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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책임져라" 가해자 가족까지 비난…미투 퇴색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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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3-03 12:50:41  |  수정 2018-03-12 08:5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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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민기

"아빠가 성범죄자인 걸 알았냐"…조민기 딸 SNS 타깃돼
"연기 관둬라"…조재현 딸 탤런트 활동에도 '은퇴' 압박
유명인사들 검색하면 그 가족까지 연관검색어로 노출
"가족들 공격은 2차 피해 낳는 잘못된 방식, 자제해야"
"도를 넘을 경우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등으로 처벌돼"

【서울=뉴시스】박영주 기자 = 과거 성범죄를 저질렀던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향한 대중의 시선이 차가운 가운데 일부 누리꾼들은 "책임을 같이 묻겠다"며 해당 인사들의 가족에게까지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가해자를 넘어 가족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도를 넘은 행동들이 또 다른 2차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우리 사회의 잘못된 구조를 바꾸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달 20일 탤런트 조민기 씨가 모교인 청주대 교수로 재직하며 제자들을 수차례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처음 불거졌다. 2013년 조씨가 오피스텔로 여제자 2명을 불러 술을 마신 뒤 강압적으로 침대에 눕혀 성추행했고, 2014년 노래방에서 여제자에게 억지로 뽀뽀했다는 폭로 글도 뒤따랐다.

 조씨에게 당했다는 피해자들이 늘자 누리꾼들은 조씨의 아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찾아가 "남편이 성범죄자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딸 또래 피해자들을 생각하라" 등의 악성 댓글을 달았다. 2015년 한 예능프로그램에 조씨와 함께 출연한 딸 조모 양의 SNS에도 "너의 아빠가 그런 사람인 걸 알고 있었냐" 등 공격성 글이 이어졌다.

 일부 누리꾼은 개인 SNS 클릭 수를 늘리려는 의도인 듯 조양 사진을 캡처해 '조민기 딸 근황' 등의 제목으로 퍼뜨리기도 했다. 해당 게시글에도 조씨와 조씨 딸을 조롱하는 댓글들이 쏟아졌다. 현재 조양의 SNS는 비공개 계정으로 전환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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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방송 현장에서 성희롱한 의혹으로 활동을 중단한 배우 조재현 씨의 딸 조모 양도 누리꾼들의 공격 대상이 됐다. 조양은 지난해 인기리에 방송된 TV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는 등 조씨의 뒤를 이어 탤런트의 길을 걷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조양을 향해 "연기하지 마라", "드라마 나와도 안 본다" 등 보이콧(조직적 거부 활동)을 하자고 주장했다. 또 "조씨 덕에 쉽게 탤런트 된 만큼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라", "더 비참해지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라" 등의 글로 '은퇴'하라고 압박했다. 조양의 SNS는 아직 열려있지만, 댓글은 못 쓰게 설정됐다.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 등 제작자로 '뮤지컬의 대부'로 불렸던 윤호진 씨가 성추행 의혹에 휩싸이자 그의 아들인 마리몬드 대표 윤홍조 씨가 사과하기도 했다. 마리몬드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미술작품을 기반으로 한 패션·디자인 상품을 생산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윤씨는 공식 홈페이지에 "부친인 윤호진 뮤지컬 연출가의 성추행 문제가 일어난 것과 관련해 큰 충격과 통탄의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아버지는) 반드시 피해자분들께서 원하는 방식으로 사과하시고 용서를 받으시길 바란다. 가족 내에 이런 문제가 있는지 몰랐던 점 모두 깊이 반성한다"고 사과했다.

 이밖에도 탤런트 최일화 씨, 영화배우 오달수 씨, 연출가 이윤택 씨 등 미투 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된 유명인사들의 이름을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입력하면 그의 가족관계 및 자녀들의 이름 등이 연관검색어로 노출되며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해자 가족을 향한 지나친 악성 댓글과 신상털이가 미투 운동에 오히려 해가 된다고 지적한다. 미투 운동이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특정인을 향한 비난이 아닌 사회의 잘못된 구조를 바꾸려는 성숙한 시민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죄를 넘어 가해자가 소속된 집단·가족까지 공격하는 것은 2차 피해를 낳을 수 있는 잘못된 방식"이라며 "미투 운동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신속하지 않고 형량 또한 가볍게 끝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러한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쌓여 가족을 향한 개인적인 응징으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도가 넘을 경우 상황에 따라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등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gogogirl@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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