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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4시간 40분간 허기와 묘한 쾌감…연극 '우드커터'

등록 2016.10.02 10:48:47수정 2016.12.28 17: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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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크리스티안 루파 연극 '우드커터'(사진=서울국제공연예술제 사무국)

【서울=뉴시스】크리스티안 루파 연극 '우드커터'(사진=서울국제공연예술제 사무국)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폴란드 출신 거장 크리스티안 루파(75)의 연극 ‘우드커터’는 두 가지 허기로 굶주리게 했다.

 입센의 ‘들오리’에서 허황된 꿈을 꾸는 ‘엑달’ 역을 맡은 국립극장 배우가 공연을 마치기를 기다리느라 밤 12시가 다 돼서 농어 요리를 먹는 사교 모임 속 인물들을 보니 실제 공복으로 인해 느껴지는 허기(虛飢)가 하나다.

 4시간40분(인터미션 25분 포함)을 객석에 앉아 이들의 저녁 식사 전후를 바라보는 건 상당한 물리적인 체력이 소요됐다.  

 유명무실을 뜻하는 또 다른 허기(虛器)는 정신적인 곯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했다. 작가, 화가, 배우, 성악가 등으로 구성된 이들 예술가들의 허영과 위선과 사치 그리고 허무가 깃든 대화로 인해 찾아온 정신적인 빈곤이었다. 

 ‘논리 철학 논고’로 유명한 비트겐슈타인 전집을 사고 ‘봄의 제전’ 등 수많은 걸작을 안무한 폴란드계 러시아 무용가 니진스키, 영국의 급진적 극작가 사라 케인 등을 논하지만 정작 이들의 사상은 하릴없이 겉돈다.  

 오랜만에 모인 이들에게는 대신 이날 죽은 ‘요안나’의 망령이 떠돈다. 국립극장에서 움직임 워크숍을 열었던 배우인 그녀의 죽음은 또 다른 예술적 논쟁 또는 자신들의 예술적 영감을 뽐내기 위한 방편이다.

 국립극장 배우는 6개월을 엑달만을 위해 살았다며 끊임없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화가는 스스로의 세계에 갇혀 자신은 위선과 먼 거리에 있는 양 관조하며, 젊은 작가들은 제대로 된 생각조차 하지 못하면서 이 상황에서 ‘쿨’한듯 낄낄댄다.   

 하지만 젊은 시절 예술에 대한 열망조차 지키지 못하고, 사교 모임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에만 힘쓰는 이들은 ‘살아 있는 예술적 시체들’에 불과하다.

 루파는 주문을 외듯 떠도는 몽환적인 대사, 몽롱한 담배 연기, 큐브 속에 갇힌 무대 공간, 이날 저녁 식사 앞서 벌어진 일들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방식 등을 통해 심리적인 연출을 선보인다.

  2부에서 몇 번이나 언급되는 ‘들오리’ 역시 복잡한 인간심리의 내부를 파고드는 작품이다. 같은 막에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울려퍼지는 라벨의 ‘볼레로’는 어떤가. 같은 멜로디가 수없이 반복되고 그것이 극적인 구성을 만들어내는 곡으로, 이들 예술가들의 예술에 대한 복잡함은 한데 엮여 예술가들의 본질을 극적인 몽타주로 만들어낸다.

 이런 장시간동안 몽환적인 연출을 보고 있노라면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현상이 찾아온다. 주로 마라톤 등에서 통상 30분 이상 달릴 때 얻어지는 도취감 또는 달리기의 쾌감을 가리키는데 객석에 앉아 몽롱한 무의식의 유영을 겪다보면 역시 쾌감이 찾아온다.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느끼던, 자신만의 예술적 자존감이 까발려지는 묘한 통쾌감이라고 할까. 한껏 도취된 듯 진이 다 빠져서 머리를 긁적거려도 ‘우드 커터’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달 30일과 이달 1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 '우드커터'는 올해 16회째를 맞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스파프)의 개막작이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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