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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 법정된 치매 병실…법원 "실형대신 치료하라"

등록 2020.02.10 16: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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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살인 혐의로 징역 5년 선고

치매병원 주거지 제한 조건 보석

2심 "징역3년 집행유예5년 선고"

[고양=뉴시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가 10일 경기도 한 병원에서 살인 혐의를 받는 A(68)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을 진행하고 있다. 2020.02.10 (사진=법원기자단)

[고양=뉴시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가 10일 경기도 한 병원에서 살인 혐의를 받는 A(68)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을 진행하고 있다. 2020.02.10 (사진=법원기자단)

[고양=뉴시스] 고가혜 기자 = 경기도의 한 병원, 열댓명이 겨우 들어가는 작은 회의실 안으로 흰 머리에 휠체어를 탄 60대 노인이 들어가자 뒤이어 법복을 입은 판사 3명이 자리를 잡았다. 양쪽에는 검사와 변호사도 자리했다.

2m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판사와 마주 앉은 이 노인은 이날 병원에서 항소심 선고를 받았다. 치매 환자인 피고인을 위해 법원이 직접 병원으로 찾아간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10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A(68)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을 진행했다. A씨는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뒤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이날 재판부는 손수 각자의 법복을 챙겨 들고 A씨가 입원한 경기도의 한 병원을 찾았다. 치매 환자에 대한 '치료적 사법' 절차를 판결에 도입한 것도, 살인사건에 대한 선고 공판이 병원에서 이뤄진 것도 국내에선 처음이었다.

마스크를 낀 채 재판에 참석한 A씨는 초점 없는 눈으로 연신 바닥만 응시했다. 이날 발언을 위해 함께 참석한 A씨의 아들이 중간중간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할 때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A씨의 아들은 이날 재판에서 "1~3분 전 일은 잊어버리고 20~30년 전 상황은 기억하며 화를 내는 등의 증상이 요즘 들어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또 "아버지를 치료적 사법으로 인해 이렇게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지만 아버지는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도 인식을 못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A씨는 "여기가 어디냐"는 아들의 질문에 작은 목소리로 "법원"이라 답하기도 했다.

A씨의 치료를 담당한 병원장은 "치료를 통해 행동적 부분은 호전됐으나 전반적인 인지기능·일상생활 관리기능이 저하된 상태"라고 치료경과를 설명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가 10일 경기도 한 병원에서 살인혐의를 받는 A(68)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을 진행하고 있다. 2020.02.10 (사진=법원기자단)

[서울=뉴시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가 10일 경기도 한 병원에서 살인혐의를 받는 A(68)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을 진행하고 있다. 2020.02.10 (사진=법원기자단)

재판부는 A씨에 대해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또 집행유예 기간 5년간 보호관찰을 명하고 특별준수사항으로 법무부 보호관찰관 감독 하에 치매전문병원으로 주거를 제한한 상태에서 계속 치료를 받을 것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실형을 선고하기보다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해 치매전문병원에서 계속적인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모든 국민과 인간이 존엄가치를 지닌다고 선언한 헌법과 조화를 갖는 것"이라고 감형 사유를 밝혔다.

판결을 마친 후에도 A씨는 멍한 표정으로 바닥을 응시했다. 아들은 재판이 끝난 후 아버지의 휠체어를 밀고 간이법정이었던 회의실을 나섰다.

앞서 A씨는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구치소에 수감 된 A씨는 면회온 딸에게 죽은 아내와 왜 함께 오지 않았냐고 말하는 등 알츠하이머 치매 증상을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해 9월 A씨에 대해 주거를 치매전문병원으로 제한한 치료 목적으로 보석을 허가했다.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치료를 위해 구속 상태를 일시적으로 풀어 치료받게 한 뒤 재판을 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이후 병원은 법원에 A씨의 조사 결과를 매주 한 차례 통지해 왔고, A씨 자녀 역시 보석조건 준수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해왔다. 재판부도 미리 병원을 찾아 보석조건 준수 점검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A씨의 국선 변호인은 "이번 사건은 법원과 검찰, 피고인의 가족들, 그리고 치료병원의 적극적인 협조와 노력이 있어서 가능했던 전향적 판례"라며 "치료를 통해 보다 미래지향적인,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게 돼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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