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사회일반

"또 윤치호, 국사편찬위원회 책임 다하라…애국가 작사자"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등록 2014-01-21 17:37:47  |  수정 2016-12-28 12:10:36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 혼잡성과 이념성으로 인하여 우리의 ‘근대’가 문제적 시기임을 오늘의 격렬한 교과서 논쟁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논쟁에 잠복된 문제의 하나가 바로 애국가 작사자 규명이다. 그래서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이 문제가 얼마나 난해한 것인지는 1955년 4월13일 국사편찬위원회가 사계 권위자 13인들로 ‘애국가작사자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첫 회의를 하고 7월30일 해체하면서 윤치호를 대상으로 한 표결 결과가 11대 2로 만장일치가 되지 않았다며 ‘작사자 미상(未詳)’으로 봉합한 데서 확인할 수가 있다. 이때 애국가 문제에 대해 첫 단추를 잘못 채운 후유증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니, 이를 공론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국사편찬위원회는 기능과 위상에 맞지 않게 마무리를 하고 말았는가. 우선 ‘미상’이란 키워드에 주목해야 한다. 당시 언론이 확정적인 표현으로 심의 결과를 보도한 이는 윤치호뿐이었다. 당시 40여건의 신문 기사 표제 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①애국가 작사자 윤씨 친필로 확인 ②윤치호 작이 거의 확실, 뚜렷한 물적 증거와 증언 ③윤치호씨 작으로 확정, 국사편찬위의 최종 결정 주목 ④사적(史的) 사실은 그대로, 윤치호씨 작사임을 충분히 입증 등이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기사는 문교부 장관의 말을 인용한 ‘애국가 작사자 윤치호로 본다’이다. 당시 보도에서는 윤치호 외에 조사 대상인 안창호·김인식·이상준·민영환·최병헌 5인에 대해 이 같은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결국 ‘작사자는 윤치호’임이 확정적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이 작사자가 윤치호임이 확정적이자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서도 당시 신문기사 표제에서 확인을 할 수 있다.

 ①드러나는 애국가 문제, 개작은 불가피? 작사자가 윤치호인 경우 ②개작설과 인신(人身)의 모함이 작사자 판명에 하나의 큰 장해 ③작사자 판정의 시비 사실을 감정으로 좌우? 등이다. 이에서 확인되듯이 윤치호가 친일을 했으니 작사자로 확정되면 개작이나 새롭게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주장은 60여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지난해 흥사단이 창립 100주년을 앞둔 기념행사에서 ‘안창호가 아닌 윤치호가 작사자라면 애국가를 부르지 않겠다’고 한 것과도 궤를 같이하는 진영 논리이다.

 이런 주장이 무익한 것은 국가(國家)가 작사자를 심의하여 그에게 작사를 위촉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즉, 윤치호가 1907년 애국적 발상에서 스스로 지은 것을 3·1운동 전 기간에 민중들이 한마음으로 불렀고, 이를 의미화하여 상하이 임시정부 의정원이 채택함으로써 광복군에게도 불렸고, 이의 정통성을 승계하여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식에서 국가로 불러 오늘에 이르렀으니, 윤치호의 의사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안익태가 1935년 미국에서 애국심으로 스스로 작곡한 것과 같은 것으로, 애국가를 택하고 부른 것은 두 분의 의사와는 전혀 별개로 우리가 택한 것이니, 작사·작곡가의 성향은 애국가와는 직접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associate_pic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저작권 관계가 까다로운 시대임에도 간과하고 오는 것은 우리가 애국가를 작사·작곡가와 별개로 인식하고 당연시한 결과이다. 작사자 규명 문제는 역사적 진실 문제이고, 이 진실 문제를 작사자의 성향이나 이에 의한 개작 문제와 연결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이는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육당 최남선의 ‘독립선언서’를 오늘의 3·1절 기념식에서 우리가 낭독하고 있는 것과 같은 논리인 것이다.

