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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의 크로스로드]정당의 위장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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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2-14 16: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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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공동체 지키기 위해
과감한 혁신 외면치 말아야
정책 변화 없는 간판 교체
정치 불신과 허무주의 키워

【서울=뉴시스】정문재 부국장 겸 미래전략부장 = 인간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늙고 병들면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조직은 다르다. 영고성쇠(榮枯盛衰)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사멸은 피할 수 있다. 전제 조건은 '변화'다. 때로는 기존의 정체성을 흔들어놓을 만큼 획기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생존을 모색할 수 있다.

 변화는 조직의 장수 비결이다. 영국의 보수당이 대표적 모델이다. 정당이나 기업의 훌륭한 벤치마킹 대상이다. 보수당의 전신 '토리(Tory)'로 거슬러 올라가면 무려 34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수명이 5년에 불과한 한국의 정당은 한없이 왜소해진다.

 보수당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변화를 통해 생명을 이어왔다. 경우에 따라서는 급진적 변화도 마다하지 않았다. 보수주의 정치이론가 에드먼드 버크의 가르침을 충실히 실천한 셈이다. 버크는 "적절한 변화 방법을 찾지 못한 국가는 스스로의 보존 수단을 가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보수당도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민심을 무시한 결과였다. 영국 국민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한 적도 많다. 무려 30년이나 권력의 주변부만 맴돌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대표적인 게 19세기 중반 곡물법(Corn Law) 파동 때다. 보수당은 곡물법 존폐 문제를 놓고 두 동강났다. 윌리엄 글래드스턴 등 곡물법 반대파 의원들은 자유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곡물법은 토지소유계급의 이익 보호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도시민이나 상공업자들이 불공정한 부담을 떠안았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 상공업자와 노동자는 나날이 늘어났다. 곡물법은 사회 경제적 변화를 고려치 않은 악법이었다.

 영국 의회는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 군대를 쓰러뜨리자마자 곡물법을 도입했다. 영국은 프랑스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식량난을 겪었다.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로 외국 곡물을 수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자 외국 곡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곡물 가격도 떨어졌고, 토지 임대료 수입도 감소했다. 지주들은 국내 곡물 가격이 일정 수준을 밑돌면 곡물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의 입법을 요구했다. 의회는 보수당을 중심으로 곡물법을 통과시켰다.

 노동자들은 곡물법에 큰 불만을 표시했다. 더욱이 1845년 아일랜드 감자 흉작으로 곳곳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보수당은 곡물법 때문에 '수구 골통' 소리를 들어야 했다.

 영국인들은 1846년 총선에서 자유당을 선택했다. 자유당은 1874년까지 약 30년간 권력을 잡았다. 보수당은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했다.

 보수당은 1872년부터 벤자민 디즈레일리의 지도 아래 반전을 모색했다. 대대적인 개혁정책을 통해 지지 기반을 노동자로 확대했다. 노동자 권리 강화, 보건 위생 시설 확충 등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렸다.

 보수당은 개혁 이니셔티브에 힘입어 자유당을 압도했다. 자유당은 "보수당의 개혁정책은 개인의 삶에 대한 지나친 개입을 통해 자유방임주의를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자유당은 노동자의 이익을 외면하는 바람에 민심 이반을 자초했다.

 보수당은 농민 중심의 '대중정당'에서 공장 노동자까지 끌어안는 '포괄정당'으로 탈바꿈했다.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보수주의자 노동자 클럽(Conservative Working-Men’s Club)'이 결성될 정도였다. 보수당은 1874년 총선에서 압승한 후 30년 장기 집권에 성공했다.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간판을 바꿔 단다. 감동하는 시민들은 별로 없다. 진정한 변화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내용은 달라지지 않은 채 이름만 바뀌었다. '위장폐업'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디즈레일리는 정당을 '조직화된 의견(organized opinion)'이라고 정의했다. 유권자, 나아가 시민들의 생각과  견해를 묶어냄으로써 이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뜻이다. 보수당은 자본주의 발전에도 개인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문제점을 꿰뚫어본 후 개선책을 제시했다. 그게 바로 보수당의 회생 비결이었다.

 진정한 보수는 시대 상황에 맞게 정책을 수정한다. 공동체 수호를 위해 콘텐츠의 끊임없는 개선을 모색한다. 그렇지 못하면 '수구(守舊)'에 불과하다. 더욱이 종북(從北) 같은 구호 아래 '부정적 정체성(negative identity)'에만 매달리면 반목과 갈등만 심화된다.

 보수의 환골탈태를 간절히 기대한다. 그래야 진보와 보수가 견제와 균형을 통해 안정적인 사회 발전을 이끌 수 있다. 콘텐츠 변화 없는 간판 교체는 정치 불신과 허무주의만 부추길 뿐이다.

참고문헌
1) 강원택 지음. 2008.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동아시아연구원
2) 박상훈 지음. 2015. 정당의 발견. 후마니타스
3) 유벌 레인 지음. 조미현 옮김. 2016. 위대한 논쟁. 에코리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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