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스케치]'모두를 위한 해방구' 을지로 노가리호프 타운 축제 첫날

등록 2017.05.18 20:52:43수정 2017.05.18 20:54:26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18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2017 제3회 을지로 노가리 호프타운 일일자선행사'를 찾은 시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7.05.18.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18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2017 제3회 을지로 노가리 호프타운 일일자선행사'를 찾은 시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7.05.1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손대선 박대로 임재희 기자 = 을지로 노가리호프 골목은 '아는 사람들만 찾는' 명소였다. 80년대부터 인근에 밀집한 인쇄소나 조명업체 직장인들이 고단한 하루를 마친 뒤 삼삼오오 모여 이곳에서 술을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이 즐겨 찾는 단골 안주는 명태 새끼를 말린 노가리였다. 시대가 변했지만 물가와는 무관한 듯 지금도 노가리 한 접시에 단돈 1000원에 불과하다. 직장인들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노가리를 씹으면서 직장상사와 삶의 고단함을 함께 씹었다. 그렇게 을지로 노가리호프 골목은 가난한 직장인들의 해방구로 자리 잡았다.

 이 골목의 현주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암담했다. 가장 큰 손님들이 밥줄을 대던 인쇄업의 쇠락과 함께 좀 더 매끈한 술집을 찾는 애주가들이 늘어나면서 손님들의 발걸음이 크게 줄어들었다. 

 서울시는 지난 2015년 을지로 노가리호프 골목을 서울미래유산에 선정했다. 여기에 지난해 중구는 을지로 골목투어 프로그램 '을지유람'의 코스 중 하나로 선정해 끊어진 발걸음을 이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만 찾는' 꼬리표를 떼지는 못했다.

 을지로 노가리호프 골목의 미래를 고심하던 중구는 최근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옥외영업의 길을 터줬다. 골목 내 음식점의 옥외영업을 허가하고 식품접객업의 옥외영업 시설기준을 완화한 것이다.

 18일 개막해 19일까지 이틀 동안 계속되는 을지로 노가리 호프 타운 축제는 옥외영업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공식 이벤트다.

 그동안 호프집 상인들은 구청 단속을 피해 몰래 옥외영업을 해왔지만 구청의 허락으로 비로소 마음 편히 합법적인 장사를 할 수 있게 됐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18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2017 제3회 을지로 노가리 호프타운 일일자선행사'에서 최창식(오른쪽 세번째) 중구 청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건배를 하고 있다. 2017.05.18.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18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2017 제3회 을지로 노가리 호프타운 일일자선행사'에서 최창식(오른쪽 세번째) 중구 청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건배를 하고 있다. 2017.05.18.  [email protected]

 허용구간은 을지로11길, 을지로13길, 충무로9길, 충무로11길 일대 465m로 일반음식점과 휴게음식점, 제과점이 대상이다. 이번 조치로 옥외영업이 가능한 업소는 17개소로 모두 호프집이다.

 축제 첫날인 18일 밤 찾은 을지로 노가리호프 골목에서는 옥외영업 허가의 효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각 업소마다 10여명 정도의 손님이 찾았지만 이날만큼은 업소마다 100명이 넘는 술손님들이 넘쳤다. 옥외영업이 허용된 구간에는 평소의 20배가 넘는 2000여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축제기간 동안에 한해 500cc 생맥주 한잔에 1000원이라는 파격적인 할인혜택에 이끌렸는지 아니면 이날따라 유독 기승을 부린 무더위 탓인지는 알 수 없다.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한결 같이 을지로 노가리 호프의 미래를 밝게 봤다.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회사원 이광태(36)씨는 엄청난 인파에 우선 놀란 듯했다.

 그는 "인터넷 검색 통해서 알았는데 노가리로 유명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직 어색하기도 한데 이런 분위기 자체가 한국에서 흔히 없는 축제 분위기라 설레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18일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2017 제3회 을지로 노가리 호프타운 일일자선행사'를 찾은 시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7.05.18.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18일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2017 제3회 을지로 노가리 호프타운 일일자선행사'를 찾은 시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7.05.18.  [email protected]

 이씨는 "우리나라 축제 문화가 많이 없다"며 "그런데 이렇게 사소한 노가리 가지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참신하고 보기 좋다"고 말했다.

 그는 옥외영업의 장점에 대해 "아까 옆 테이블 어르신과 자연스럽게 대화 나누기도 했다"며 "그래서 세대간 소통 의미로서도 좋다. 단순히 즐기는 것으로도 좋아 이런 축제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20년째 인쇄소를 다니고 있다는 강철주(45)씨는 "원래 여름이나 되어야 사람이 차는데 오늘 축제라서 많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만의 노가리론을 털어놓기도 했다.

 강씨는 "저는 여기서 20년 일을 했기 때문에 술을 먹으면, 2차는 여기다. 노가리 가격은 1000원인데 맛은 다 다르다. 이 집은 딱딱한 노가리, 저 집은 부드러운 것. 생선도 똑같은 생선을 쓰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다르다. 소스도 다르다.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는데 특히 XX같은 경우는 다른 데는 안하는 노가리를 포장 판매를 할 정도로 맛있다"고 말했다. 

 지인의 소개로 이곳을 처음 찾았다는 김소남(69)씨는 "맥주가 싸서 왔다"면서도 "노가리 축제가 널리 알려지면 을지로 명물이 될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손님들이 들끓자 노가리 호프 골목 상인들도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18일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2017 제3회 을지로 노가리 호프타운 일일자선행사'를 찾은 시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7.05.18.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18일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2017 제3회 을지로 노가리 호프타운 일일자선행사'를 찾은 시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7.05.18.  [email protected]

 000호프를 운영하는 김형두 사장은 7년 동안 이곳에서 영업해왔다. 이번 축제의 모태가 된 '노가리 호프타운' 상인회 총무를 맡았다는 김 사장은 "그동안은 골목 안쪽이다보니 밤이면 거리가 어두워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지금도 밖에서 보면 입구를 못 찾는 경우가 많아 그동안은 아는 사람들만 왔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이번 축제를 통해 동네가 한결 밝아졌다"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 관광 명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00호프 정규호 사장은 "4대문 안이 저녁만 되면 공동화돼서 무서운 골목이다. 그래도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입구부터 사람 사는 소리 나고 웅성웅성하고 사람 살맛나는 골목이다. 경제적으로도 활성화되면 죽어가는 4대문 안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새로 출범한 정부를 향해서도 "지금까지 행사하면서 보면 평소에 음식점도 여러 가지 규제가 많다. 현실 맞지 않는 규제는 모두 시정해서 민생 위주로 활성화하고 필요 없는 규제는 없어졌으면 좋겠다. 음식점은 수십년 전 위생법을 적용해서 잣대를 맞추고 있다. 그런 점을 고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상인은 "예전에는 아는 사람들만 아는 해방구였지만 이번 축제를 계기로 을지로 노가리호프 골목이 모든 이들의 해방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상인들에게 혜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규제를 완화하는 만큼 상인들은 청결하고 안전한 가로환경 유지에 힘써야 한다. 영업시설은 보행자의 편의를 저해하지 않는 규모 내에 설치해야 하고 쓰레기통을 내놓아서도 안 된다고 중구는 강조했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이번 옥외영업 허가를 시작으로 다양한 계층이 찾는 골목 관광명소가 되도록 뒷받침해 공동화에 시달리는 야간 도심에 활력을 입히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