 셋째 문제는 표결 처리 방식과 그 처리 결과이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작사자 조사위원회 13인을 대상으로 작사자를 표결에 부쳤다. 결과는 윤치호 대 다른 작사자가 11대 2로 나타났다. 이 결과대로라면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절대적으로 인정을 받은 윤치호를 작사자로 결론을 냈어야 한다. 그런데도 만장일치가 안 되었다며 미상이라고 마무리를 했다. 역사적 진실 규명을 사료와 논리가 아니라 상황논리로 처리하였다는 문제가 있다. 더구나 표결 결과 윤치호가 절대적이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모른다’고 한 것은 석연치 않은 것이다.

 이 같은 비상식적인 표결 방식과 처리 문제는 어쩌면 어떤 의도된 결론으로 유도하려는 작위로 짐작된다. 어떠하든, ‘미상’의 대상이 중요한 사안인만큼 시한을 넘겨서라도 밝혀내야 하는 국사편찬위원회라는 전문기관의 무책임과 ‘사계 권위자’라는 명예를 부여 받은 13인의 무소신은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넷째는 국사편찬위원회가 급하게 봉합하고 조사위원회를 해체시킨 이유이다. 다행히도 이에 대해서도 당시 신문 보도가 확인해 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하는데, 국사편찬위원회가 미상으로 발표하려하자 조선일보는 ‘애국가 작사자 조사 미상으로 종결?’이라고 의문을 제기했고, 또 다른 신문은 ‘정확성 희생보다 미상이 나을듯, 애국가 작사자 문제’라고 저간의 문제와 배경을 암시했다. 과연 결론에 이른 사안을 갑작스럽게 미상으로 시급하게 접게 한 이유와 규명보다는 차라리 ‘모르쇠’해야 하는 것이 낫다는 논리는 무엇 이었을까.

 작사자를 윤치호로 확정하여 발표할 경우, 그의 친일 성향으로 애국가를 새로 만들자는 주장이 잇따를 것이고, 이에 의해 찬반의 논란이 있음은 물론이고, 만일 새로 제정해야 한다면 그 혼란을 전쟁 처리 중의 정부로서는 감당이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니 이를 원천적으로 막지 않으면 안 된다는 논리였다. 이 때문에 미상으로 봉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문제는 당시 문교부 장관의 발언을 뒤엎고, 국사편찬위원회를 거수기구로 만든 절대권력의 존재이다. 짐작되듯이 이승만 대통령이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생전에 김활란 여사가 ‘이 박사가 고심 끝에 조치했다’는 증언이 있기도 하지만, 다음의 몇 가지 이유에서 지시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associate_pic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애국가의 역사성에 의한 위상을 손상시키는 것을 막고자 해서였을 것이다. 즉,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에서 작사자 문제와 개정이 논의될 때마다 3·1운동에서의 애국가나 태극기의 역할을 생각하면 작사자 문제나 개정은 의미가 없다고 한 것과 같은 이유이다. 3·1운동을 거족적으로 유지시키는데 역할을 한 애국가의 민족사적 위상을 작사자의 친일 문제로 훼손시키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판단에서 논란을 막으려했다는 말이다. 동시에 미주지역 활동에서 자신이 불렀던 애국가를 생각했을 것이기도 하다.

 다음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한국전쟁 폐허에서 친일문제의 재론과 새로운 국가 제정이라는 과제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을 피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이미 자서전 ‘청년 이승만’에서 윤치호를 작사자라고 밝힌 바 있어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미상으로 처리하게 한 것은 새 국가 제정보다는 기독교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한 현 애국가를 유지하고 싶은 개인 정서가 작용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이상과 같은 시대적 정황과 국가 기관의 무원칙으로 애국가 작사자 규명은 ‘문제’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현재 안전행정부 의전과 소관인 이 문제를 결자해지 차원이나 업무 전문성에 따라 국사편찬위원회가 다시 나서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작사자가 누구로 확정되든 우리가 그들의 성향을 검토하고 위촉한 것은 아니므로 작사자 개인 성향과는 무관함을 전제로 역사성과 정통성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그리고 북한이 애국가를 수정헌법에서 규정한 사정 등을 감안하여 신중하게 수정이나 새 제정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애국가의 작사자 문제로 국가상징의 위상을 훼손시키는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이번에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적극 나서 그 책임을 다해 주어야 할 것이다.

 art-arirang@hanmail.net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

사회 핫 뉴스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