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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중·동부 독일어권 지역 백신 반대 거세…코로나19 진정 어려울 듯

등록 2021.11.18 13:3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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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요법에 대한 선호가 강하고 중앙 정부 불신 커

'백신은 제약회사 돈벌이·정치인들의 음모' 간주도

극우 포퓰리즘 정치 세력 편승해 반대 정서 부추겨

[서울=뉴시스]독일 동부 작센주의 작은 마을 아나베르크-부흐홀츠에서 바를 운영하는 뮐러씨는 코로나 백신 접종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출처=뉴욕타임스) 2021.11.17.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독일 동부 작센주의 작은 마을 아나베르크-부흐홀츠에서 바를 운영하는 뮐러씨는 코로나 백신 접종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출처=뉴욕타임스) 2021.11.17.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유럽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일부 지역에서 최근 환자가 급증하면서 병원 응급실이 만석이 되고 경제회복 노력이 지체되는 일이 빚어지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이같은 현상이 유럽의 독일어권 지역에 집중돼 있다면서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 유럽의 코로나 확산이 쉽게 가라앉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 동부 작센주 오레산에 있는 아나베르크-부흐홀츠 마을에서 바를 운영하는 스벤 뮐러는 코로나 백신이 효과도 없고 안전하지도 않으며 돈을 노린 제약회사들과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정치인들이 벌이는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주당국의 규제에 따라 그는 이미 식당, 볼링장, 영화관은 물론 미용실에도 갈 수 없는 상태이며 다음주부터는 모든 상점에 드나들 수 없게 되지만 그의 굳은 결심은 전혀 약해지지 않았다.

그가 속한 작센주는 정치적으로 좌우파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중도성향이며 백신 접종률이 44%에 불과한 지역이다. 이런 지역들이 최근 네번째로 발생한 감염확산을 주도하고 있다.

백신이 가장 효과적인 예방책이라는 과학적 증거가 수없이 많지만 백신을 불신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자 서유럽 정부들은 갈수록 의무화와 촉진, 처벌을 뒤섞은 강압적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프랑스 경우 이런 정책이 성공을 거뒀다.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7월 백신 접종 증명서가 있는 사람만 공공장소 출입을 허용키로 하면서 백신 불신이 특히 높았던 프랑스가 현재는 전세계 최고의 접종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탈리아도 프랑스 뒤를 따랐으며 포퓰리즘 정당이 백신 반대운동을 펼치던 스페인도 백신 반대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각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백신에 대한 강한 불신이 남아 있다. 특히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 독일어권 국가들과 지역들이 유독 불신이 강하다.

이탈리아 북부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에 국경을 마주하는 볼차노지방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주민이 70%를 차지하는데 이탈리아에서 접종률이 가장 낮은 곳이다. 감염이 확산돼 있는 오스트리아와 왕래가 잦은 지역이어서 최근 이곳에서도 감염이 급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스트리아와의 왕래 이외에도 이 지역의 문화적 특성이 감염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동종요법과 자연치료에 대한 선호가 높은 지역이라는 것이다. 동종요법은 약하게 병을 앓게 하면 병이 다시 걸리지 않는다는 원리를 이용한 민간요법이다.

이 지역에서 백신 접종을 주도해온 패트릭 프란초니 의사는 "극우정당과도 관계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연에 대한 믿음이 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알프스 지역의 독일어권 지역 주민들이 맑은 공기와 유기농 및 허브차를 현대 의약품보다 더 신뢰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독일어권 지역은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주민 비율이 서유럽에서 가장 높다. 12세 이상 가운데 네 명 중 한사람이 접종을 하지 않았는데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10명중 한사람꼴이고 포르투갈은 거의 전원이 접종을 마쳤다.

사회학자들은 대안의학의 영향 외에도 지방 분권화의 강력한 전통 때문에 수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불신하는 경향이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또 극우정치세력이 이런 정치 생태적 특성을 악용하기도 한다.

