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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박태환 첫 세계 1위 만든 박석기 감독 "그땐 날아갈 것 같았죠"

등록 2017.07.21 14: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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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석기 감독(왼쪽)과 박태환.(사진=뉴시스DB)

【서울=뉴시스】박석기 감독(왼쪽)과 박태환.(사진=뉴시스DB)

박태환 "기분좋은 돌연변이"···도쿄 올림픽 가능할 것
"제발 오랜 기간 선수 생활을 해줬으면···"

【서울=뉴시스】권혁진 기자 = 2007년 3월25일. 18세 고교생 박태환이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제12회 국제수영연맹(FINA)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을 위해 출발대에 섰다.

 350m 지점까지 4위를 달리던 박태환은 마지막 50m에서 무려 3명을 따돌리고 가장 먼저 터치 패드를 찍었다. 한국 수영 역사상 최초의 세계선수권 우승자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 박태환을 지도했던 박석기(65) 감독은 영광의 순간을 마치 어제처럼 또렷이 기억했다. 지난 20일 서울 시내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은 "우승이 확정된 뒤 두 손을 들었다. 그때는 정말 날아갈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예선 지나고 '해볼 만하다'

 박태환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수영은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 몇 명의 아시아 챔피언을 탄생시키기도 했지만 세계무대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박태환은 '기분 좋은 돌연변이'였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3관왕으로 예열을 마치고, 멜버른에서 기어코 대형 사고를 쳤다.

 박 감독은 "예선이 끝난 뒤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상대가 힘을 숨겼겠지만 우리 역시 85~90% 정도로만 했다. 결승에서도 리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결승을 위해 경기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그 기대는 조금씩 확신으로 바뀌었다. 아직 사춘기 소년의 티를 떨쳐내지 못한 박태환은 나이에 맞지 않게 무척 침착했다.

 박 감독은 "태환이에게 '오늘이 내 결혼기념일이다'고 하니 웃으면서 '아. 그럼 오늘 꼭 메달을 따야겠네요'라더라. 난 '그럼 좋지'라고 답했다.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고 떠올렸다.

 350m 구간부터 시작된 스퍼트는 글자 그대로 훈련의 결과물이었다. 박 감독은 "최근에 유행하는 울트라 쇼트 레이스 페이스 트레이닝(USRPS)의 효과를 봤다. 호주의 한 박사가 자국 선수들이 미국 선수들의 많은 연습량을 무리하게 따라하는 것을 보고 고안한 훈련법이었다. 매주 토요일에는 스피드 훈련 하나만 했는데 태환이의 몸이 이를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부연했다.

 ▲펠프스 코치도 반한 박태환

 박 감독이 처음 박태환과 연을 맺은 것은 멜버른 대회가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2006년 12월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故 김봉조 감독이 '박태환을 맡아 달라'고 제안했고, 박 감독이 이를 수락했다. 박태환의 아버지인 박인호씨도 박 감독의 구상을 듣고는 'OK' 사인을 줬다.

 예나 지금이나 3개월이라는 시간은 세계선수권을 준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박 감독은 과감히 영법에 손을 대기로 결심했다. 조금만 교정해주면 기록이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태환도 동의했다. 그만큼 둘은 서로를 신뢰했다.

 박 감독은 "그때 최고의 선수인 그랜드 해켓(호주)의 스트로크 수는 28~32개(50m 기준)였는데 태환이는 38~40개나 됐다. 스트로크 수가 많으면 체력 소모가 심할 수밖에 없다. 한 번에 밀고 가는 길이를 늘려 놓고, 그 속도에 적응을 시켰다. 강훈련보다는 어떻게 하면 수영을 '길게 하느냐'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3월 초에는 스트로크 수가 32개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대다수 수영 전문가들은 박태환의 기술을 두고 천부적인 수준이라고 칭한다. 박 감독은 물론 마이클 펠프스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밥 바우만(미국) 코치도 박태환에게 잔뜩 매료된 적이 있었다.

【서울=뉴시스】박석기 감독 시절 박태환 전담팀.(사진=박석기 감독 제공)

【서울=뉴시스】박석기 감독 시절 박태환 전담팀.(사진=박석기 감독 제공)

"수영의 시작은 물을 잡아 몸을 띄우는 '캐치'"라는 박 감독은 바우만 코치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했다. 바우만 코치가 미국 코치들을 대상으로 자국에서 세미나를 열었을 때였다. 그때 '캐치'를 강조하면서 틀어준 영상이 바로 박태환의 수영 장면이었다.

 바우만 코치가 다른 이들에게 '이런 캐치를 구사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콕 집어 강조했다는 것이 박 감독의 설명이다. 박 감독은 "태환이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부력과 기술 센스가 굉장히 뛰어나다. 쑨양과 자주 비교가 되지만 태환이의 기술은 거의 완벽하다"고 평가했다.

 ▲"내가 아는 태환이의 목표는 우승"

 박태환은 2012년 런던올림픽이 끝난 뒤 쓴 자서전 '프리스타일 히어로'에서 박 감독에 대해 언급했다. 박 감독과 함께 한 시간은 1년에 불과했지만 큰 울림을 받은 듯 했다.

  "전담팀의 박석기 감독님은 외국 코치들처럼 늘 자율성을 강조했다. "태환아, 지금 하는 훈련은 네 몸이 기억할 수 있을 만큼 네가 해야 돼. 머리로만 기억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중략) 그래서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도 위기를 넘겼던 것 같다. 머리가 멍해지는 순간에도 몸이 기억한 레이스가 추락의 위기를 막았다. 내 몸이 기억할 때까지 주도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한국 대표팀에도 자리 잡기를 바란다."

 박 감독은 "지도자와 선수 사이에 인간적인 신뢰가 쌓여야 한다.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분위기에서 빨리 벗어나고, 편안한 마음으로 웃으면서 훈련 내용을 이야기 할 수 있을 때 우리 수영이 세계 수영에 가까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환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진행 중인 제17회 FINA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다시 한 번 메달에 도전한다. 자유형 400m는 23일 진행된다. 옛 스승은 가끔 안부를 주고받는 제자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다.

 박 감독은 "내가 아는 태환이는 우승을 목표로 할 것이다. 그럴만한 충분한 힘과 기술도 있다. 페이스도 좋은 것 같다. 좋은 레이스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응원했다.

 박태환은 내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까지 선수 생활을 지속할 뜻을 밝히면서 그 이후의 일은 아직 구상하지 않았다고 했다. 박 감독은 박태환에게 한 가지 당부의 말을 남겼다.

 "태환이는 우리나라가 꼭 필요로 하는 선수입니다. 메달이 문제가 아닙니다.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에게는 엄청난 힘이 됩니다. 부침이 있었지만 경기력을 이내 회복했습니다. 태환이는 야망이 다릅니다. 도쿄올림픽까지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오랜 기간 선수 생활을 해줬으면 합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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