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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명 찾는 '문신 전성시대'…일반인 유행 '빛과 그늘'

등록 2017.08.28 11:5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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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지난 10일 홍대 거리의 한 타투 가게에서 리터칭 작업을 기다리고 있던 왕모(20)씨의 양팔에 새겨진 타투.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예수님과 십자가 모양을 새겼다. 2017.08.27.

【서울=뉴시스】 지난 10일 홍대 거리의 한 타투 가게에서 리터칭 작업을 기다리고 있던 왕모(20)씨의 양팔에 새겨진 타투.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예수님과 십자가 모양을 새겼다. 2017.08.27.

'조폭' '불량' 상징서 정체성·개성 표현 수단 각광
"몇년새 작업량 2배 늘어"···학생, 중장년도 관심
非의료인 시술은 불법···SNS 등으로 비공개 영업
혐오·위생 부정적 시선 여전···합법화 번번이 무산

 【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 지난 10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홍대 거리의 한 타투(Tattoo·문신) 가게. 2층 작업실 의자에 다소 긴장된 표정의 젊은 남성이 앉아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밝힌 왕모(20)씨는 "십자가와 예수님의 그림을 새기고 싶어서 꼬박 한달에 걸쳐 양팔에 타투를 했다"고 말했다. 

 왕씨 타투의 리터칭(1차 타투 후 실시하는 보충 작업)을 맡은 타투이스트 김철(활동명 바이오킴·40)씨는 왕씨의 팔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예수님 옷자락 쪽에 색을 좀 더 채워 넣어야겠다"며 멸균된 시술용 바늘을 꺼내 들었다. 타투이스트는 전문적 문신 시술가(문신사)를 칭한다.

 김씨는 "노출이 많은 여름에는 왕씨처럼 큰 그림의 시술보다는 관리도 쉽고 시술 시간도 짧은 5만원 정도의 작은 타투를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업 일지에는 이날 오후 또 다른 예약 일정이 적혀 있었다.

 ◇타투 수요 300만명 추산···"불안감 달래기·유명인 효과도"
 
 요즘 주변에서 크고 작은 문신한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가히 '타투 전성시대'다. 타투는 피부에 상처를 내 해당 부위에 잉크를 주입하는 작업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타투 수요자는 300만명으로 추산된다. 눈썹 미용 등 반영구 문신까지 포함하면 1600만명에 달한다.

 문신과 타투는 같은 말이지만 문신이란 단어에 담긴 선입견 탓에 주로 타투라는 표현이 애용된다. 문지르면 지워지는 '헤나'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경기 시흥에서 활동하는 10년차 타투이스트 김종안(활동명 화랑·41)씨는 "2~3년 전에 비하면 하루 작업량이 2배 가까이 늘었다. 문의전화가 굉장히 많다"며 "과거엔 화류계 종사자, 연예인, 운동선수 등이 주요 시술 대상자였다면 지금은 대학생, 직장인 등 일반인이 많아졌다"고 밝혔다.

 젊은이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중장년층도 관심이 많다. 신촌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전재홍(43)씨는 "멋진 액세서리를 보면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타투가 그렇다. 개성을 마음껏 드러내는 것 같아 나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타투이스트 김철씨는 "흉터를 가리기 위해서, 혹은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라면서 시술을 받고 가는 50대 이상 고객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지인과 함께 '커플 타투'를 하는 것도 유행이다. 홍대 거리에서 만난 한가위(26·여)씨가 내민 팔뚝 안쪽에는 하트 모양의 타투가 선명했다. 그는 "고1때부터 고3때까지 같은 반이었고 10년 동안 같은 동네에 살면서 가족같이 지내는 친구와 특별한 인연을 기념하려고 타투를 받았다"고 말하며 뿌듯해했다.
 
【서울=뉴시스】한가위(26·여)씨가 친구과 기념으로 새긴 우정 타투. 2017.8.27. (사진=한가위씨 제공)

【서울=뉴시스】한가위(26·여)씨가 친구과 기념으로 새긴 우정 타투. 2017.8.27. (사진=한가위씨 제공)


 타투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크게 변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조폭 같다' '불량스럽다'는 낙인이 일반적이었던 것과 달리 예술 또는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자유롭고 개성적인 행위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홍대 거리에서 만난 중학교 교사 조정연(46·여)씨는 "요즘 타투를 보면 예쁘다는 생각을 한다. 고등학생인 딸에게 하고 싶으면 하라고 할 정도"라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양팔에 새겨진 타투를 드러낸 최득순(31)씨는 "예전에는 문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요즘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심리적 안정감을 추구하고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심리가 타투의 대중화를 불렀다고 분석했다.

