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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돈 묶고 입 풀겠다'는 법원, '허위사실공표죄' 의원들 판결 주목

등록 2016.10.17 05:00:00수정 2016.12.28 17: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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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현직 국회의원 허위사실 공표혐의 현황.

현역의원 선거법 위반 33명 중 15명 허위사실 공표 혐의  법원행정처장 "당선 목적, 상대 낙선 목적 여부 등 구분해야"  법조계 "검찰이 지나치게 표현의 자유 침해…재갈 물리기"

【서울=뉴시스】표주연 기자 = "규제 일변도의 종전 선거운동에 관해 조금 더 선진적으로 ‘입은 풀고 돈은 묶는다’는 방향의 판결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지난 14일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조양호 삼척시장의 허위사실공표죄 무죄 확정 판결과 권선택 대전시장의 사전선거운동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단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고 처장의 발언은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볼 때 상당히 의미심장하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평가다.

 특히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과정에서 여야 현역 국회의원 15명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된 것을 감안할 때 고 처장 발언의 취지가 실제 재판에서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

 ◇ 당선자 33명 중 허위사실공표죄 15명…새누리 8명에 야권 7명

 17일 뉴시스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검찰이 최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33명 중 15명이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됐다.

 새누리당에선 강길부, 김한표, 김종태, 장석춘, 박찬우, 박성중, 이철규, 함진규 의원 등 8명이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받고 있다.

 야당에서는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추미애 대표를 비롯해 박영선, 강훈식, 윤호중, 이재정, 오영훈 의원과 무소속 서영교 의원이 같은 혐의로 기소됐다. 

 새누리당 박성중 의원은 당원 5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여론조사에서 1위를 했다"라고 말한 혐의, 장석춘 의원은 지난 3월5일 모 방송사와 전화 인터뷰에서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사실이 없다"고 말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박성중 의원은 당시 여론조사 2위였고,  장 의원은 2006년 5월 지방선거에서 한국노총 금속노련 위원장으로서 민주노동당과 정책연대를 한 적이 있다.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선거공보물 약 8만2900부에 '16대 국회에서 법원행정처장으로부터 동부지법 존치 약속을 받아냈다'고 명시했다가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기소됐다.

 같은 당 박영선 의원도 총선 유세 과정에서 "국회의원 재직 당시 구로 지역 모든 학교의 반 학생 수를 25명으로 줄였다"는 발언을 했다가 기소됐다.  '모든'이라는 단어가 허위사실이라는 이유에서다. 초·중 고교 반 학생수는 통상 25명 미만이지만, 일부 고등학교의 학생수는 25명이 넘기 때문이다.

 ◇ 선거법 위반 '입 풀고 돈 묶는' 방향으로 가는 법원  

 더민주 박범계 의원은 지난 14일 법사위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허위사실공표 혐의는 당선될 목적이냐 상대후보를 낙선하게 할 목적이냐에 따라 법정형이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당선될 목적으로 국회의원이든 후보자든 유권자에게 자랑을 하고 홍보한다"며 "그 가운데 다소 과장이 있을 수 있다. 비방 목적이나 금품 수수는 엄단해야 하지만 선거운동 자유는 보장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박 의원은 "김양호 삼척시장의 경우에도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 됐다가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세부적으로 진실과 차이가 있거나 일부 과장되더라도 주변 부분이 객관적 진실에 부합한 이상 허위사실 공표라 보기 어렵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또 "권선택 시장 무죄 취지 파기환송도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발전에 비춰 지난 50년 동안 규제해 온 선거문화를 탈피해 선진적 정치문화 정착을 위한 시금석이 되기 바란다는 평가가 있었다"면서 "비방 목적이라든지 금품 수수는 엄단해야 하지만 선거운동 자유는 보장해야 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고 처장은 "권 시장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은 선거운동에 대해서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는 예측 가능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고 처장은 "(권 시장 전합 판결은) 규제 일변도 선거운동에서 조금 더 선진적으로 '입은 풀고 돈은 묶는다'는 방향의 판결"이라며 "허위사실공표죄에 있어서도 결국 자기 자신이 당선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했는가, 낙선케 할 목적으로 했느냐에 있어서는 준별(峻別)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선거재판을 통해서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일선 법관들의 현명한 판단이 있으리라고 본다”고 밝혔다.

 ◇ 달라진 선거사범 처벌 추세…시대 흐름 못 따라가는 검찰

  허위사실공표죄 기소에 대한 반발은 야권 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 중에서도 나오고 있다.

 가령 3선 중진의 새누리당 강길부 의원은 4·13총선 직전 후보자 책자형 선거공보에 '울주군에 있는 울산광역시 지방도를 국도 지선으로 승격시켰다'는 내용의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이에 '기소에 대한 입장'이라는 공개적인 보도자료까지 배포해 불공정 편파 기소라고 강하게 항변했다.

 선거법 전문가인 황정근 변호사는 "허위사실공표죄나 명예훼손죄 등을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사실 그 나라의 언론 자유를 판단하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면서 "언론의 자유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이며, 허위사실공표죄나 명예훼손죄를 너무 폭넓게 인정하게 되면 정치적 적대자들의 입을 묶게 되는 결과가 빚어진다"고 지적했다.

 황 변호사는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된 사람들의 사건을 보면 약간의 말실수라든가 그런 쪽인 경우가 많다"면서 "그 정도는 사람들이 말할 때 과장되게 얘기하다가 발생한 약간의 오버인데, 한 자 한 자 다 따져서 허위라고 하면 정치의 자유, 선거운동의 자유 등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너무나도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밖에 법조계 상당수 인사가 "허위사실공표죄로 검찰이 기소한 현역 의원들을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사례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처럼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공표에 대한 광범위한 처벌이 자칫 '과잉사법'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법조계 안팎에 존재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허위사실공표죄나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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