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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강요셉 "음 이탈, 그런 소리가 더 호소력 있을 때도"

등록 2019.05.06 06: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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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놀드' 역 테너, 하이C 28번 이상

10~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 '윌리엄 텔'

강요셉 ⓒ국립오페라단

강요셉 ⓒ국립오페라단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오페라 마니아들은 올해 성탄 선물을 미리 받는 기분이다. 드디어 테너 강요셉(38)의 '아르놀드'를 한국에서 볼 수 있다니.

'아르놀드'는 로시니의 대작 오페라 '윌리엄 텔' 속 주요 캐릭터다. 오페라는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의 마지막 희곡 '빌헬름 텔'이 원작.

13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스위스를 배경으로 독재자의 횡포와 만행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인물 윌리엄 텔과 스위스 민중의 이야기다. 윌리엄 텔이 아들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화살로 떨어뜨리는 '텔의 사과'로 기억된다. 아르놀드는 윌리엄 텔과 함께 오스트리아 폭정에 항거하는 스위스 장군이다.

오페라 '윌리엄 텔'은 1829년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초연했다. 긴 공연 시간과 배역의 기교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세계무대에서도 자주 만나기 힘들다. 특히 아르놀드는 그 중에서도 고난도 배역이다. 테너가 낼 수 있는 가장 고음인 하이C음을 28번 이상 해내야 한다. 이 역을 소화할 수 있는 테너를 구하기가 힘들다는 토로가 세계 오페라에서는 심심치 않게 나온다.

 강요셉은 '윌리엄 텔' 7개 프로덕션에서 아르놀드를 맡았다. 2014년 그라츠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 '윌리엄 텔'로 '2016 오스트리아 음악극장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시원스레 고음을 내뻗는데, 당당하면서 맑은 목소리로 객석을 압도했다.

국립오페라단이 10~12일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내 초연하는 '윌리엄 텔'에서 강요셉이 연기하는 아르놀드를 만나는 것 만으로도 국내 오페라 팬들에게는 호사다. 강요셉에게는 이번이 8번째 '윌리엄 텔' 프로덕션이다.

 아르놀드를 소화할 수 있는 테너가 있음에도 이제야 '윌리엄 텔'을 만나게 됐다. 일제강점기 3·1운동의 정신과 일제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념을 떠올리게 한다. 국립오페라단이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100주년을 맞은 올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다.
국립오페라단 '윌리엄 텔' 연습 중인 강요셉 ⓒ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 '윌리엄 텔' 연습 중인 강요셉 ⓒ국립오페라단

이번 국립오페라단 프로덕션의 시대적인 배경은 윌리엄 텔의 전설이 탄생한 13~14세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1919년으로 설정했다.

강요셉은 "'윌리엄 텔'은 한국에서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작품이었요. 한국 초연을 함께 하게 돼 정말 기뻐요"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처음 아르놀드를 맡게 됐을 때는 멋 모르고 했어요. 표현할 것이 많았는데 단조롭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2015년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에서 했을 때가 가장 원숙했던 것 같아요."

이번 한국 초연에서는 "내용적으로 더 고민해나가고 있어요"라고 했다. "드라마틱한 무게감에 대해 고민하고 있죠. 중후반까지 어느 쪽에 서느냐 계속 고민하는데, 그런 부분을 많이 염두에 두고 있어요."

이번 한국 프로덕션은 탄압을 받는 것을 주로 그린 해외 프로덕션보다 자유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봤다. 강요셉은 개인적으로는 갈등하는 부분에서 멋있는 척하기보다, '임팩트 있게' 망가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강요셉은 탁월한 노래 실력을 자랑하지만, 이는 연기로 수렴된다. 단지 고음을 잘 내서 아르놀드를 맡은 것이 아니다. "연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노래할 때 감정이 살아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중에 레코딩을 들어보면, 음이 이탈한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완성되지 않은 소리가 감정적으로 더 와닿을 때가 있죠. 흐느끼는 감정의 표현이 극에 더 잘 어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2015~16 강요셉이 출연한 함부르크 국립극장 '윌리엄 텔' ⓒBrinkhoff/Mögenburg