 황명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취업난과 경제위기 등으로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 속에 영구적인 타투를 몸에 새기면서 심리적 안정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고강섭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하지마'로 상징되는 억압의 문화에서 벗어나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타투를 새기는 행위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유명인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방송 등을 통해 사회적 지명도가 있는 인사들이 타투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추세다. 방송인 추성훈은 발바닥에 딸 사랑이의 발바닥을 새겨 관심을 모았다. 가수 이효리는 미디어를 통해 팔목에 새긴 해·별·달이나 팔 안쪽에 새긴 불교 화엄경 속 '인드라망' 모양의 타투를 공개해 화제가 됐다. 타투를 검색했을 때 '추성훈 타투'나 '이효리 타투'가 연관 검색어로 등장하는 이유다.

 황 교수는 "과거 '안티문화'였던 타투가 연예인들에 의해 자주 노출되면서 일반인들도 '따라 하고 싶다'는 심리를 갖게 됐다"며 "결국 타투가 주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정적 시선도 여전···"인사 불이익·혐오감 초래할 수 있어"
 
 타투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대면 업무나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우 제한이 많다.

 한 국내 대기업 인사팀 사원인 안모(26)씨는 손가락에 새긴 반지 모양의 타투에 반창고를 붙이고 다닌다. 안씨는 "일하는 데 아무런 영향도 없고 눈에 띄지 않는 곳이라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힐끔거리는 경우가 많다"며 "여름이 되니 더 신경 쓰여 아예 타투를 없앨 생각"이라고 토로했다.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알려진 외국계 기업도 다르지 않다. 한 외국계 기업 인사담당자는 "인사 방침상 (타투를 하면 불이익을 준다는)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드러나는 곳에 타투가 있다면 마이너스라고 생각한다. 과연 조직에서 일할 준비가 됐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공무원의 경우는 타투와 관련한 채용 기준이 있다. 경찰청과 병무청에 따르면 경찰관과 군인 선발 시 문신 관련 규정이 존재한다. 문신의 크기와 정도에 따라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경찰청 인재선발계 관계자는 "실제 응시생 중 문신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의 문신이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박씨는 소집해제를 앞두고 여름철 반팔 제복으로 가려지지 않는 팔 아래쪽에 손바닥 크기의 문신을 새겼다. 병무청은 위화감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뉴시스】 타투 시술 사례. 2017.08.27. (사진=타투이스트 바이오킴 제공)

【서울=뉴시스】 타투 시술 사례. 2017.08.27. (사진=타투이스트 바이오킴 제공)


 따가운 시선도 감수해야 한다. 홍대의 한 상가 지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옥자(64·여)씨는 타투 이야기를 꺼내자 바로 인상을 찡그렸다. 김씨는 "부모가 몸을 제대로 만들어줬는데 엉뚱하게 낙서를 한 것처럼 보인다. 보기 싫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홍대 거리에서 만난 최용규(48)씨도 "문신은 불법인데 사실상 다 범죄자 아니냐"며 "바늘 소독이라든가 작업장 청결 문제 등 위생 문제도 무시 못한다"고 지적했다.

 ◇'잠재적 범죄자' 타투이스트···"합법화 통해 자격 유도해야"
 
 대부분의 타투이스트는 사실상 잠재적 범죄자다. 1992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국내에서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이 모두 불법이 됐다. 17대 국회에서 공중위생관리법 일부개정안을 시작으로 18·19대 국회에서 '문신사법안'이 발의되며 합법화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무산됐다. 시술의 안전 문제와 감염 등 위생문제를 이유로 의료계와 복지부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송강섭 한국타투협회장은 "타투 시술 바늘은 멸균 처리된 일회용 바늘을 쓰는 게 일반적이다. 타투 기구의 경우에는 소독이 필요하지만 아주 기본적인 작업으로 의료면허가 필요한 수준이 아니다"라며 "전세계적으로 봐도 타투는 예술의 영역이다. 고도의 위생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의사에게만 시술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송 회장은 "타투이스트는 2015년 고용노동부가 육성할 신(新)직업 군으로 꼽히기도 했는데 문신사법안이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며 "타투 시술을 하는 의사는 전국 통틀어 한 손안에 꼽힐 정도로 적은데 수요는 엄청나다. 현실과 제도간 괴리가 큰 상태“라고 강조했다.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타투이스트들 대부분 가게 위치나 전화번호를 밝히는 대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모바일 메신저 ID를 이용해 예약과 문의를 받는다. 단속이나 신고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태원에서 활동하는 타투이스트 강모(32)씨는 "단속에 대비해 메신저를 이용해 예약을 받지만 혹시 누군가가 신고를 하거나 경찰에게 연락이 올까봐 두렵다"고 털어놨다.

 고강섭 교수는 "문화적 차원에서 본다면 타투를 불법화 시키는 것은 개인의 개성이나 자율성 발현의 기회를 박탈시키는 것이지만 보건상 문제도 무시하지 못한다"며 "합법화로 의료위생상 여건 등을 강화해 일정 자격을 갖춘 타투이스트들을 양성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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