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vs백신]<5>"머리가 깨질듯한 통증인데"…아파도 출근하는 노동자들
요양시설·의료기관 종사자 사례 들어보니
접종 초반 괜찮지만…근육통 등 통증 심화
당일 휴무 시 피해줄까…쉬지 못하고 '끙끙'
건강 물론 업무 지장도…"백신휴가 도입을"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엿새째인 지난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신 접종 위탁 의료기관에서 인근 요양원 종사자가 백신 접종을 받고 있다. 2021.03.03. [email protected]
"한 10시쯤 되니까 얼굴이 발그레해지더라고. 그래도 크게 아프진 않아서 그냥 잤는데 새벽 1시쯤 되니까 몸이 땅으로 들어가는 것 같더라고. 일어나질 못하겠는 거야, 입에서 신음소리만 나고. 거기다 평소에 아팠던 자리까지 다 아픈 거야. 너무 아프니까 약 먹을 생각도 못한 거지.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5시쯤 일어났는데 뒷골이 방방방 뛰어서 눈을 못 뜨겠더라고. 그때 약 먹으라는 생각이 나서 타이레놀을 먹었지."
밤새 통증과 싸우며 잠을 설쳤지만 이씨는 다음 날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 탓에 갑자기 누구 한 명이 빠질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씨는 정작 본인의 상태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진통제에만 의지한 채 어르신을 케어해야 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두통과 발열, 근육통 등 이상 증세를 호소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지만,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곧바로 일터로 향했다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현재까지 접종을 받은 요양병원·시설 종사자,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종사자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백신을 먼저 맞는다는 기대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하지만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일선에서 일한다는 책임감으로 접종에 나섰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대답이다. 접종 뒤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어 괜한 걱정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 증세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발현됐다.
경기도의료원의 한 병원에서 코로나19 병동 간호사로 일하는 20대 이모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난 11일 오후 1시30분께 화이자 백신을 맞고 2시에 바로 근무에 투입됐다. 이씨는 "처음에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며 "그런데 2~3시간이 지나자 주사 맞은 부위 쪽에 근육통이 생기면서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고 했다.
서울대병원 환경미화 노동자인 김미숙(57)씨는 지난 4일 접종 후 아찔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식은땀과 근육통으로 밤새 앓다가 새벽에 가까스로 출근한 김씨는 쓰레기통을 비우다 어지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김씨는 "안 되겠어서 반장에게 말하고 쉬는 곳에서 잠깐 있었는데 아마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며 "(쓰러져있는 것을) 선생님들이 발견해 응급실에 실려갔다"고 전했다.
[서울=뉴시스]배훈식 기자 = 지난 2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목행복자리 어르신 요양센터에서 양천보건소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센터 직원에게 접종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2021.03.02. [email protected]
어쩔 수 없이 출근하긴 했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통증으로 맡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경기 성남의 한 노인보호센터 요양보호사인 허모(56)씨는 "야간 근무를 서는데 팔이 나무토막처럼 단단하게 부어 너무 아팠다"며 "그래도 참고 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간호사 이씨도 "코로나19 병동은 기저귀를 해야 하는 환자분들도 많은데 팔이 올라가지 않으니까 일하는 데에도 굉장히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그나마 근무표상 접종 당일이나 다음날이 휴무여서 운 좋게 쉬게 된 노동자들은 통증 정도가 상대적으로 나았다고 한다. 특히 비록 몸은 아프지만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고 이들은 전했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 남자 간호사인 이모(29)씨는 "원래 계획된 근무표 자체가 접종 뒤 이틀 쉬는 날이었다"며 "퇴근 후 발열이 시작되면서 오한과 근육통, 두통까지 왔는데 마음 놓고 쉴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았다. 근무표가 변경되는 등의 불상사가 없으니까 심리적으로 편했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가 검토 중인 이른바 '백신 휴가'에 이씨가 찬성하는 이유다.
백신 휴가를 놓고 악용 우려 등 이견도 제기되지만 접종자들을 중심으로는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란 반응이 나온다.
[울산=뉴시스] 배병수 기자 =울산대학교병원 음압병실 간호사 이소영(26)씨가 지난 16일 오전 울산대병원 강당에서 지역 1호로 코로나19 화이자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2021.03.16. [email protected]
비단 노동자 본인의 건강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대구 대학병원의 또다른 남자 간호사 이모(30)씨는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보살피고 간호하는 입장에서 내 몸도 정상 컨디션이 아닌데 다른 환자들을 돌보게 되면 피해가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중환자실 간호사라서 그런 생각이 더 크게 든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이러한 의견에 힘을 싣고 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백신 접종 후) 증상 발생 비율이 꽤 높고 증상이 생기면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어려울 수 있다"며 "접종 후에 하루나 이틀 정도 집에서 쉴 수 있는 마련하고 국가가 지원한다면 (접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 휴가 도입을 위한 정부의 작업은 막판 속도를 내고 있는 모습이다. 윤태호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방역총괄반장은 지난 19일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서 "백신 휴가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기본 방향으로 잡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백신 휴가 도입 시 유급·무급 여부, 유급 적용 시 부담 비용 처리, 휴가 기간, 민간 사업장·자영업자·소상공인 적용 가능성, 직종별 고려사항 등을 정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세부 내용이 정리되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보고 후 관련 방안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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