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사회일반

[데스크 칼럼]세월호참사와 교통사고의 차이를 거론해야 하는 참담함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등록 2017-04-16 21:13:17  |  수정 2017-06-08 14:39:58
associate_pic
김호경 사회부장
【서울=뉴시스】김호경 사회부장 = 어쩌다 보니 세월호 희생자 유족 한 분과 가까워졌다. 아름 씨는 2014년 초에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취업준비생으로 지내다 단원고 2학년이던 남동생을 창졸간에 잃었다. 그리고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됐다. 대한민국 정부의 민낯과 수많은 악귀들의 창궐을 목도하고, 아빠와 함께 무려 40일이나 '십자가 도보순례'라는 걸 하게 되리라고 이전에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당차고 쾌활한 친구지만 그가 사건 발생부터 지금까지 폭풍의 시간을 관통하며 어떤 정도의 고통을 겪었을지, 그 같은 엄청난 비극을 100분의 1이라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필자로선 가늠하기도 어렵다.

우연히 알게 된 그 친구 때문에 세월호 삼보일배에 동참한 적이 있다. 기자 생활 그만두고 쉬던 시기인 2015년 6월에 딱 하루 나갔는데, 서울 한낮 기온이 34.9도로 기상 관측 107년 만에 6월 상순 최고 기온을 기록한 날이었다. 위에서는 뙤약볕, 밑에서는 아스팔트 복사열이 대단했다. 겨우 한나절을 했는데도 옷이 땀으로 흥건하고 얼굴은 벌겋게 익고 무릎부터 온몸이 쑤시는데, 아빠와 딸은 무려 108일째라고 했다. 길 위에서 보낸 긴 시간으로 두 사람 다 얼굴이 새까맸다. 겨울에 시작해서 여름까지 이어진 장정(長征). 혹심한 육체적 고행을 자청해서 감내해온 끈기와 체력에 내심 감탄했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끝내 밀고 와서 목적지인 광화문 광장을 며칠 뒤면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그날 대구에서 일부러 하루 휴가를 내고 혼자 올라온 직장인 등등 함께 한 여러 시민들의 다정하고 헌신적인 모습들도 인상적이었다. 어떤 빌딩에서 우리 행렬이 지나가는 걸 우연히 내려다보고 뭐라도 해주고 싶다며 순례단 40여 명 분의 아이스크림을 사서 건네준 직장인도 있었다. 물론 모든 시민이 다 이분들 같지는 않았다. 괜히 다가와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대거나 시비를 걸거나 째려보고 가는 운전자 및 보행자들이 여지없이 나타났다. 씁쓸하기도 하고 욱하면서 치밀어 오를 때도 있었는데, 유족들 심정이야 오죽할까 싶었다. 참사 이래 정치권과 관변단체, 일부 언론 등이 쏟아낸 모진 언행들로 인해 무수한 상처를 받았을 것임은 불문가지였다. 아름 씨 부녀의 불굴의 의지를 가까이서 지켜본 지도 벌써 2년 전 일이다.

세월호 사건이 어언 3주년을 맞았다. 간밤에 한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을 보면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지난 1095일간 얼마나 심신이 무너지는 시간을 보냈을지 영상을 통해 새삼 가슴 저리도록 절감했다. 머릿속에 아름 씨 부녀도 오버랩됐다. 유족들의 통한은 피붙이의 죽음에 더해 정권과 그 연계 세력들이 가한 갖은 모욕과 혐오의 언행들로 인해 더욱 극심해진 것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부역자들은 여전히 일말의 참회도, 반성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유족들을 핍박한 이들의 공통점 중 대표적인 것이 '세월호 사건=교통사고'라는 명제를 신봉하며 정부의 책임 면탈을 노골적으로 주창한다는 점이다. 동시에 희생자 가족들을 수학여행 가다 재수 없게 교통사고 당한 뒤 국가에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몰염치한 집단으로 몰아 고립시키면서 일반 국민들이 '진저리'를 치도록 집요하게 유도해왔다는 점이다. 지금도 포털 검색창에 '세월호 교통사고'를 입력하면 그런 종류의 거친 글들을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다.

