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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2인자', '쿠데타 핵심'…외신들도 JP 별세 보도

등록 2018.06.24 02: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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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향년 92세로 23일 오전 8시15분 별세했다.김 전 총리는 고(故)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한때 트로이카를 이끌어왔다. 이날 김 전 총리가 별세함에 따라 '3김(金) 시대'는 종언을 고하게 됐다.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공주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그해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 전 총리는 또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를 지냈으며, 박정희 정권과 김대중 정부 시절 두 차례에 걸쳐 국무총리를 지냈다. 김 전 총리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 됐다.사진은 김 전 총리가 71년 6월 4일 중앙청에 첫 등청하는 모습. 2018.06.23. (출처=운정재단 홈페이지)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향년 92세로 23일 오전 8시15분 별세했다.김 전 총리는 고(故)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한때 트로이카를 이끌어왔다. 이날 김 전 총리가 별세함에 따라 '3김(金) 시대'는 종언을 고하게 됐다.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공주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그해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 전 총리는 또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를 지냈으며, 박정희 정권과 김대중 정부 시절 두 차례에 걸쳐 국무총리를 지냈다. 김 전 총리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 됐다.사진은 김 전 총리가 71년 6월 4일 중앙청에 첫 등청하는 모습. 2018.06.23. (출처=운정재단 홈페이지)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안호균 기자 = 23일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계 주요 외신들도 파란만장했던 고인의 정치 이력을 비중있게 보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김 전 총리는 수십년간 한국 정치를 장악해 온 '삼김(三金)' 중 마지막 인물이었다"며 "그는 지도자들의 의중에 의해 정당들이 이합집산하는 한국의 지역 정치 체제 하에서 원조 '킹메이커'로 통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성격이 불같고 고집이 강했던 나머지 두명과 달리 그는 유연하고 재치있는 거래의 달인이어서 더 눈에 띄었다"며 "군부독재 시절 반체제 인사였던 다른 두 김씨와 이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공통점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NYT는 "김 전 총리는 국회의원으로 9번이나 선출됐고 4개의 정당을 만들었으며 총리를 두번이나 맡은 최초의 인물이었다"며 "그러나 대통령직은 항상 '영원한 2인자'로 알려진 김 전 총리를 피해갔다"고 덧붙였다.

 AP통신은 "김 전 총리는 소장이던 박정희를 1961년 권좌에 앉힌 쿠데타의 핵심 인물이었다"며 "박 대통령이 권력을 잡은 뒤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이끌었고, 1971년부터 1975년까지는 2인자인 총리직에 올랐다"고 언급했다.

 AFP통신은 "김 전 총리는 1960년대 중반 한국을 식민 통치했던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비밀 협상을 하면서 분노에 찬 항의 물결을 촉발시키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일본 언론들도 해방 후 한일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김 전 총리의 정치 이력에 대해 소개했다.

 교도 통신은 김 전 총리가 한국 국교정상화로 이어지는 비밀합의를 일본과 타결했고 한일의원연맹의 초대 회장을 역임하는 한국 정계의 대표적인 지일파였다며 타계 뉴스를 긴급 타전했다.

 도쿄신문은 김 전 총리가 한국의 정치 거목으로서 한일 관계 정상화에 진력했고 일본 정치가와 견실한 파이프를 구축해 한일 교류에 큰 역할을 맡았다고 강조했다.

 마이니치 신문은 김 전 총리가 김대중 정권 때인 1998~2000년 총리에 재임하면서 한국에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실현시키는 한일공동선언을 막후에서 주도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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