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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총궐기 '불법' 예단한 朴정권…과잉 대응 나선 경찰

등록 2018.08.21 15:3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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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인권침해진상조사위 "강경 진압 정부 기조 있었다"

청와대 비서실 지시, 공안대책협의회 등에서 '불법·엄단'

"불법집회 구도 형성…집회 참가자 진압 대상으로 삼아"

"경찰, 집회 관리 부담…청와대 경호와 정권 비호 자처"

"지휘부서 '불법' 인식 조직 내 확산…단호 대처 주요인"

【서울=뉴시스】'경찰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

【서울=뉴시스】'경찰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경찰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지난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당시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사건이 과잉진압에 비롯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백씨 사망 694일 만이며, 당시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재판 1심 선고 이후 76일 만이다.

 21일 조사위에서 발표한 백씨 사건 조사 결과를 보면 경찰은 민중총궐기를 '불법'으로 상정한 상황에서 집회 대응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박근혜 정권 청와대에서 민중총궐기를 '비판 세력, 범좌파 세력 총집결'로 정의한 이후 '불법집회'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인식 아래 치안 비상사태에 해당하는 대응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초 경찰은 백씨가 물대포에 맞아 입원해 있는 동안 직사 살수에 대한 명확한 언명을 하지 않으면서 진압이 정당했다는 방향의 입장을 고수했다. 또 백씨 사망 이후에는 경찰이 아닌 다른 집회 참가자에 의해 백씨가 사망했을 수 있다는 의혹의 진위를 파악해야 한다면서 유족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검영장을 발부 받아 집행을 강행하려 했다.

 또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정권이 교체된 뒤 백씨 사건에 대한 비판 여론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하자, 진압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현장에서 지시가 원활하지 못했다거나 살수차 조작 요원이 미숙한 상태에서 투입됐다는 등 사건의 책임이 경찰관 개인 차원에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조사위는 백씨 사건이 2015년 민중총궐기를 처음부터 '불법'으로 바라봤던 정부의 시선 아래 집회 참가자들을 '진압할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는 분위기가 대응 현장에서 형성, 이로 말미암아 직사살수 등 과잉진압이 일어났을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조사위는 먼저 민중총궐기에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청와대 차원의 지침이 있었으며, 5개 부처 장관 공동담화문과 유관기관 공안대책협의회를 통해 민중총궐기를 '불법 폭력 집회'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조성됐음을 제시했다.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생명과 평화의 일꾼 고(故) 백남기 농민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등이 6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노제를 치르고 있는 가운데, 추모객이 금남로 임시분향소에 헌화하고 있다. 2016.11.06.  sdhdream@newsis.com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생명과 평화의 일꾼 고(故) 백남기 농민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등이 6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노제를 치르고 있는 가운데, 추모객이 금남로 임시분향소에 헌화하고 있다. 2016.11.06.  [email protected]

조사위에 따르면 2015년 11월9일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시사항으로 '11월14일 비판세력, 범좌파 세력 등이 총집결하는 민중총궐기 집회 규모가 의외로 커질 수 있으므로 보다 강력하고 철저하게 대비책을 강구하고, 불법에 대해서는 엄정 대응토록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병기 전 국가정보원장이었다.

 또 11월15일 청와대 비서실장 지시사항에는 '그동안 정부의 대응이 너무 방어적이었던 것 같은데, 집회 체포자를 포함한 범법행위자를 철저히 색출하여 엄단하고 손배 추진은 물론 시위문화를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같은 해 11월13일 5개부처 장관 공동담화문에는 '집회에 대한 우려와 불법집회에 대한 엄중처벌 방침'이, 검찰과 경찰 등이 참여한 공안대책협의회는 '불법폭력집회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 '끝까지 추적, 처벌'이라는 내용이 들어갔다.

 조사위는 "이러한 강경기조는 집회 참가자들을 반정부·비판세력으로 규정하고 해당 집회가 곧 불법집회라는 구도를 형성했다"라면서 "집회 시위에 대한 보장과 예방적 차원의 대응이 아니라 집회 개최 이전부터 참가자들을 이미 잠재적 범법자로 간주하고 진압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조사위는 이 같은 정부 기조 속에서 경찰이 집회 관리에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 대통령 또는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집회 또는 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스스로를 청와대 경호와 정권을 비호하는 역할을 자처했던 것도 이러한 부담감이 작용한 결과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고 백남기 농민 부검영장 재집행에 나선 홍완선 종로경찰서장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다. 2016.10.25  photo1006@newsis.com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고 백남기 농민 부검영장 재집행에 나선 홍완선 종로경찰서장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다. 2016.10.25 [email protected]

조사위는 당시 경찰 지휘부에서 박근혜 정권의 기조 아래 민중총궐기가 불법이라는 인식을 조직 내부에 확산한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경찰이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갑호 비상 예고와 발령을 통해 집회를 '치안상 비상사태'로 인식하게 했으며, 집회가 대규모 불법 집회로 번질 가능성이 크거나 애초에 불법집회라는 선입견이 조직원 사이에 형성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일례로 조사위는 당시 경찰은 가용 경력과 장비를 총동원해서 청와대 방향 진출 차단을 위한 차벽, 각종 장비를 통한 1차 차단선 절대방어에 최우선 목표를 설정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어 "경찰청장이 직접 청와대로의 행진에 대비해 1차 차단선을 2중 차벽으로 설치하도록 주문하고, 구체적인 위치까지 지정해 지시사항을 하달함으로써 이 지역에 대한 진압을 철저한 봉쇄작전으로 진행할 것을 주문했다"라고 설명했다.

 조사위는 "경찰 지휘부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의 자유와 제한의 취지를 사전에 숙지하고 이에 부합한 대책을 수립했다고 인정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라고 지적했으며 "이 같은 대책이 현장 경찰관들에게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단호한 대처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도록 만드는 주요 요인이 됐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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