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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출토 통일신라 금동귀면 뒤, '왕(王)'자 확인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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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9-06 17:04:16  |  수정 2018-09-06 18:29:01
기존 '黃龍寺'는 '皇龍寺'로 새로운 사실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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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뉴시스】 이은희 기자 = 경주 황용사에서 최초 출토된 금동귀면 뒷면에 (王)자가 새겨져 있다. 2018.09.06.leh@newsis.com
【경주=뉴시스】 이은희 기자 = 경북 경주 동대봉산 절골의 황용사지에서 최초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금동귀면 뒷면에 왕(王)자가 새겨져 황용사가 당시 매우 융성한 사찰이었음이 확인됐다. 

또 지금까지 문헌을 통해 황용사가 한자로 黃龍寺로 알려졌었는데, 이번 ‘皇龍寺 大殿’명의 기와가 출토되면서 문헌에서의 黃이 아닌 皇(임금황)을 사용했음이 입증돼 한국사 교과서를 비롯한 관련 문헌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와 함께 회암사지 출토 용두편과 유사한 용두편이 출토돼 조선시대까지도 사격을 이어갔을 것으로 추정됐다.

문화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는 6일 오후 황용사 발굴조사 현장에서 공개 설명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새로운 발굴 조사결과를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금동귀면은 금속판의 일부를 도려내는 투조기법으로 만들어졌으며, 입에는 고리가 달려있다.

시대마다 왕실의 비호를 받거나 왕실에서 지원한 사찰임을 입증한 자료로 왕(王)이 새겨진 유물들이 출토되기도 하는데 황용사도 통일신라시대 왕실의 지원 또는 원찰이었을 가능성이 입증됐다. 

이영환 불교문화재연구원 연구사는 ”황용사는 고려시대 경주도심 구황동의 황룡사와 구분하기 위해 黃(누를 황)자를 쓴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조선시대 인조대왕에게 담화스님이 보고하고 대대적으로 중창을 했다는(불국사고금역대기) 자료에 따라 조선시대에는 皇(임금 황)을 쓰는 황용사였다”고 밝혔다.

이 연구사는 “고려시대에 황룡사가 폐사가 됐으니 그 이후에 격에 맞는 황용사가 되지 않았나 추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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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뉴시스】 이은희 기자 = 이영환 연구사가 금동귀면 출토현장을 가리키고 있다. 2018.09.06.leh@newsis.com
황용사지는 동대봉산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내려오는 골짜기에 위치하며 동서로 주계곡이 사역을 감싸듯 흐르고 있다. 이번 조사는 남류하는 2곳의 지류를 중심으로 크게 3개 구역으로 구분됐다.

조사결과, A구역에는 대지를 조성하기 위한 대형석축 1기, 북쪽 경계 석축2기, 가마터 1기, 건물지 2동, 기단 2기, 초석열 1기, 배수로 2기, 불명석렬 2기 불명유구 1기, 불대좌하대석, 기단석, 소맷돌, 석등대상석 등이 잔존했다.

B구역에는 대형석축 1기와 북쪽경계 석축 1기, 건물지 2동, 노지 1기, 적심 1기 등이 잔존하며, C구역은 승탑과 관련 부재로 추정되는 석재가 확인됐다.

출토유물은 투조 금동귀면장식, 소조불상편, 인와문 토기편, 연화문 수막새, 마루암막새, 중판 선문계 평기와를 비롯해 “황룡사 대전‘명 기와편, 잡상편, 어골문 기와편, 중호문 기와편, 분청사기, 자기편 등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수를 차지한다.

 le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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