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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치매안심센터 2년…어르신은 '건강' 찾고 가족엔 '안정'

등록 2019.09.22 12:00:00수정 2019.10.22 11: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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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군 치매안심센터 가보니

혼자 지내던 노인 치매속도 늦추고

끙끙 앓던 가족도 '자조모임'서 활력

치매추정인구 75만명…센터밖 '고민'

【양평=뉴시스】임재희 기자 = 경증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들이 지난 19일 경기 양평군 양평읍 '양평군 치매안심센터' 2층 교육실에서 치매 악화 지연을 위한 색종이 붙이기 등 인지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2019.09.22. limj@newsis.com

【양평=뉴시스】임재희 기자 = 경증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들이 지난 19일 경기 양평군 양평읍 '양평군 치매안심센터' 2층 교육실에서 치매 악화 지연을 위한  색종이 붙이기 등 인지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2019.09.22. [email protected]

【양평=뉴시스】임재희 기자 = "제가 치매라는 건 생각도 안 했고 동네에서 치매라고 쑤군쑤군할 때는 기분이 묘했거든요. 그런데 여기에서 퍼즐도 맞추고 물리치료도 받고 하니까 확실히 나아지더라고요. 사람들이 요즘은 저보고 '치매가 아닌 것 같다'고 그래요."

지난 19일 오후 2시께 경기 양평군 양평읍 중앙로 111번길 34. 점심때를 막 지나 나른한 시간대였지만 '여기'에선 말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힘껏 손뼉 치는 소리도 들렸다. 김신원(81) 할머니가 '퍼즐도 맞추고 물리치료도 받는다'는 여기는 양평군 치매안심센터다.

◇'검사부터 사례관리까지'…국가책임제 핵심

치매안심센터는 정부가 '치매 국가책임제' 성과 중 첫손으로 꼽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2017년 9월18일 문재인 대통령 핵심 국정과제인 치매 국가책임제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전국 256개 보건소마다 치매안심센터 설치를 약속했다. 센터를 상담부터 검진, 맞춤형 사례 관리, 서비스 연계까지 치매 관련 통합 지원을 책임질 전초기지로 삼았다.

센터에선 보건소가 치매 고위험군 선별을 위해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제공하던 선별검사는 물론, 병원에 가면 6만5000원(CERAD-K)에서 15만원(SNSB) 하는 치매진단검사까지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치매 진단 노인은 협약병원 등에서 감별검사로 원인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중위소득 120% 이하 60세 이상 노인엔 본인부담금이 지원된다.

전체 인구(11만7034명)의 33.97%인 3만9753명이 60세 이상 고령인 양평군은 이미 2011년 양평군 치매지원센터를 출범했다. 치매안심센터로 바뀐 건 치매 국가책임제가 시행된 2017년이다. 올해 5월엔 3층짜리 신축 건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엔 간호사 7명과 사회복지사 6명,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할 작업치료사 5명, 요양보호사 3명 등 21명이 상주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 인력을 갖춘 센터에선 기존 보건소와 달리 각종 맞춤형 사례관리가 가능하다. 꾸준한 치료관리를 위한 월 3만원 가량 진료·약제비부터 기저귀 등 물품, 실종예방 인식표 등이 제공된다. 평균 1~2명이 치매 관련 업무를 도맡아 하던 국가책임제 이전엔 상상도 못할 일들이다.

특히 초기 경증 치매 노인은 노인장기요양 서비스 등급 판정을 받기 전까지 센터 내 치매쉼터에서 인지재활 프로그램 등에 참여할 수 있다. 상담·교육과 함께 프로그램이 낮 시간대 제공돼 센터가 주간보호시설 역할까지 수행한다.

