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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판결' 로스쿨생들이 공개 비판…"법원 소임 방기"

등록 2018.08.20 16: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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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전 인격에 대한 광범위한 '품행 심판' 진행"

"대법원이 제시한 성인지 감수성 기준 현격히 하회"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 못하는 성별권력 구조 외면"

"비동의 간음 처벌 문제 아냐…소임 방기 변명 불과"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자신의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에 출석하고 있다. 2018.08.18.suncho21 @newsis.com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자신의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에 출석하고 있다. 2018.08.18.suncho21 @newsis.com

【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자신의 여비서를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을 놓고 예비 법조인들이 공개적으로 문제 삼고 나섰다.

 전국법학전문대학원 젠더법학회 연합(전젠연)은 지난 19일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1심 판결에 부쳐'라는 제목으로 낸 성명서에서 안 전 지사에 대한 무죄 판결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했다.

 전젠연은 "업무상위력에 의한 추행 및 간음의 구성요건을 기존 대법원 판결의 판시보다 엄격하게 해석한 근거에 대해 재판부는 합당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며 "위력의 존재와 행사를 구분하지 않고, 피해자의 강한 저항의 존부를 문제 삼지 않는 기존 대법원의 법리보다 훨씬 엄격하고 후퇴한 기준을 적용한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1998년 대법원의 판례를 예로 들어 "업무상위력등에 의한 추행에서의 '위력'은 폭행·협박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며, 현실적으로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될 것임을 요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한 바 있다"며 "피해자가 거부의 의사표시를 했던 점을 고려할 때 피고인과 피해자 간 성적 관계에서 위력 행사가 수반되지 않았다는 판단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의 심리 방식에 대해서도 "대법원이 제시한 성인지 감수성 기준을 현격히 하회했다"고 주장했다.
 
 전젠연은 "재판부는 심리의 초점을 위력 '행사'와 피해자의 자유의사 제압 여부로 옮겨 재판이 사실상 피고인이 아닌 피해자에 대한 심리로 흘러가게 했다"면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한다는 명목하에 피해자의 평소 언행, 지인과 주고받은 메시지, 사건 발생 후 피해자의 대응과 태도, 나이, 학력, 결혼 여부 등 사실상 피해자의 전 인격에 대한 광범위한 '품행 심판'을 진행했다"고 규정했다.

 이로 인해 안 전 지사의 피해자에 대한 사과, 범행 사실을 '잊으라'는 메시지 반복 전송,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음을 인정하는 입장문, 평소 안 전 지사가 부하직원들을 고압적으로 대한 정황 등 유죄로 볼만한 증거들에 대한 심리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재판부는 유력 대선 주자와 수직적 관계에 놓인 피해자 사이의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고,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했다"면서 "재판부는 당위와 현실을 혼동해 여성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없는 맥락과 현실의 성별권력 구조를 외면했다"고 단언했다.
【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 도로에서 미투운동과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성폭력·성차별 끝장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8.08.18. 20hwan@newsis.com

【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 도로에서 미투운동과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성폭력·성차별 끝장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8.08.18.  [email protected]

또 "이번 사건은 입법 책임의 소재가 불명한 비동의간음의 처벌 문제가 아니다"라며 "폭행 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강간, 강제추행과 별도로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죄를 둔 입법 취지와 위력의 개념·판단 기준을 고려한다면 안 전 지사의 죄책을 형법상 업무상위력에 의한 간음죄로 의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번 사안을 비동의간음죄 신설로 해결해야 한다는 재판부의 덧말은 그간 법원이 강력하게 주장해온 법해석 및 적용권한의 전속기관으로서의 소임을 방기하는 변명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며 "우리는 이번 사건에 대한 정치적 고려와 여론에 대한 응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합당하게 마련된 기존 법리와 대법원이 제시한 성인지 감수성이 적용된 상식적 판단을 촉구하는 것"이라며 항소심 재판부의 다른 판단을 요구했다.

 전젠연은 "법원은 법 해석 및 적용 권한의 전속기관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여야 한다"며 "입법권을 가진 당국과 사법부가 서로 공을 넘기는 사이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구제 및 인권보장은 점점 더 요원해지고 있다"고 했다.

 민감한 중요 사건 판결에 대해 로스쿨생들이 공개적으로 성명서를 내고 재판부를 비판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성명서를 낸 전젠연은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젠더법학회,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젠더법학회,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학회 여성주의 소모임,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젠더법학회,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학회 여성주의 소모임,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젠더법학회,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젠더법학회,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젠더법학회 등 8개 대학 로스쿨생이 참여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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