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우리"와 "상대편"을 나누는 민주주의 정상회의…NYT 칼럼

등록 2021.12.08 10:38:30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부패와 인권탄압 추방 내세우지만 안보가 더 큰 화두

냉전 용어 사용한 편가르기 21세기 현실과 맞지 않아

[워싱턴=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백악관 루스벨트 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화상 정상회담을 하면서 웃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이른바 '도로의 규칙'을 강조했고 시 주석은 상호 존중과 평화 공존 필요성을 역설했다. 2021.11.16.

[워싱턴=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백악관 루스벨트 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화상 정상회담을 하면서 웃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이른바 '도로의 규칙'을 강조했고 시 주석은 상호 존중과 평화 공존 필요성을 역설했다. 2021.11.16.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오는 9~10일 110개국 지도자들이 화상으로 모여 회의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전부터 내건 공약이었다. 전세계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부패와 인권탄압을 문제삼음으로써 민주주의를 확대한다는 것이 명분이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북한과 이란 등 미국과 관계가 원만하지 않는 나라들이 모두 회의 초청대상에서 배제됨으로써 이번 회의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를 둘러싸고 진작부터 국제적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관련 미 뉴욕타임스(NYT)는 6일(현지시간) "바이든의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민주주의 그 이상을 다룬다"는 칼럼을 게재했다. 타이틀은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으나 실제로는 안보가 더 큰 화두라고 지적하는 내용이다. 다음은 칼럼 요약이다.

적대국가가 양자컴퓨터를 사용해 해킹함으로써 뉴욕시의 전기공급망을 몇달 동안 끊어놓는 일을 상상해보라. 사이버범죄자들이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을 아무런 경고없이 무력화하는 일, 중국이 미국 정치인 등 수백만명의 미국인 의료정보나 전화 통화내역을 확보하는 걸 상상해보라.

이런 일들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국가안보 당국자들이 매일 밤 눈부릅뜨고 지켜보는 시나리오들이다. 위싱턴 싱크탱크인 신미국의 미래전쟁 전문가 캔디스 론도는 "이미 사이버공간에서 재능이 뛰어난 소수가 우리의 일상생활이 의존하는 시스템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시대"라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는 그런 위협에 민주주의 동맹국들을 모아 중국, 러시아 및 기타 나라의 악당들로부터 우리 경제와 군대, 기술망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대처해왔다.

바이든 대통령과 유럽 지도자들이 미-EU 무역 및 기술위원회를 설립해 신기술을 개발하는 실무그룹을 창설하고 그 신기술이 악당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한 것이 그런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호주, 인도, 일본의 지도자들과 만나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에 따라 기술을 설계하고 개발하고 통제하며 사용하는 방법을 확립하고 보편적 인권을 존중하도록 한" 이유이자 전세계 100여개 민주국가 지도자들과 함께 9~10일 화상 민주주의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이유다.

이번주 정상회의에서 부패와 인권침해를 추방하자는 고만고만한 목소리들이 쏟아질 것이다. 수단과 미얀마에서 발생한 쿠데타로 민주주의가 후퇴한 것을 비난하는 손가락질과 엘살바도르, 헝가리, 우간다에서 보듯 팬데믹을 정적을 제거하는데 활용한 지도자들에 대한 비난도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의의 핵심은 민주주의를 보호하자는 것만이 아니다. 개방국가들이 미래 기술로 인한 생존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들이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에 대거 투자하고 정보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에 맞서 미국과 동맹국들도 대응책이 필요하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 공간여행과 같은 기술을 통제하는 규칙이 무엇인가. 이런 기술들이 우리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지 않도로 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등등.

바이든 정부는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과 기술, 경제, 군사 부문에서 공동전선을 형성해 기존의 지정학적 대립과는 다른 기술경쟁의 시대에 대비하려 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바이든 정부가 붙잡는 실마리이며 우리 팀에 누가 들어오느냐를 가르는 기준이다.

브루킹스연구소 무역분야 선임연구원 조슈아 멜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바이든 정부의 세계관을 구체화하는 운영시스템"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이번 회의 개최를 약속하면서 냉전시대 용어를 사용해 "자유세계"가 파시즘과 권위주의에 맞서 뭉쳐야한다고 강조했다.