◇혼자였던 어르신 삶 180도 바꿔놓은 치매안심센터

이날 센터에서도 어르신 30여명을 모시고 색깔 퍼즐을 끼워 맞추거나 씨앗을 종이에 붙여 꽃 만들기, 색종이 붙이기 등 각종 치매 예방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다. 어르신들은 모르는 게 있으면 작업치료사에게 물어보고 틈틈이 옆자리 어르신과도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르신들은 치매안심센터에 다닌 뒤로 '치매가 멈춘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임뢰휘(79) 할아버지는 가족들이 집을 비운 낮에 혼자 있던 때를 "뇌가 망가지는 것 같았다"고 되뇌었다.

"집에 혼자 있으면 이렇게 인생이 마감되나 싶기도 하고 잡생각이 많아졌어. 텔레비전이나 책을 보는 데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그냥 잠을 잤다고. 그러니까 뇌가 망가지지."

양평군 치매안심센터를 찾은 지 1년. 삶은 바뀌었다.

"여기 나오면 이렇게 작품도 만들잖아요. 이렇게 손만 움직여도 이게 다 운동이거든. 대화까지 하다 보면 옛날처럼 잡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좋아. 아들, 며느리, 손주도 나보고 '좋아졌다'고 아주 좋아해요."

이날 센터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치매안심센터를 찾아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했더니 치매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했다.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얘기일까.

이런 물음에 배종빈 중앙치매센터 부센터장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답했다.

그는 "(집에서 혼자 생활하다 보면) 자극이 없게 되고 무료하게 있다가 잠들어 낮과 밤이 바뀐다. 일반인도 생활 패턴이 바뀌면 인지능력이 떨어지는데 치매 환자들은 훨씬 취약하다. 따라서 치매안심센터에 다니면서 햇볕을 쬐고 정상적인 리듬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인지기능은 높이고 인지저하 속도는 늦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평=뉴시스】지난 19일 오후 경기 양평군 양평읍 '양평군 치매안심센터'에서 치매 예방 프로그램 '기억을 품은 학교'에 참여한 노인들이 퍼즐을 맞추고 있다. 2019.09.22.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photo@newsis.com

【양평=뉴시스】지난 19일 오후 경기 양평군 양평읍 '양평군 치매안심센터'에서 치매 예방 프로그램 '기억을 품은 학교'에 참여한 노인들이 퍼즐을 맞추고 있다. 2019.09.22.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email protected]


◇누구에게나 낯선 치매…센터는 가족들에게도 '안식처'

치매안심센터로 삶이 바뀐 건 어르신 본인뿐만이 아니었다. 치매안심센터 필수 시설에는 교육상담실, 검진실, 각종 프로그램이 이뤄지는 쉼터와 함께 가족카페가 포함된다. 치매 가족이 정보를 교환하고 휴식, 자조모임 등을 할 수 있는 시설이다.

치매환자 본인에게 치매가 처음이듯 가족들도 치매는 낯선 질병이다. 가족카페에선 이런 가족들을 위해 치매 질환의 특성부터 돌봄 방법, 간병 스트레스 관리법까지 상담·교육이 진행된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엔 마음의 병이 뒤따른다. 지난해 대한치매학회가 보호자 100명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수행능력 저하에 따른 병간호 부담을 물은 결과 71%가 환자를 돌보면서 간병 스트레스가 늘었다고 답했다.

무엇보다 고충을 털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다.

치매를 앓고 계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정란순(61·여)씨는 "친척이나 친정 식구, 친구한테 (고충을) 얘기하면 '시어머니 모시면서 생색낸다'며 이해를 못한다"며 "부모님을 모시지 않아도 갱년기를 지나면서 우울함이 심해지는데 평소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데도 누구한테 말도 못 했다"고 말했다.

치매 가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사람은 치매 가족뿐이었다.

친정어머니가 치매를 겪으면서 치매안심센터를 찾게 된 이복윤(49·여)씨는 "한 번 다쳐본 사람과 다치지 않고 '아프다'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자조모임에서 다른 치매 가족들과) 얘기를 하면 '맞아요'하며 서로 안고 눈물을 흘리는데 그 '맞아요' 한마디가 너무 위로된다"고 말했다.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면 돌봄 노하우를 익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부모님만 이러시는 걸까'하는 불안감도 떨쳐낼 수 있다.

