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태권도 유일 출전' 주정훈, 값진 동메달…"할머니, 이제 그만 자책하세요"
[지바현(일본)=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 3일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메세홀 B에서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 남자 태권도 75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대한민국 주정훈(붉은색)이 러시아 패럴림픽위원회 이살디비로프와 대결해 동메달을 획득, 환호하고 있다. 2021.09.03. [email protected]
주정훈은 3일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메세홀 B에서 열린 도쿄패럴림픽 태권도 -75㎏급(K44) 동메달결정전 '세계 5위' 마고메자드기르 이살디비로프(러시아패럴림픽위원회)와의 리턴매치에서 24-14로 승리했다.
태권도 종주국 한국의 유일한 패럴림픽 국가대표로서 첫 메달을 목에 걸며 자존심을 지켜냈다.
주정훈은 16강에서 이살디비로프와 접전 끝에 31-35로 석패한 후 8강 패자부활전에 나섰다.
첫 패배의 충격을 딛고 심기일전, 승승장구했다. 2015년 터키 삼순세계장애인태권도선수권 준우승자, 파티흐 셀리크(터키·세계 7위)에게 40-31로 완승하며 패자 4강에 올랐다.
패자 4강에선 아불파즈 아부잘리(아제르바이잔·세계 9위)에게 46-32로 완승했다.
주정훈은 승자 준결승에서 멕시코의 후안 디에구 로페즈에게 12-14로 패하고 동메달 결정전에 나선 이살디비로프를 다시 마주했다. "첫 경기 때는 즐기자는 마음으로 집중하지 못한 면이 있다. 패럴림픽 메달이 걸린 경기다. 진지하게 임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주정훈은 1회전부터 작정한 듯 강공으로 나섰다. 3연속 몸통차기에 성공하며 6-0으로 앞서나갔다. 격렬했던 패자 4강 혈투 승리 직후 "내 오른다리는 지금 내 다리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그의 절실한 발차기엔 거침이 없었다.
[지바현(일본)=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 3일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메세홀 B에서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 남자 태권도 75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대한민국 주정훈(붉은색)이 러시아 패럴림픽위원회 이살디비로프와 대결을 마친 뒤 포옹하며 감격스러워하고 있다. 2021.09.03. [email protected]
메달이 결정되는 3회전 만신창이가 된 다리로 주정훈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이살디비로프가 몸통차기로 따라붙었지만 45초를 남기고 주정훈의 3연속 발차기가 맞아들며 24-14 완승을 거뒀다.
태권도 K44체급 경기는 한쪽 혹은 양쪽 손목 절단 선수가 출전하는 종목이다. 주먹 공격이 금지되고 모든 공격은 발차기만 가능하다.
주정훈은 이날 출전한 4경기 중 3경기에서 30득점 이상을 기록했다. 상대의 몸통을 노리는, 현란한 발차기 공격은 눈부셨다. 투혼의 주정훈은 눈부신 '닥공'으로 종주국 태권도의 진수를 보여주며 첫 패럴림픽 첫 메달의 역사를 완성했다. 오전, 오후 2차례 맞붙은 러시아 상대가 주정훈을 향해 엄지를 번쩍 치켜들며 "챔피언!"을 외쳤다.
주정훈은 태어난 직후 맞벌이하던 부모님 대신 할머니와 함께 지내다 두 살 때 소여물 절단기에 손목을 넣는 끔찍한 사고를 겪었다.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던 할머니는 3년 전부터 치매 투병중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주정훈은 "저를 못 알아보신다. 아마 내가 태권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실 것"이라고 가슴 아픈 사연을 털어놨었다.
비범한 재능으로 비장애인 전국대회에서 8강, 4강에 오르며 기대를 모았으나 사춘기 시절 경기장에서 쏟아지는 주변의 시선에 상처를 받고 고등학교 2학년 때 태권도의 꿈을 내려놓았다.
[지바현(일본)=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 3일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메세홀 B에서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 남자 태권도 75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대한민국 주정훈(붉은색)이 러시아 패럴림픽위원회 이살디비로프와 대결해 동메달을 획득, 환호하고 있다. 2021.09.03. [email protected]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주정훈은 "이제 상처를 당당히 드러낼 수 있다. 태권도로 돌아오길 잘했다"며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세계에서 3등 했다.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부모님도 아들 자랑을 많이 하시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부모님과 함께 메달을 들고 할머니를 뵈러 갈 것이다. 할머니가 저를 못 알아보시더라도 손자가 할머니 집에서 다치긴 했지만 할머니 덕에 이 대회에 나올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할머니가 제가 자라면서 한탄을 많이 하셨다. 우리 손자 너무 잘 컸는데 나 때문에 이렇게 다쳤다고 자책하셨다. 이젠 그 마음의 짐을 덜어드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이제 주정훈은 2024 파리패럴림픽 금메달을 바라본다. "파리패럴림픽 경기장을 미리 찾아봤다.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은 가장 많이 노력한 사람이 가져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파리에선 저도 1등을 할 수 있도록 죽어라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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