베를린의 음모론 연구단체 CeMAS의 피아 람베르티는 백신 반대론이 최근 수십년 동안 유럽정치를 뒤흔들고 있는 포풀리즘 극우 운동과 연관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급진적인 반백신론자들이 숫자는 많지 않지만 팬데믹 상황에서 그들은 큰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그 결과 유럽 일부 지역에서 백신 접종 여부가 거의 정치적 입장 표명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백신 비접종 주민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에서는 최근 백신반대정당이 만들어졌으며 우파 성향이 강한 북부의 주의회에서 3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도 백신 반대가 심한 지역은 극우파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작센주의 경우 백신 반대 분위기와 극우파 정당 독일 대안(AfD)에 대한 지지가 유독 심하게 겹쳐 있다.

AfD는 전국적으로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정당이지만 정부, 세계화, 대기업, 주류 언론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은 구동독 지역에서는 백신 반대 정서에 딱 들어맞는 세력이다.

아나베르크-부흐홀츠 롤프 슈미트  시장은 "백신 양극화가 심하다"면서 "하루종일 똑같은 소릴 듣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의 진실을 믿으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 신념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 다른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면서 말이다"라고 했다.

본인이 백신을 접종했는지를 밝히길 거부한 슈미트 시장은 "이 마을에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큰 과제"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 마을엔 분열과 불신이 팽배해 있다. 매주 월요일 아침에 백신 반대론자들이 마을 한 복판에서 시위를 벌인다. 이번주에도 50여명이 모여서 "백신이 사람을 죽인다"고 외치면서 베를린 중앙정부를 공산주의 독재보다 더한 독재라고 비난했다. 많은 식당들이 창문에 비접종자출입을 금하는 새 정책이 "정치적 결정"이라고 비난하는 문구를 창문에 붙여두고 있다.

뮐러씨가 운영하는 바도 그중 하나로 바 손님들도 자기처럼 대부분 백신을 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바 창문에 "백신을 (안)접종했든, 검사를 (안)받았든 모든 인간을 환영합니다"라는 독일 헌법을 패러디한 글귀를 붙여두고 있다.

덕분에 뮐러씨는 지역 유명인사가 됐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가고 윗동네 카페들도 그의 문구를 베껴서 쓰고 있다.

지나가던 행인 카린과 한스 슈나이더부부는 백신을 접종했다고 밝히면서 불신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접종하지 않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그런 사람들과 말을 붙이기만 해도 성부터 낸다"고 했다.

독일의 경우 새로 구성되는 연립정부가 음성확인서가 없는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 보다 엄격한 규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오스트리아는 12살 이상 가운데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이 직장, 학교, 상점, 병원 등에 가는 것을 금지하고 경찰이 백신접종 증명서를 불심검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거의 모든 수단을 동원한 상태다.

이에 대해 신생 백신반대 정당인 MFG의 미카엘 브룬너 당수는 "전례없는 헌법 자유 침해"라고 말했다.

작센주에서도 오스트리아 방식을 도입할 지를 검토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다음주 유사한 조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뮐러씨처럼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 대해 배신감을 토로한다. 그는 "백신 의무화는 없을 것이라더니 뒷구멍으로 백신을 강제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슈미트 시장은 정부가 백신 비접종자를 가려내는 행위가 분열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저 나쁜 비접종자들이 감염 증가에 원인"이라고 말하는 꼴이라면서 "잘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슈미트시장은 크리스마스 시장에 모든 사람들이 출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로비중이다. 단 모든 사람이 검사는 받도록 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고 있다.

아나베르크-부흐홀츠의 크리스마스 시장에 들어설 매대들이 이미 절반 정도 만들어진 상태지만 슈미트 시장은 주정부가 시장 개설을 금지할 것을 걱정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막장이다. 우리 동네에선 크리스마스 축제의 의미가 아주 크다. 그건 곧 우리 마을이자 우리 동네다. 그건 우리의 아이덴티티다. 큰 도시는 이런 걸 이해못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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