처음 10명으로 시작했던 자조모임은 어느새 3개팀 30명까지 늘었다. 모임에 참여한 가족들은 원하는 프로그램을 센터 측에 부탁하기도 한다. 이날 센터에선 리본 공예가 진행 중이었으며 도자기 만들기, 염색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기다리고 있다.
【양평=뉴시스】임재희 기자 = 치매 환자 가족들이 지난 19일 경기 양평군 양평읍 '양평군 치매안심센터' 1층에서 '리본공예'를 주제로 자조모임을 하고 있다. 2019.09.22. limj@newsis.com

【양평=뉴시스】임재희 기자 = 치매 환자 가족들이 지난 19일 경기 양평군 양평읍 '양평군 치매안심센터' 1층에서 '리본공예'를 주제로 자조모임을 하고 있다. 2019.09.22. [email protected]

◇치매안심센터만으론 한계…예방·돌봄 확대 '고민'

치매 국가책임제 이후 2년. 지난달까지 치매안심센터 이용 인원은 262만8000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치매환자는 43만여명이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738만9480명) 중 치매 환자는 10.16%인 75만488명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약 56.7%가 치매안심센터에 등록해 관리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령화 등으로 치매 환자는 매년 늘어 2024년 100만명, 2039년 200만명, 2050년엔 3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환자 본인과 가족 모두 높은 만족도를 보이는 치매안심센터 수는 한계가 있다. 지난달까지 225곳이 정식 개소하고 한곳당 16.4명씩 4196명이 충원됐지만 늘어나는 치매 인구를 모두 돌보기는 쉽지 않다.

양평군 치매안심센터만 해도 쉼터를 서부와 동부 두곳에서 운영 중이지만 정원은 30명이다. 여기에 검사를 받거나 물품을 지원받는 인원까지 더하면 하루평균 50~80명 정도 센터를 찾는 것으로 보인다.

등록된 치매 환자 중에서도 혼자 살거나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취약지대 환자가 21만6000명에 달한다.

이에 치매안심센터에는 센터를 찾은 노인 외에 경로당과 노인복지관을 이용하는 노인을 대상으로도 치매 조기검진과 예방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전국 센터들이 방문해 예방 프로그램을 진행한 시설만 2572곳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앞으로 치매안심센터를 직접 운영도 하겠지만 노인복지관 등의 직원들이 직접 치매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광역 센터 등이 노력할 것"이라며 "경로당과 복지관 등 어르신 이용 프로그램에 치매 예방 프로그램 등을 더할 수 있도록 내실화를 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런 고민의 연장선상에 '치매안심마을'이 있다.

치매안심센터를 중심으로 마을을 치매 친화 마을로 조성하고 지역특성에 맞는 치매 예방 및 돌봄 강화를 위한 주민 인식개선, 치매 노인 활동 등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양평군은 외곽지역에 있어 치매안심센터로부터 거리가 먼 청운면 용두1리와 운심1리와 2리 등 3곳을 치매안심마을로 선정하고 주민 요구를 반영한 각종 치매 친화 시설을 설치했다. 주민들이 주축이 된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초·중·고등학교와 면사무소, 파출소, 소방서 등을 찾아 치매 파트너를 양성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대일 친구맺기, 말벗 도우미, 병원 동행 등이 이뤄지고 있다.

치매 예방교실을 수료한 노인에게선 선별검사 결과는 향상되고 주관적 기억력 감퇴 수준과 우울감은 감소했다.

원은숙 양평군 보건소장은 "마을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치매 인식이 개선되고 경로당 환경을 개선할 때 주민들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됐다"며 "환자와 가족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치매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데 함께 협업하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양평=뉴시스】임재희 기자 = 지난 19일 경기 양평군 양평읍 '양평군 치매안심센터' 외부 모습. 2019.09.22. limj@newsis.com

【양평=뉴시스】임재희 기자 = 지난 19일 경기 양평군 양평읍 '양평군 치매안심센터' 외부 모습. 2019.09.22.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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