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길 무사 통과' 27년 만의 의대증원 성큼…갈등 장기화는 불가피
서울고등법원,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기각
1998년來 첫 의대 증원…의약분업 때 351명↓
의료계 재항고…일주일 휴진 등 투쟁수위 올려
전공의 병원 복귀 희박…비상진료 재정비 필요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서울 시내의 대학병원에서 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05.16.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 박영주 구무서 기자 = 법원이 의료계의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27년 만에 추진되는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의사단체는 즉각 재항고해서 대법원 판단까지 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 장기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부장판사 구회근)는 16일 전공의와 수험생 등이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를 상대로 제기한 의대 증원 취소소송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심과 마찬가지로 전공의·수험생, 교수가 의대 증원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어 당사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다만 의대 재학생의 경우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이 있다며 '신청인 적격'은 인정했지만, 집행정지를 인용하면 공공복리에 대한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보고 기각 결정을 내렸다.
특히 재판부는 필수의료·지역의료가 상당히 어렵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의대 정원 증원 필요성 자체는 부정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했다. 또 일부 미비하거나 부적절한 상황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현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해 일정 수준의 연구와 조사, 논의를 지속 왔고 만일 증원 규모가 다소 과하다면 향후 얼마든지 조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도 종합적으로 반영했다.
정부가 제출한 '2000명 증원'의 근거도 일정 수준 수긍하며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의대 증원을 놓고 의사단체와 의대생 등이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등을 상대로 집행정지나 가처분 신청을 낸 건 20건에 육박하지만, 아직 법원이 의료계 손을 들어준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서울 한 대학병원 진료실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4.05.10. [email protected]
이번 결정에 따라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의대 정원은 지난 2006년 의약분업 당시 의료계 요구를 수용해 정원을 351명 줄인 이후 18년째 3058명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1998년 이후 27년 만에 늘어나게 된다.
정부는 지난 2월6일 2035년까지 1만5000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보고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의 연구 등이 공통으로 2035년 의사 수 1만명 부족을 언급한 점을 근거로 삼았다.
정부의 의대 증원에는 힘이 실리게 됐지만, 의료계 반발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의료계는 고법 결정에 재항고해서 대법 판단을 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정부의 정책에 반발해 투쟁 수위도 높일 것을 예고했다.
서울대와 연세대 등 20여개 의대가 소속된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지난 3일 "의대 증원 절차를 진행해 2025년 정원을 확정할 경우 일주일간의 집단 휴진 등을 포함한 다양한 행동 방법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공의들이 병원에 복귀할 가능성도 더욱 희박해졌다. 전공의 대다수는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온 만큼 병원으로 돌아올 확률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문의 시험을 앞둔 고연차 전공의는 일부 병원에 복귀할 가능성은 조심스레 제기된다. 지난 2월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오는 20일 전후로 복귀하지 않으면 전문의 수련 규정에 따라 수련을 받아야 하는 기간이 3개월을 초과해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1년 늦춰지게 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대생들은 인터넷 강의 등 (대학들의) 비상 운영으로 아직은 (복귀) 시간이 좀 남았지만 전공의가 문제"라며 "이번 달까지 안 돌아오면 법적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수련이 1년 늦어지면 사회가 받는 손해보다 본인들의 손해가 더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 역시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 장기화에 대비해 비상의료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송기민 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은 "다 같이 불편을 참고 이겨내서 의료체계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며 "수가를 올려주고 의대 증원만 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을 해야 한다. 당분간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국민 설득 작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필수 의료 등 공공병원 공급에 대한 명확한 계획을 내놔야 한다"며 "대형 병원들은 고도 의료와 중환자 등을 진료하면 수익이 줄더라도 정부가 메꿔주고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 병원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개혁안을 내놔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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