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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스승의 날 폐지하라"…교사들 목소리 낸 이유는

등록 2018.05.15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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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현장에 스승 없어진 지 오래"…靑 청원 봇물

"존중받지 못하고 방어권조차 행사 못하는 존재"

대표 카네이션만 가능하다는 권익위 해석도 상처

"학생들과 유대감 없는 상황에서 표면적인 행사"

"학생 인권 만큼 교사 권익 보장 위한 노력해야"

【대구=뉴시스】우종록 기자 =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대구 북구 칠성동 대구꽃백화점을 찾은 시민이 카네이션을 살펴보고 있다. 2018.05.14.  wjr@newsis.com

【대구=뉴시스】우종록 기자 =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대구 북구 칠성동 대구꽃백화점을 찾은 시민이 카네이션을 살펴보고 있다. 2018.05.1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교사들 사이에서 '스승의 날'에 대한 폐지 요구가 나오고 있다. 사실상 교권이 추락한 지 오래인 상황에서 스승에게 감사를 표한다는 기념일이 의미가 퇴색해버렸다는 자조 섞인 표현이다.

 15일 청와대 게시판에는 스승의 날을 폐지해달라는 청원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전날 청원 게시판에는 "스승이 없는 스승의 날은 차라리 폐지 또는 휴일지정 하여 주십시오"라는 글이 올랐다.

 지난달 20일부터 진행 중인 "스승의 날을 폐지하여 주십시오"라는 청원에는 1만명 이상이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외에도 "스승의 날 폐지 청원" "스승의 날 폐지" "스승의 날을 폐지해주세요…" 등 비슷한 청원 글이 다수 게시됐다.

 청원 글 내용은 대부분 추락한 교권과 관련해 "더 이상 스승인 교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등 스승의 날 자체의 존재 의미가 없어졌으니 차라리 폐지해달라는 취지다.

 일례로 가장 많은 동의를 구한 스승의 날 폐지 청원 작성자는 "모든 책임을 학교에 떠넘기며 교사를 스승이라는 프레임에 가두어 참고 견디라고 하면서 교사는 있지만 스승이 없다는 말은 또 아무렇지 않게 합니다. 왜 이 조롱을 교사들이 받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본인을 '17년차 고등학교 교사'라고 밝힌 청원글 게시자는 "교육 현장에 스승이 없어진 지는 이미 오래입니다" "지금 교육 현장의 젊은 교사들은 억측 같은 오해와 지탄을 받으며, 학생과 학부모에게 존중 받지 못하고 스스로의 방어권조차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서 하루를 간신히 버텨나가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아울러 최근 국민권익위원회가 스승의 날 선물과 관련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해석 관련 문의에 "학생 대표 등의 공개적 카네이션 선물만 가능하다는 원칙이 자리 잡길 바란다"라고 답변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배가되는 모습이다.

 시민들은 권익위 해석을 두고 온라인에서 "스승을 도둑처럼 취급하느니 차라리 스승의 날을 폐지해라" "그런 카네이션을 어느 교사가 받고 싶겠나" "대표만 카네이션을 줄 수 있고 편지나 종이접기 꽃도 지양하라는 권익위 해석은 교사의 마음을 돈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는 저급한 인식" 등의 개탄 섞인 목소리를 냈다.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꽃상가에 형형색색 카네이션이 진열돼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된 후 ‘스승의 날’에 학생들은 자신의 담임선생님에게 선물을 드릴 수 없다. 학급 혹은 학년을 대표하는 학생 대표가 공개적으로 ‘카네이션’을 교사의 가슴에 달아주는 것은 허용되지만 학생이나 학부모가 개별적으로 카네이션을 주는 것도 법 위반에 해당한다. 2018.05.14.  bluesoda@newsis.com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꽃상가에 형형색색 카네이션이 진열돼있다. 2018.05.14.  [email protected]

전현직 교사들 역시 스승의 날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봤다. 보여주기 식 행사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교사의 역할을 보장할 수 있는 조치를 하는 것이 오히려 스승의 날이 담고 있는 의미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이 이들의 목소리다.

 서울 노원구에서 근무 중인 현직 교사 이모(30·여)씨는 "스승의 날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에 공감한다. 아이들도 스승의 날이라고 정해놓으니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서 물어보는데 대답하기가 어렵기만 하다. 행사도 유명무실하고 막상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일도 없다"라고 토로했다.

 최근까지 교편을 잡았던 다른 이모(58·여)씨도 "요즘 같은 분위기면 스승의 날을 굳이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다"라며 "교사와 학생 사이에 과거 같은 유대감이 없는 상황에서 행사도 표면적으로만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라고 전했다.

 교사들이 직접 스승의 날에 대한 폐지 요구에 나선 배경에는 추락한 교권이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지난 9일 '2017년 교권회복 및 교직상담 활동실적 보고서'에서 지난해 접수된 교권 침해 사례가 508건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교총은 "교권 침해 사건은 2010년대 초반까지 200건대로 접수되다가 2012년 처음으로 300건대를 넘겼다. 이후 2014년 439건으로 400건대, 2016년에는 572건으로 처음으로 500건대를 넘었다"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스승의 날 폐지 논란까지 등장한 것에 문제 의식을 갖는 견해가 있다. 이들은 문제의 원인을 교권 추락으로 진단하면서 '학생 인권'에 대한 접근만큼 교사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김희규 신라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권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학부모들의 공동체적인 참여는 중요하지만, 교원의 전문성 자체를 불신하고 인정하지 않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라며 "교권을 인정하는 풍토를 조성하고 제도적으로 교권 보호에 대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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