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빌딩 헬기 사격](상)37년 만에 드러난 5·18 진실
오래된 건물이라는 이유로 철거와 리모델링 사이를 오갔던 광주 전일빌딩은 1980년 신군부와 계엄군의 잔인함을 입증한, 5·18의 진실을 알리는 건물이 됐다.
광주 동구 금남로 1가 1번지 전일빌딩 안에서 총탄 흔적이 발견된 것은 지난달 13일.
전일빌딩 안팎에서 총탄 흔적을 분석하던 김동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안전과 총기연구실장은 10층 '영상 데이터베이스(DB) 사업부'라고 적힌 사무실에서 발견한 흔적을 "탄흔"이라고 공식화했다.
한 달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공식 보고서를 통해 헬기에서 쏜 탄환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국방부가 그 동안 부인해왔던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국가 기관에 의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된 순간이다.
37년이 걸렸다.
1980년 5월 이후에도 헬기 사격 목격담과 증언은 쏟아졌다.
1995년 전두환 등의 내란목적살인 혐의를 수사하던 검찰도 계엄군이 헬기에서 기관총을 쐈다는 증언을 조사했다.
5·18 당시 3해역사 군의관(대위)으로 복무 중이었던 김모씨는 검찰에서 "5월21일 선교사로 광주에 있었던 미국인 피터슨 목사의 집을 찾았다. '어떻게 헬기에서 시민들을 향해 사격을 할 수가 있느냐'는 목사의 말에 상공을 보니 헬기에서 사격을 하고 있었는데 '타다닥'하는 사격 소리가 3번 정도 들렸던 것 같고 그와 동시에 헬기에서 '파다닥'하는 불빛이 보였다"고 진술했다.
이어 "헬기 동체에 부착돼 있는 기관총이나 발칸으로 사격한 것보다는 헬기 탑승자가 시민들에게 위협사격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틀림없이 제가 목격한 헬기에서 사격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분명히 헬기에서 사격이 있는 것을 재차 강조한 그는 "당시 군 장교로 있었다. 책임이 있다면 공수부대를 파견하도록 결정한 최종 결정권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조사로 역사적인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한다"며 진술 조서를 마쳤다.
고(故) 조비오 신부와 1980년 당시 광주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던 아놀드 피터슨 목사도 국회 청문회와 자신이 쓴 책에서 이를 증언했다.
하지만 검찰은 증언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결론내렸다.
이를 뒤집을 증거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전일빌딩 10층에서 30여년만에 나온 것이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전일빌딩 10층 사무실.
1975년부터 전남일보 총무국에서 근무했던 나명엽씨는 "5·18 전후 이곳은 전일빌딩에 입주해 있던 언론사의 자료, 쓰지 않던 기자재를 쌓아두었던 곳"이라며 "사람들의 출입이 거의 없었고 이후에는 임대가 되지 않아 공실로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전일빌딩에서 근무했던 복수의 관계자들도 "사용하지 않던 곳"이라며 "(탄흔이 있을 거라고)생각조차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헬기 기총소사 논쟁이 벌어졌던 1989년 국회 5·18 진상 규명 청문회, 1995년 전두환 등의 검찰 수사 때도 헬기 사격 증언은 광주공원과 사직공원 등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에 전일빌딩은 관심 밖이었다.
오히려 국과수는 37년 만에 'M60 기관총의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계엄군이 헬기에서 기관총을 난사했을 가능성을 열어뒀다.
5·18 단체 관계자는 "광주시와 협력해 총탄자국이 발견된 현장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전일빌딩을 사적지로 지정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아직도 미흡한 진실규명과 관련해 올해부터 자체적으로 수집한 기록을 토대로 연구 결과를 제시, 새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해 실체적인 진실 규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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