이른바 '교통사고 담론'은 세월호 탑승자들이 몰살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권을 중심으로 공개적으로 제기된 발언들에서 그 공식적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사건 발생 100일째였던 2014년 7월24일, 당시 새누리당에서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한 여야 협상을 지휘하던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저희의 기본 입장은 이것이 기본적으로 사고다, 교통사고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그런 사고는 운전한 사람, 버스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며칠 뒤 친박 핵심인 같은 당 홍문종 의원도 "일종의 해상교통사고라고 볼 수 있는 것"이라며 "그런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거기서부터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당 실세 의원들이 이렇게 '물꼬'를 트자 각계에서 이에 동조하는 당당한 의견들이 꼬리를 물고 등장했다. 서울대 한 교수는 "교통사고에 불과한 일을 가지고 서울대 교수 명의의 성명서를 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개나 소나 내는 성명서 자제해 주시기 바란다"라고 동료 교수들을 '개나 소'로 치부했다. 유사 사례는 부지기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바로 오늘, 세월호 3주기를 맞아 안산 분향소에서 열리는 기억식에 5당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불참하는 이유와 관련해 "세월호 갖고 3년 해 먹었으면 됐지,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며 "저는 세월호 사건을 일관되게 '해난사고'라고 했다. 페리호 사건도 있지 않았냐"고 으레 교통사고론을 전개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고 구조다. 인지판단 능력이 극히 모자란 심신미약자이든, 무슨 악령에라도 씌워서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죄의식 없이 조롱하고 모독하는 것이든, 차마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세월호 사건이 대참사로 발전하고 국민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 가장 핵심은 어떻게 배 안에 있는 승객을 단 한 명도 못 구할 수 있느냐, 왜 골든타임을 그토록 여러 측면에서 어이없게 허비하고 뒤늦게 출동한 해경은 선내 진입도, 탈출 방송도 하지 않아 300명이 넘는 인명이 대낮 근해에서 집단 수장되고 말았느냐이다. 즉, 배가 기운 이후에 가족들은 물론 온 국민의 주시 속에 벌어진 일련의 과정이 한 나라의 시스템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총체적 난맥상을 보이면서 수많은 사망자와 함께 국민적 트라우마를 발생시켰다는 점이 세월호 비극의 핵심을 구성한다.

민간 선박회사의 전적인 잘못(관피아·해피아 문제 등 정부의 적폐가 다 결부된 결과이지만 일단 그렇다고 치자)으로 배가 항해 중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그 뒤에 정부의 사고 대응이 제대로 전개돼서 처음 보도처럼 승객이 전원 또는 대부분 구조됐더라면 이 사건이 초대형 참극으로 한 국가를 뒤흔들고 시민들을 대규모 공황상태에 휩싸이게 할 이유가 애당초 없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교통사고와 뭐가 다르냐'고 주장하는 부류는 대체 논리회로가 어떻게 작동을 하길래 그런 기본적인 사리분별을 못 하는 걸까.

당연히 구조되리라 믿으며 침몰 직전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선내에서 구조대원들을 기다리던 아이들과 일반 승객들이 끝내 모조리 목숨을 잃게 된 건 명백히 정부 조직의 태만과 무능에서 기인한 미증유의 참혹한 결말이다. 생존 학생들은 "우리는 (해경에) 구조된 것이 아니라 탈출한 것이다"라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했다. 그래서 "정부가 제대로 대처했으면 희생자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총리와 장관 등이 통절한 책임 인정과 함께 줄줄이 사의를 표명하고,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조차 "구조 자체가 효과적이지 못했던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못 박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은 (속내는 어땠을지라도) 대국민담화를 통해 "살릴 수 있었던 학생들을 살리지 못했고 초동대응 미숙으로 많은 혼란이 있었다. 사고 직후에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인명 구조활동을 펼쳤다면 희생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전격적으로 해경 해체를 선언하고 안전행정부에 대해서도 준(準) 해체에 해당하는 기능 이관 및 축소를 발표했다. "살릴 수 있었던 학생들을 살리지 못했다" "초동대응 미숙으로 많은 혼란이 있었다"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인명 구조활동을 펼쳤다면 희생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해경을 해체하고 안행부 기능을 이관한다" 행정부의 수반이 이처럼 단호하게 내놓았던 사태 규정들이 개인적 귀책사유로 끝날 뿐인 일반 교통사고에 대한 반응일 수가 있는가.

