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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윤석화 "석양의 아름다움, 저는 페이드 아웃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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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5-16 19:33:34  |  수정 2019-05-16 22:03:46
17년만에 문닫는 대학로 정미소
마지막 공연은 '딸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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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 ⓒ돌꽃컴퍼니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찬바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공연장. 2002년 대학로 극장 '정미소'(정美소)는 천막극장처럼 문을 열었다.

윤석화(63)가 드라마콘서트 '꽃밭에서' 초연을 시작으로 이 정원을 가꿔나갔다. 벽돌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올려 2005년이 돼서야 제대로 건물의 꼴을 갖췄다. 윤석화가 출연하는 작품이 매진행렬을 기록하는 등 한때 '좋은 공연의 메카'로 통했다. 하지만 경영난으로 매각을 결정, 17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윤각화는 16일 정미소의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참 마음이 안타까워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무엇보다 보람을 느꼈던 곳이라 더욱 안타깝다. 

"제가 젊고, 힘이 있고, 작품에 대한 열정이 있었던 때 젊은 후배들을 조금씩 후원하는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관객들을 모아주고, 공간을 내어주고 약간의 제작비를 지원해줬을 때 보람을 느꼈죠."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을 연출한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 연출이 대표적이다. 셰익스피어 전문가로 통하는 양 연출은 영국 런던 바비컨센터와 글로브 극장에 초청 받기도 했다.

당시 런던에 있던 윤석화는 후배들이 예뻐서 밥을 사주며 먹고 싶은대로 다 먹으라고 했는데 "너무 많이 먹어서···"라며 웃기도 했다.

배우 이종혁(45)은 2000년대 초 정미소에서 배우 박정자(77)와 연극 '19 그리고 80'을 공연했다. 이종혁은 당시 객석이 관객으로 가득 찼다고 회상했다. 분장실에서 자신의 이름을 대중적으로 알린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2004) 캐스팅 소식을 듣기도 했다. 윤석화는 "정미소가 후배들에게 길이 돼 줬다는 것이 뿌듯해요"라고 담담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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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작곡가 최재광, 배우 이종혁, 배우 윤석화, 연출 김태훈 ⓒ돌꽃컴퍼니
윤석화는 1975년 민중극단의 연극 '꿀맛'으로 데뷔해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1987), 뮤지컬 '사의 찬미'(1990), 뮤지컬 '명성황후'(1996), 연극 '신의 아그네스'(1999), 연극 '세 자매'(2000),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2003) 등에 출연했다.

'토요일 밤의 열기' 등을 제작하며 공연계의 대모로도 발돋움했다. 연극배우로는 이례적으로 인기를 누린 시절 커피CF에 출연, "저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예요"라는 유행어를 낳기도 했다. 공연제작사 돌꽃컴퍼니 대표이사로 1999년 인수한 공연예술 전문지 '월간객석' 발행인도 겸했다.

하지만 당대를 풍미한 그녀에게도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이 있고, 그것을 수용했다. "요즘 시대에 개인이 극장을 운영하는 것은 BEP(손익분기점)가 맞지 않아요. 극장에서 17년간 머슴 역을 하면서 아픈 일도 많았고, 힘든 일도 많았죠. 하지만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없어요.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할 수 있어서 부족하지만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가 정말 시골에 진짜 정미소를 정미소로 만들고 연극을 할 수 있다는 꿈은 있어요."

윤석화는 정미소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아듀! 정미소'를 테마로 기획, 6월 11~22일 정미소에서 자신의 모노드라마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연한다. 정미소의 마지막 공연이다.

이번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2020년 런던 공연을 위한 '오픈 리허설' 형식이다. 연극 '레드' '대학살의 신', 뮤지컬 '시카고' '빌리 엘리어트' 등의 김태훈 연출과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토요일 밤의 열기' '조용필 콘서트' 등에 참여한 작곡가 겸 음악감독 최재광이 합류한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 극작가 아널드 웨스커(1932~2016)의 작품이 원작이다. 1992년 임영웅(83) 대표의 연출, 윤석화 출연으로 극단 산울림에서 세계 초연했다. 당시 윤석화는 홀로 공연장을 가득 채우며 호평 받았고, 작품은 매진사례를 기록했다. 이번에는 웨스커와 윤석화가 2012년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리허설 형식으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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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는 "2020년 영국 공연이 예정돼 있지 않으면 엄두를 못 냈을 거예요. 이 작품을 특별히 사랑해준 관객에게 '영국에서 공연을 하게 됐습니다'라고 알리는 공연이죠. 리허설 형식으로 자유롭게 해보고 싶어요"라고 귀띔했다.

최근 공연장은 복합몰 형태로 바뀌었다. 극장도 몇개씩 보유하고, 음식점과 카페가 입점하는 것은 당연하다. 윤석화는 요즘 공연장들에 대해 "퍼포먼스 공간에 적합한가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공간이 작아도, 초라해도 상관 없어요. 크든 화려하든 그것보다 극장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할지 근본정신과 가치가 더 중요하죠. 그래서 정미소가 없어지는 것이 더 안타깝습니다."

윤석화는 '페이드 아웃'이라고 여러 번 말했다. 초점을 맞춘 장면을 점차 어둡게 만드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로 주로 해당 장면이나 극을 끝낼 때 많이 사용한다.

"정미소가 없어져서 섭섭하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해요. 제가 마음이 약해서 스스로는 못 내려놓는데 내려놓을 수 있게 됐으니까요. 한 때 이곳에서 치열하게 일을 했지, 라는 기억을 갖고 페이드아웃할 수 있는 거잖아요.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도 아름답지만, 석양도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죠. 제가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물론 사는 중에 곡해, 오해, 고난도 있었지만 석양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의 좋은 배경이 돼 주고 싶어요."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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