영화 검사외전 속 변재욱 검사는 '열혈검사'다. 정의감에 사로잡혀 사건을 위해서라면 피의자 인권따위는 대수롭지않다. 그러던 그가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을때 "왜들 나에게 이래"라며 고함친다. 이내 법정 경위들로 부터 제압된 변 검사는 법정 바닥에 얼굴이 쳐박혀 피할 토하듯 절규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동정하거나 믿어주지 않는다. 막강한 권력의 주체가 졸지에 살인 누명을 뒤집어썼으니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마는, 그 순간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평범한 진리가 떠올랐다. 검사 한사람이 수사지휘를 잘못하거나, 오판(誤判)하거나, 공명심에 사로잡히거나, 기소권을 남용하거나 등등의 사유로 억울한 피의자들이 곧잘 생겨나곤 한다. 영화 검사외전은 "검사도 억울한 피의자가 되면 어찌될까"라는 픽션을 진실로 혼돈하게 만드는 것 같아 예사롭지가 않다.

 최근 두개의 살인사건에 대해 법원이 재심을 결정했거나 재심결정을 앞두고 있다. 사건의 공통점은 당초 검찰이 범인으로 기소한 사람들은 진범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재심을 통해 이들 외 진범이 가려지면, 검사의 잘못된 기소로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쓴 희생자가 또 생기게되는 셈이다. 광주고법이 조만간 재심을 개시할 일명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현재까지는 최모씨(31)가 범인이다. 최씨는 2000년 8월10일 새벽 2시께 전북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 부근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 택시기사 유모(당시 42)씨를 예리한 흉기로 12차례나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최씨는 최초 목격자였다. 그는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다가 범인으로 뒤집혔다. 경찰의 강압수사로 허위자백을 한 것이다. 경찰 발표와는 달리 최씨가 사건 당시 입은 옷과 신발에서는 어떤 혈흔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건을 송치받은 검사가 진실 규명을 위해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억울한 살인범은 나오지 않았을 터. 이 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최씨는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10년 만기출소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이 사건에 대해 재심 결정을 내렸다.

 이른바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같은 동네 친구 세 명도 진범이 아닐 가능성이 짙다. 이들은 1999년 2월 6일 오전 4시께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 주인 유모(당시 76) 할머니를 질식사시킨 뒤 현금과 패물 등을 훔쳐 달아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각각 징역 6년에서 4년을 선고받고 만기출소했다. 이 사건은 같은 해 11월 용의자 3명이 부산지검에 검거돼 자신들이 진범 이라며 범행 일체를 자백하면서 반전을 맞게되지만 사건을 이첩받은 전주지검의 담당검사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사건을 종결해버리고 만다. 이 사건은 그러나 자신이 진범이라고 밝힌 3명중 한명이 최근 언론을 통해 참회의 눈물을 흘린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간을 떠들석하게 하고 있다. 전주지법 제2형사부 변성환 부장판사 심리로 이르면 3월 재심 개시 여부가 결정된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실존 인물로 유명한 정원섭 목사도 억울한 누명의 피해자다. 정목사는 1972년 춘천에서 발생한 경찰간부 딸 강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5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역시 경찰의 강압수사로 인한 허위자백, 경찰 기록만으로 기소한 검사의 합작품이었다. 정원섭 목사는 지난 2011년 10월 27일 열린 재심 상고심에서 39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서울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을 바뀌게 만든 검사의 기소도 검찰史에 남을만한 '오판'중 하나다.19년 전 처음 사건을 맡았던 당시 박모 검사는 미군 수사대도, 한국 경찰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던 패터슨 대신 에드워드 리를 기소했다. 사건 당시의 기록과 정황, 그리고 19년만의 재심을 통해 비로소 진범이 밝혀졌는데도 박검사는 "아직도 에드워드리가 진범이라 확신한다"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한다. 이 발언은 이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검사 스스로 엄청난 오판을 인정하기는 쉽지않겠지만, 차라리 입다물고 가만히 있는 편이 나을법 했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검사다운 검사가 되려면 ‘살펴볼 검(檢)’ 자를 새겨보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검사 전입식 당시 나온 이야기다. 김 총장은 한자 뜻풀이를 통해 ‘검사 역할론’을 강조했다. 김 총장은 “‘나무 목(木)’ 변에 ‘여러 첨(僉)’자가 결합된 ‘살펴볼 검’ 자는 옛 관청에서 여러 가지 재물을 보관한 나무 상자에 혹시 없어진 것은 없는지 살펴보는 데서 유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순히 수사기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유·무죄 판단만 하지 말고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검사다운 검사’가 돼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는 우리나라 검사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잘쓰면 '정의의 검(劍)'이요, 잘못쓰면 '치명적 칼(刀)'이다. 전임 김진태 총장은 이런 점에서 '역지사지'를 강조했다. 김수남 총장이 ‘살펴볼 검(檢)'자를 검사의 덕목으로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한민국 검사는 정의를 실현할 우리사회의 마지막 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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