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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도발적이었던 네온 작업, 팔기까지 20년 기다렸죠"

등록 2017.05.29 16: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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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갤러리 현대, 프랑수아모를레 개인전.

【서울=뉴시스】갤러리 현대, 프랑수아모를레 개인전.

■ 20세기 기하학적 추상미술 대가 프랑수아모를레
갤러리현대, 작가 사후 1주기 추모전…아시아 처음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1967년에 '무작위적-시적-기하학적으로 프로그램된 네온(Néons avec programmationaléatoire-poétique-géometrique)'라는 작업을 하셨죠. 왜 이 작업에서 NON, NUL, CON, CUL (아니오, 무효, 여자 성기, 항문) 이렇게 네 단어를 쓰기로 한 건가요?

 ▲ "이 작업은 대각선이 가로지르는 세 개의 정사각형으로 이뤄졌습니다. 각각의 사각형은 네 개의 변에 각각 네온 튜브를 가지고 있고, 대각선으로 두 개의 튜브가 있습니다. 이 네온 튜브들은 교대로 켜지고 꺼지는 리듬으로 그룹을 이룹니다. 이를 통해 가능한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 중에 일부는 CLNOUXZ의 알파벳을 만들 수 있고요. 제가 욕설과 도발을 좋아하는 터라, 저의 거친 언어를 제 엄격한 기하학에 연결시켜 사람들이 미소를 짓게 만들 기회였던 것이죠."

- 작업으로 만든 체계들, 즉 ‘병치’, ‘중첩’, ‘우연’, ‘간섭’, ‘분열’에 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체계들의 의의는 무엇인가요?

▲ "저는 작가의 작업에서 환상을 걷어내고 제 작업을 이성적으로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1974년에는 제 작업의 착상 과정을 평범하고 사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런 분류를 발표했어요. 복잡한 과정이었는데요, 만약에 계속해서 이 분류를 추구했다면 호르헤루이스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가 이야기했던 동물 분류법과 비슷해졌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서울=뉴시스】갤러리 현대, 프랑수아모를레 개인전, 2층 전시장 전경

【서울=뉴시스】갤러리 현대, 프랑수아모를레 개인전, 2층 전시장 전경

-왜 미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체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겁니까?

▲ "스스로 항상 제 작업으로부터 거리 두기를 원하기 때문이죠. 1950년대부터, 작업을 착상할 때 감수성의 흔적이 생겨나는 것을 없애고 주관적인 판단을 가능한 줄이고자 줄곧 노력해왔습니다. 우연과 연관되는 저의 체계들이 제 작업의 생산자인 셈이고, 그 결과물이 탁월하다고 보든 추하다고 보든 저는 거기에 책임이 없습니다.

- (작업에 있어) 우연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 "체계들이 게임의 법칙을 제공하고, 그런 뒤에는 숫자나 글자로부터 우연이 개입해 제가 각기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정해주는 것이죠. 두 사람이 격자로 이뤄진 칸 안에서 숫자나 글자를 뽑아서 배의 위치를 정하며 진행하는 “배틀십”이라는 테이블 게임과 제가 만든 체계를 빗대어 볼 수 있겠습니다.

-작업을 선보인 지 70년 가량 되었고, 네온 작업들은 1963년부터 존재해왔습니다. 당시에 네온이 나타냈던 것은 무엇이며, 오늘날 이 작업들이 대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서울=뉴시스】갤러리 현대, 프랑수아모를레 개인전

【서울=뉴시스】갤러리 현대, 프랑수아모를레 개인전

 ▲ "1963년에는 제 네온 작업들이 도발적이고, 저속하고, 팔 수 없는 것이었지요 (네온 작업을 팔기까지 20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오늘날 이 작업들은 멋지고, 값비싸고, 최신 유행에 속하죠.

-실현했거나 그렇지 못한 공공 커미션 작업이 있나요?

▲ "1941년 이래 제가 진행한 기념비적 프로젝트 140여 개 가량이 건축물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133개를 실은 카탈로그 레조네를 펴낸 2012년 이후로 여섯 개의 작업을 더 구현했고, 지금은 2016년 완공을 예상하는 작업 세 개가 더 있습니다). 실현하지 못한 프로젝트가 몇 개인지 세고 있지는 않고, 거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철거된 작업도 많은데 그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노쇠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라지는 편이 더 낫다고 보니까요."

