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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인터뷰]가수 장사익, 차라리 시인이어라 차라리 도인이어라

등록 2018.11.02 14: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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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70세를 맞아 ‘자화상 七’ 공연을 여는 소리꾼 장사익이 25일 오후 서울 홍지동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70세를 맞아 ‘자화상 七’ 공연을 여는 소리꾼 장사익이 25일 오후 서울 홍지동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목소리가 현명하게 나이를 먹는다, 어떤 것일까. 소리꾼 장사익(69)의 목소리가 보기다.

예전에 그는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이라고 부르면, 찔레꽃 향기가 코끝을 찌른 뒤 슬픔이 가슴팍을 후벼 파고 들어와 "목 놓아 울었지"라며 엉엉거렸다.

직사포 같은 목소리였다. 요즘 장사익의 목소리는 곡사포 같다. 천천히 포물선을 그리는데 고막을 두드리는 순간, 목과 마음에 묵직한 것이 걸려 있다. 감동은 매한가지다.  

장사익은 "나이에 맞게 힘을 빼고, 기교도 빼고 본질만 갖고 노래하려고 하죠"라며 씨익 웃었다. 나이를 학년에 비유하는 그다. 올해 일흔살이 된 장사익은 7학년이다.

"생체 학년은 몸 관리만 잘하면 9학년까지 가능할 것 같은데, 노래 학년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플라시도 도밍고는 바리톤으로 시작했다, 테너를 했고 다시 음을 낮춰서 바리톤으로 돌아왔죠. 목소리에는 한계가 있어요. 저 역시 지금은 25년 전처럼 높은 음으로 '찔레꽃'을 부를 수 없어요. 마음은 3, 4학년이지만 성음이 그것을 못 쫓아가요. 몸에 맞게 현명하게 노래해야죠. 엄마들이 노래할 때는 음의 높낮이가 없잖아요. 다 압축해서 부르는 거죠."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70세를 맞아 ‘자화상 七’ 공연을 여는 소리꾼 장사익이 25일 오후 서울 홍지동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70세를 맞아 ‘자화상 七’ 공연을 여는 소리꾼 장사익이 25일 오후 서울 홍지동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장사익이 늦깎이 가수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1995년 우리나이로 마흔 여섯 살이 되던 해 데뷔 앨범 '하늘 가는 길'을 냈다. '가장 한국적인 소리'라는 평을 받는 그는 음성이 잘 삭은 상태에서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15개 직업을 전전했다. 보험회사 직원을 시작으로 전자회사, 가구점 등을 거쳐 앨범을 내기 직전까지 매제의 카센터에서 일했다. 그의 노래, 목소리에서 삶이 묻어나는 이유다. 

그럼에도 장사익은 앞만 보고 달려 온 인생에서 잠시 뒤돌아본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고 한다. 이런 그가 24, 2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브랜드 공연 '장사익 소리판'의 타이틀로 '자화상 칠(七)'을 내걸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70세를 맞아 ‘자화상 七’ 공연을 여는 소리꾼 장사익이 25일 오후 서울 홍지동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70세를 맞아 ‘자화상 七’ 공연을 여는 소리꾼 장사익이 25일 오후 서울 홍지동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곁에 두고 읽는 시집 중 하나인 윤동주(1917~1945)의 시 '자화상'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윤동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장사익은 6학년, 60대까지 몰랐던 부분이 있었다. "인생 나이가 7학년이 되니 시간에 대해서 진정으로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사람 수명을 아흔으로 생각하면, 종반에 접어든 거죠. 9라는 숫자는 스포츠와도 연관이 깊잖아요. 축구는 90분까지 하고, 야구는 9회가 있고. 막판에 스퍼트를 하는 축구, 야구처럼 제 인생도 이제 종반에 접어든 것인데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호흡을 잠시 고르고 어디까지 왔고 어디 서 있고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죠. 껄껄."

어느 순간 자기 모습이 궁금해졌다. "제 7학년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요. 매일 거울을 보면서 제 모습을 그려보고 있죠.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저를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번 공연도 그 중 하나이지요."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70세를 맞아 ‘자화상 七’ 공연을 여는 소리꾼 장사익이 25일 오후 서울 인왕산을 마주하고 있는 홍지동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70세를 맞아 ‘자화상 七’ 공연을 여는 소리꾼 장사익이 25일 오후 서울 인왕산을 마주하고 있는 홍지동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장사익은 11월에 9집도 낸다. '자화상'으로 만든 노래와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 곽재구의 시 '꽃길' 등을 노래로 옮겼다.

시인 김춘수의 '서풍부' 구절을 따와 만든 '꽃인 듯 눈물인 듯'을 비롯, 장사익은 이미 많은 시어들을 노래로 풀어냈다. "공부가 짧아서 가사가 잘 안 써져요. 대신에 많은 분들이 제 마음과 똑같은 시를 써 놓았죠. 하늘이 파란데 누가 빨갛다고 표현했을 때, 그것이 제 마음에 안기면 제가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시에는 인생과 철학이 자연스럽게 함축돼 있죠."

시어는 풍부한 정서가 담긴 노래로 재탄생한다. 장사익의 목소리가 가진 힘에 빚진 부분도 있다. 그의 목소리는 공연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70세를 맞아 ‘자화상 七’ 공연을 여는 소리꾼 장사익이 25일 오후 서울 홍지동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중 붓글씨를 쓰고 있다.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70세를 맞아 ‘자화상 七’ 공연을 여는 소리꾼 장사익이 25일 오후 서울 홍지동 자택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중 붓글씨를 쓰고 있다. [email protected]

전기수(傳奇叟)의 이야기 또는 소리꾼의 판소리를 연상케 하는 그의 노래와 몸짓은 자체로 팝업책 같다. 고려장 설화가 바탕인 시인 김형영의 시에 멜로디를 붙인 ‘꽃구경’을 부를 때 어머니와 아들은 물론 길까지 눈앞에 현현하는 듯하다. 일종의 현대민요라고나 할까. 그는 판소리, 가요, 클래식, 재즈 등 온갖 장르로부터 매력을 빌려온다며 웃었다.

깊은 곳에서 한을 끌어내 슬픔을 달래주는, 장사익식 '긍정의 힘'은 여전하다. 2015년 성대에 이상을 발견하고 2016년 2월 혹을 제거하기 위해 생명과도 같은 목에 칼을 댔지만 "발견할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안도의 순간이었다"고 했다. 덕분에 장사익의 성대는 여전히 쩌렁쩌렁하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때 부른 애국가의 한음 한음은 겨울의 칼바람을 뚫고 듣는 이의 고막과 마음을 두드렸다.

어느덧 장사익의 서울 세검정 자택 2층 창밖으로 보이는 인왕산이 붉게 물들어 있다. "자연처럼 사람들도 항상 파란 것은 아니죠. 때가 되면 다 빨갛게 되고, 이후에는 쭉정이도 되죠. 그게 자연인 것이지요."

장사익식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이어진다. 에너지는 발생하거나 소멸하는 일 없이 서로 형태만 바뀌고 총량은 일정하다. 자연을 닮은 그의 노래도 그렇다. 7학년이 됐어도 장사익이 여전히 전성기인 까닭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은 오랜만이에요. 이번 여름이 참 더웠잖아요. 그래서 가능한 거예요. 이 세상은 평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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