맹목적 악의만 남은 이들에게 다시금 소거된 기억을 복원시킨다면, 그들이 숭배하는 박 대통령은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눈물까지 흘렸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교통사고에 지나지 않은 우발적인 일개 해상사고를 놓고 박근혜 정부가 자진해서 사안을 터무니없이 침소봉대했을 리는 물론 없다. 사태의 전후 내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상적인 사인(私人) 간의 교통사고와, 정부의 실패에 다름 아닌 세월호 참사와의 본질적인 차이가 이해가 안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적어도 사건 초기 박근혜 정부는 제 나름의 책임감과 침통함을 표시했다. 그때만 해도 '교통사고' 운운하는 목소리가 나올 여지는 없어 보였다. 그러던 정권과 그 주변 세력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철면피한 적반하장으로 나왔던 추이와 배경은 훗날 등장한 '김영한 비망록'에 적힌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 내용으로 능히 유추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원인으로 선장, 선원, 해경, 유병언 언급'
'청와대 보고, 그 과정의 혼선×'.
'자살방조죄. 단식은 생명 위해 행위. 단식을 만류해야지 부추길 일×. 국민적 비난이 가해지도록 언론 지도.'
'세월호특별법? 국난 초래-법무부·당과 협조 강화. 좌익들 국가기관 진입 욕구 강(强)'
'세월호 유가족(학생 유가족) 외 기타 유가족 요구는 온건 합리적. 이들 입장 반영되도록 하여 중화'
'유가족 분리 용어 사용(단원고 유가족 대 일반인 유가족)'
'시네마 달 내사-다이빙벨 관련. 10월22일 다이빙벨 상영. 대관료 등 자금원 추적, 실체 폭로'
'세월호 유가족 폭행사건 철저 지휘'
'세월호 인양-시신인양×, 정부책임, 부담'

당시 정권 최고 실세였던 김기춘 비서실장이 강조한 '국민적 비난이 가해지도록 언론 지도' 하라던 사안들은 실제로 얼마나 이루어졌을까. 이는 교통사고론을 포함해 희생자 유족들을 폄훼하고 지겨워하는 일부 여론이 조성된 것과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몇몇 유수 언론들이 오랜 기간 보도와 사설을 통해 세월호 사건과 그 유족 및 관련 단체들에 대해 얼마나 '진저리'를 쳐왔는지, 해당 보도를 접하는 국민들도 진저리를 치도록 얼마나 극진히 유도해왔는지 간단한 검색을 통해 읽어보면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들이 있을 것이다.

세월호 탑승자들이 왜 몰살에까지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규명해야 할 부분들이 아직 너무나도 많다. 사고 대처와 관련한 대통령의 정치적·도덕적 책임을 회피하고 정부의 무능을 덮기 위해 '교통사고' 프레임을 동원하는 이들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아무리 여와 야, 보수와 진보, 그 밖의 무슨 이름으로 나뉘어서 대립한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윤리의식은 공유할 수 있어야 어떻게든 공동체를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듯한 소시오패스적 냉혈한들은 극단적인 불행에 처해 절박감에 몸부림치는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철저히 타자화·객체화하며 "좀 성숙할 수 없느냐"고 훈계한다. 부패와 부실, 은폐, 조작, 무책임에 대해 좌우를 막론하고 무수하게 쏟아진 언론의 사실 보도조차 간단히 무시하며 "정부가 어떻게 했어도 다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가히 '초월적 이성'을 자랑한다.

우리 사회의 공감불능자들은 자신과 기득권 집단의 이익에 배치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그게 아무리 다수의 처절한 고통의 발현이라 하더라도 개탄과 적개심으로 반응하곤 한다. 유족이나 국민들의 슬픔에 찬 절규와, 무능한 정부에 대한 이성적인 분노 및 항의를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미개하다"고 조롱하는 것이다. 짐짓 합리적인 채 대형 참사의 희생자들을 싸늘한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 바로 '세월호=교통사고' 프레임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 및 구속과 세월호 3주기가 비슷한 시기에 교차됐다. 대한민국 현대사 최악에 속할 이들 파국적 사건을 공동체의 더 밝은 미래를 향한 밑거름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면 우리에겐 허무와 좌절 밖에 안 남는다. 그런 일이 두 번 다시 없도록 시민들은 냉소와 슬픔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주권자의 권리에 눈을 떠 더욱 힘을 모아야 한다. 도덕적 위기의 시대일수록 사회적 연대가 세상에 대한 환멸 대신 희망의 기운을 북돋워준다.

hkkim5209@newsis.com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핫 뉴스

피플

"박태환 세계 첫 1위 했을땐
 날아갈 것 같았죠"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