냉전시대 용어로 과제를 규정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우선 미국을 포함해 '민주주의 팀'에 속한 많은 나라들이 최근 몇년새 민주주의가 후퇴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구상 어느 곳도 민주주의 규범이 퇴색하지 않은 곳이 없다.

폴란드 집권당은 사법제도의 독립성을 훼손한 일로 유럽연합(EU)와 논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 최대 민주국가인 인도에 대해 프리덤하우스는 정적의 목소리를 차단하는 한편 힌두 민족주의가 득세하면서 이슬람 주민들을 공격하는 일 등을 이유로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국가로 분류했다. 필리핀에서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부패와 허위정보를 비판하는 언론인을 탄압하고 있다. 인도, 폴란드, 필리핀 모두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주의 회의에 참가할 예정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우리에겐 그들이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것과 모든 국가들이 "자유로운"과 "자유롭지 않은" 상태의 중간에 자리한다는 것을 의식하면 "우리"와 "상대편"을 구분하는 기준이 애매해진다. 워싱턴 주재 러시아 및 중국대사가 이례적으로 기고문을 통해 미국은 어떤 나라가 민주주의고 어떤 나라가 아닌지를 가르는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 나라도 민주국가로 간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중국 사람들도 공산당에 가입해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

친강 중국대사는 "중국은 광범위하고 완전한 사회민주주의"라고 강조했고 아나톨리 안토노프 러시아대사는 "러시아는 국민들의 뜻에 따라 러시아의 현실에 맞는 체제이며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들의 주장이 그다지 믿기진 않지만 옳은 대목도 있다. 세계를 "우리"와 "상대편"으로 나누면 자유진영이든 아니든 함께 맞닥뜨린 기후변화, 팬데믹, 대량 난민과 같은 실존적 과제를 해결하기가 힘들어진다.

기술과 표현의 자유, 정보를 강력히 통제하는 권위주의 국가와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개방사회로 세상이 나뉜다면 기술 그 자체가 둘로 쪼개진다. 110볼트를 쓰는 나라와 220볼트를 쓰는 나라로 세계가 나뉜 것처럼 신기술이 분화해 미래의 경계선이 어찌될 지 예측하기가 힘들어진다. 중국 장비로 5G 인터넷 기술을 도입한 국가와 프라이버시와 데이터를 보호하는 미국장비 사용국가로 나뉘는 것처럼 말이다.

세계가 중국을 추종하는 국가와 미국과 유럽을 추종하는 국가들로 나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매트 포틴저 전 국가안전부보좌관은 "철의 장막처럼 분명하게 나뉘지는 않을 것이며 그런 걸 요구해서도 안된다"고 말했다. 문제가 되는 특정 기술을 두고 서로 중첩되는 여러 연합이 결성될 것이고 많은 나라들이 중국 및 미국과 동시에 협력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경제가 깊이 연관돼 있는 현실과 달리 전세계가 분열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생각이 횡행한다. 미국이 진 빚의 3.5%를 가지고 있는 국가를 "억지"할 수가 있는가?  페니실린부터 아이폰까지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공급하는 나라를 말이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를 대비시키는 프레임의 마지막 문제점은 중국 군부에 기술을 판매하고 있는 미국 기술기업들의 역할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론도 연구원은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념이 않고 있는 문제"라면서 "국가가 핵심 플레이어라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는데 오늘날 21세기 세계질서에서 국가는 더이상 가장 중요하거나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부 기술기업들은 정부 못지 않게 막강해지고 있다. 권위주의든 민주주의든 많은 나라들이 거대 기술기업을 통제하려고 하지만 국가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그들에게 갈수록 더 의존하고 있다.

한마디로 간단치 않은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정의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기술적 지식이나 어휘를 모른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선동용어일 뿐이다.

론도 연구원은 "바이든 대통령도 이전 대통령과 다르지 않다. 그는 자신의 외교정책에 맞는 원칙이 필요해 (민주주의)를 선택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