 2015년 12월, 프랑스 프랑수아 모를레(1926~2016)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인’에 오른 서페타인 갤러리 디렉터 한스울리히 오브리스트와 인터뷰한 내용이다.(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프랑수아 모를레의 작품 이해를 돕기위해 발췌했다.)

 지난 2011년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연 이후 한국에서 두번째, 아시아에서 사후 첫번째로 프랑수아 모를레 추모전이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뉴시스】 〈전화번호부에서 찾은 홀수와 짝수에 따라 무작위적으로 배열된 40,000개의 정사각형들〉, 1960 캔버스에 유채, 100x100cm Random distribution of 40.000 squares using the odd and even numbers of a telephone directory, 1960 Oil on canvas, 100x100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 Studio Morellet, Cholet

【서울=뉴시스】 〈전화번호부에서 찾은 홀수와 짝수에 따라 무작위적으로 배열된 40,000개의 정사각형들〉, 1960 캔버스에 유채, 100x100cm Random distribution of 40.000 squares using the odd and even numbers of a telephone directory, 1960 Oil on canvas, 100x100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 Studio Morellet, Cholet

 1950년대 초반부터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탐구해온 프랑수아 모를레는 20세기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갤러리현대가 고인의 1주기를 추모하는 이번 전시에는 프랑수아 모를레가 일생 동안 천착한 다양한 주제와 기법의 작품들을 만나볼수 있다.

 시각예술연구회(GRAV·1960년 르 파르크Julio Le Parc의 제창으로 결성되고 1968년 해산된 파리에 머무르던 키네틱 아트 작가들의 그룹) 해체 이후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한 1969년의 실크스크린 작품부터 그가 영면에 들기 전까지 제작한 2016년 작품까지 총 23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의 중심축은 프랑수아 모를레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한 '파이(π)' 혹은 '파이(π)의 소수점'을 활용한 작품들이다.

 소수점 아래 어느 자리에서도 끝나지 않고, 순환마디도 없이 무한히 계속되는 초월수이자 무리수인 파이(π)는 수학뿐만 아니라 기하학, 물리학 등 다양한 학문에서 이용되고 탐구되는 대상이다. 프랑수아 모를레는 이러한 파이(π)를 작품의 기본적인 조형원리로 이용했다.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20세기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대가, 프랑수아모를레(1926-2016)의 1추기 추모전이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20세기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대가, 프랑수아모를레(1926-2016)의 1추기 추모전이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다.

 무작위성 혹은 우연한 선택은 프랑수아모를레의 작업 세계를 함축하는 가장 대표적인 단어 중 하나이다. 1950년대 초반부터 작가적 주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써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구성과 조합을 통한 추상 작품 활동에 천착한 프랑수아모를레는 1960년 1x1m 크기에 불과한, 하지만 4만개의 정사각형을 포함한 캔버스 작품을 선보였다.

 전시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전시장 2층에서 선보이는 '3D 연작'이다. 프랑수아모를레가 2014년부터 선보이기 시작한 '3D'연작은 서로 다른 각도로 배열된 3개의 줄표(dash)를 이용하여 마치 입체처럼 보여지는 평면의 작품들로, 기하학적 추상미술과 키네틱 아트, 옵아트, 미니멀리즘 등, 모를레의 작업 세계 전반을 집대성한 연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전시는 모를레의 유족과 함께 마련됐다. 갤러리현대는 2011년 프랑수아모를레의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이후 곧바로 두 번째 개인전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 프랑스 남서부 도시인 숄레(Cholet)에 위치한 프랑수아모를레의스튜디오를 지속적으로 방문하며, 고령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열정과 유머를 잃지 않은 작가와 그의 두 번째 개인전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다. 전시를 위한 대가의 신작뿐만 아니라, 갤러리현대의 전시 공간만을 위한 ‘장소특정적’접착 테이프(adhesive tape)작품의 설치에 대해서도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고, 화랑 외부에 설치가 가능한 네온(neon)을 이용한 작품에 대해서까지 논의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2016년 5월 10일, 갑작스럽게 영면에 들었다.

 갤러리현대 기획팀 이원준 과장은 "이때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최종적인 단계에 이르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작소 특정적 설치와 화랑 외부 네온 설치 작품 등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을 뒤로한 채 모를레의 유족과 전시의 나머지 부분들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전시는 7월 9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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