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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인종 위에 사람, 데이비드 미첼 '야코프의천번의가을'

등록 2018.11.21 0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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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인종 위에 사람, 데이비드 미첼 '야코프의천번의가을'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그녀와 같은 계급의 여자들은 데지마의 처가 되지 않는다는 거야. 그녀가 설령 자네의 애정을 받아준들, 붉은 머리 악마가 건드린 후에 제대로 시집을 갈 수 있겠나? 자네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녀를 피하는 것이 자네의 진심을 나타내는 길일세."

영국 작가 데이비드 미첼(49)의 장편소설 '야코프의 천 번의 가을'이 번역·출간됐다. 2010년 뉴욕타임스 신문과 주간 '타임'이 올해의책으로 선정됐고, 2011년 커먼웰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켄트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미첼은 일본으로 가 8년간 영어를 가르쳤다. 1994년 나가사키 여행 중 전차 정류장을 잘못 내리는 바람에 우연히 데지마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때부터 미첼은 그 장소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구상하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나 한 편의 소설로 재탄생시켰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사무원 '야코프 더주트'이 주인공이다. 1799년 야코프는 일본 나가사키의 인공섬 '데지마'에 도착한다. 데지마는 일본이 쇄국정책을 고수한 시기에 서양과의 교류를 유일하게 허락한 곳이다.

네덜란드인은 오직 데지마에만 머물 수 있을뿐 본토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기독교 관련 서적이나 물건도 절대 소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데지마에 막 도착한 야코프의 짐 속에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시편이 들어 있었다. 일본인 통역관 오가와가 이를 눈감아주면서 두 사람은 우정을 쌓기 시작한다.

야코프는 몇 년 후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여인 아나와 결혼하겠다는 부푼 꿈을 꾼다. 새로 부임한 상관장의 명령으로 그간의 부정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야코프는 모든 직원의 공공의 적이 된다.

어느 날 야코프는 일본인 산파 오리토와 마주친다. 오리토는 영리하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나가사키 부교의 아들을 위험한 출산에서 살려낸 덕분에 데지마에서 의술을 배울 수 있게 됐다.

야코프는 지적이고 독립적인 오리토에게 점점 마음을 빼앗긴다. 아나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일본인인 오리토와 네덜란드인인 자신이 이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현실 때문에 괴로워한다.

혼자 속앓이를 하던 야코프는 긴 망설임 끝에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쓰고, 오가와 통역관에게 전달을 부탁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오리토의 아버지가 빚을 남긴 채 세상을 뜨면서 오리토는 에노모토의 산사에 팔려가는 처지가 됐다. 시라누이산 협곡에 자리한 에노모토 승정의 산사는 겉으로 보기엔 일반적인 신사와 별다를 바 없지만, 사실은 기형이나 흉터가 있는 여성들을 모아놓고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곳이다.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64)는 "미첼의 책을 처음 읽고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휩쓸려가는 기쁨을 느꼈다"고 평했다.

미첼은 어느 인터뷰에서 "다른 무엇보다 인간에 천착하는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예술은 사람에 대한 것이지, 실험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송은주 옮김, 1권 548쪽 1만5800원·2권 292쪽 1만3800원,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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