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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노동자, 다시 손 잡다…대학가 잇단 노학연대 눈길

등록 2019.06.09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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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모닥불', 숙명여대 '만년설' 등 활동

"80년대 '노동자 정치세력화' 목적과 달라"

"노동자 근로조건, 학생복지와 맞닿아 있어"

노동자에 시혜적 관계 넘어 '동등'한 관계로

근무태만·성차별 등 학생 불만 전달·해소도

【서울=뉴시스】지난 5월2일 홍익대학교에서 20여년간 근무해온 중앙도서관 경비노동자 선모씨가 쓰러진 자리에 모닥불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홍익대분회가 마련한 추모공간의 모습. (사진 = 모닥불 페이스북 갈무리)

【서울=뉴시스】지난 5월2일 홍익대학교에서 20여년간 근무해온 중앙도서관 경비노동자 선모씨가 쓰러진 자리에 모닥불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홍익대분회가 마련한 추모공간의 모습. (사진 = 모닥불 페이스북 갈무리)

【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 지난 4일 서울서부지법 307호. 2017년 임금인상 농성 중 학교 측에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고발당한 미화노동자들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렸다. 중년의 미화노동자들 옆에는 20대 청년들이 자리했다. 유죄 선고가 난 후에는 짤막한 입장도 발표했다. 홍익대학교 노동자와 이 대학 학생들이 함께하는 연대기구인 '모닥불' 학생들이었다. 노학연대의 자리였던 것이다.

홍익대 뿐만이 아니다. 1990년대 들어 자취를 감춰왔던 노학연대가 대학 곳곳에서 다시 활동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3월 구성된 '모닥불'은 현재 20여명의 학생들이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학교 측의 무인경비시스템 도입으로 인한 학내 안전 문제 및 경비노동자 고용문제에 중점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 4월30일에는 20여년간 경비노동자로 근무하다 숨진 선모 씨의 분향소를 설치, 학생들과 함께 선씨의 마지막길을 배웅하기도 했다.

숙명여자대학교에는 2017년부터 '만년설'이 활동 중이다. '숙명여대 노동자와 연대하는 만명의 눈송이(학교 마스코트 이름)'라는 뜻을 담았다.

만년설 실무팀 장태린(22)씨는 "2017년 여름, 미화경비노동자들의 임금단체협상 투쟁에 연대하면서 단체로 활동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다"고 전했다.

현재 만년설은 10명 내외의 실무팀원들과 30명 정도의 연대회원이 있다. 실무팀은 매년 최저시급을 연회비로 내는 연대회원들과 함께 활동 방향 등을 계획한다.

이외에도 서울대학교에는 노동자-학생 연대기구인 '비정규직없는 서울대만들기 공동행동'이 있고,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도 학생들과 학교 미화노동자들이 연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뉴시스】지난 4월11일 모닥불이 학교 정문에서 '학생안전과 노동자의 생존권 위협하는 경비인력감축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 = 모닥불 페이스북 갈무리)

【서울=뉴시스】지난 4월11일 모닥불이 학교 정문에서 '학생안전과 노동자의 생존권 위협하는 경비인력감축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 = 모닥불 페이스북 갈무리)

노동자와 학생들이 연대한다는 형식은 과거와 비슷하지만 그 목적과 방식은 사뭇 다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민주노조, 노학연대 그리고 변혁' 저술에 참여한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1980년대 노학연대는 정치적으로 각성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이른바 '계몽'하고 조직화하려 했다"며 "그 결과 국가권력과 자본가를 대상으로 직접적인 정치투쟁을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노학연대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로 활동한다. 노동자들의 근무 조건이 곧 학생들의 생활 및 안전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김민석 모닥불 운영위원장은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경비실이 있는 건물보다 없는 건물이 더 많아졌다"며 "건물 출입 단속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학생들의 안전 문제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만년설 실무팀 장태린씨도 "임금 교섭문제로 파업을 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이 부담하게 된다"고 했다. 학내 노동자와의 연대활동이 학생들의 복지향상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방식은 보다 평등해졌다. 학생이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 '동등'한 관계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김민석 운영위원장은 "학내 가장 약한 구성원들인 학생들과 경비·미화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모닥불'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자는 의미 등을 고려해 단체이름을 정했다"며 "학생들끼리 돈을 모아 노동자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거나 휴게공간을 마련해주는 걸 넘어 함께 학교를 향해 책임 있는 대안을 요구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지난해 만년설이 제작한 '숙명여대 미화·경비 노동자 인권가이드라인'. 가이드라인은 학생들에게 '굿즈'를 판매해 모금한 돈으로 제작, 배포됐다. (사진 = 만년설 페이스북 갈무리)

【서울=뉴시스】지난해 만년설이 제작한 '숙명여대 미화·경비 노동자 인권가이드라인'. 가이드라인은 학생들에게 '굿즈'를 판매해 모금한 돈으로 제작, 배포됐다. (사진 = 만년설 페이스북 갈무리)

동등한 관계로 노동자들에 대한 학생들의 애로사항도 전달한다. 둘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홍익대 모닥불은 학내 커뮤니티에서 경비노동자 근무태도에 대해 비판적인 학내 여론을 접했다. 이에 모닥불과 함께 활동해온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홍익대 분회는 4월9일과 10일 두차례 걸쳐 직무교육을 긴급소집했다. 

아울러 모닥불 측은 점심 혹은 새벽 시간대 경비노동자들이 보이지 않거나 잠을 잔다는 학생들의 불만에 대해서는 법정 휴게시간이고 이 공백을 메우려면 추가 인력 고용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숙명여대 만년설은 지난해 미화경비노동자들에 대한 인권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했다. 일부 노동자들에게 성차별, 장애인 차별 등의 내용을 담은 말들로 불편했다는 한 학생의 이야기가 계기가 됐다.

장태린씨는 "모든 구성원들이 평등한 학교를 만드는 것이 만년설의 큰 목표기 때문에 시혜가 아닌 연대를 추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학생들이 노동자를 도와 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학생이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며 "인권가이드라인 또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진행한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노학연대의 목적이 달라지며 학생과 노동자들이 맺는 관계도 자연스레 달라진다고 봤다.

김원 교수는 "노학연대가 학생들이 노동자를 계몽시킨다는 '위계질서'가 작용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노동자와 학생의 '연대'의 의미로서, 현재 노동자와 학생들은 과거와 다른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도 "과거 노학연대 운동은 경비미화노동자에 대한 시혜적인 성격이 많았다"며 "최근 연대기구가 노동자와 학생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둘 사이 관계가 수평적이고 적극적인 형태로 형성되는 경향이 많아질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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