2015~16 강요셉이 출연한 함부르크 국립극장 '윌리엄 텔' ⓒBrinkhoff/Mögenburg

강요셉은 고음만 잘 낸다고 노래를 잘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위와 아래의 밸런스, 즉 높은 음과 낮은 음의 균형이 중요해요"라고 강조했다.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를 졸업한 강요셉은 2001년 쾰른 국립극장에서 '장미의 기사'의 이탈리아 가수 역으로 데뷔했다. 이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독일 베를린 도이치 오퍼 주역가수로 발탁됐다. 특히 2013년 12월 빈 국립오페라극장에 세계적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와 호흡을 맞춰 '라 보엠'으로 깜짝 데뷔, 세계 오페라 무대의 스타로 급부상했다.

미국의 세계적인 클래식 매니지먼트사인 젬스키 그린과 계약, 미국 오페라 무대에 진출했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베를린 도이치오퍼, 네덜란드 국립극장, 빈 국립극장, 드레스덴 젬퍼오퍼, 뮌헨 바이에른 국립극장, 함부르크 국립극장 등 세계적인 오페라 무대에 올랐다.

국내 무대에서는 2012년 국립오페라단 창단 50주년 기념 정명훈 지휘의 '라 보엠'에서 로돌포 역으로 주목받았으며 2014년 '라 트라비아타'에서 알프레도 역으로 열연했다. '윌리엄 텔'로 국립오페라단과 5년 만에 다시 작업한다.

이처럼 세계를 누비는 강요셉이지만, 마흔을 넘어서면서 고민이 많아졌다. "몸도 생각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부딪혀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이제는 여러 생각을 같이 해요. 결혼을 하고 가정이 생기니, 직업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고요."
강요셉 ⓒ국립오페라단

강요셉 ⓒ국립오페라단

작년 12월에는 뉴욕에서 성대폴립 수술을 받고, 치료를 병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긍정주의자답게 연기, 음악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지금 하는 고민들이 제 연기에도 도움이 됩니다. 뉴욕에서는 목 치료를 받으며, 오랜만에 가방을 메고 학생처럼 지냈어요. 힘들었지만 재미있었어요. 제가 언제 쉬면서, 제 것을 만들어나가겠어요. '윌리엄 텔'은 수술 이후 복귀작이라 더 기대가 커요. 하하."

남자 성악가는 40대가 넘어가면서 또 한번 변성기를 겪는다는 얘기가 있다. 강요셉은 여기에 맞춰 레퍼토리도 신중하게 조절하고 있다. 9월 빈에서 예전에 했던 '호프만 이야기'를 한번 더 한다.

언젠가 해야 할 작품으로는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를 꼽았다. "'일 트로바토레'도 '윌리엄 텔'이랑 비슷해요. '하이C'가 나오고요. 그런데 한 10년 후쯤에 하고 싶어요. 아직은 이르다는 생각이 들고, 더 공부를 해야죠. 무조건 욕심 내는 것은 옳지 않아요. 몇년을 내다보고, 열심히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요셉은 오래 노래할 수 있는 '현명한 성악가'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번 '윌리엄 텔'에서 텔 역은 바리톤 김동원과 김종표가 나눠 맡는다. 아르놀드는 강요셉과 함께 독일 브레멘 극장 전속가수로 활동 중인 테너 김효종이 번갈아 연기한다. 아르놀드와 금지된 사랑에 빠지는 마틸드 역은 강요셉이 극찬한 소프라노 세레나 파르노키아 그리고 정주희가 맡는다.

작년 국립오페라단의 '마농'으로 호평을 받은 지휘자 제바스티안 랑 레싱이 다시 지휘봉을 잡고, 불가리아 출신 베라 네미로바가 연출한다. 국립합창단, 그란데합창단,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힘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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