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크로스로드

[정문재의 크로스로드]정의(正義)로 포장된 독선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등록 2013-11-26 06:59:25  |  수정 2016-12-28 08:25:24
associate_pic
종교적 신념은 이단 증오로 이어져 세계 곳곳에서 숱한 대학살 일으켜 일부 종교인들의 일방 통행식 독선 우리 사회의 분열과 증오를 부추겨

【서울=뉴시스】정문재 부국장 겸 경제부장 = 신념은 때로는 파괴적이다. 종교적 신념은 더욱 그렇다. 다른 생각을 이단으로 간주한다. 이단은 악(惡)의 축이다. 무자비한 박해의 대상이다. 핍박은 거센 반발과 증오를 낳는다. 상대방의 파멸이 최고의 목표로 자리잡는다.

 독일은 1941년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한 후 유고 연방을 해체했다. 교황 비오 12세는 쾌재를 불렀다. 600여 년 만에 십자군전쟁을 재개할 때라고 생각했다. 발칸 반도에 순수한 가톨릭 국가를 세울 기회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크로아티아의 스테피나크(Stepinac) 대주교와 극우 민족주의 단체 '우스타샤(봉기)'를 이끄는 파벨리치를 적극 지원했다.

 스테피나크 대주교는 1941년 4월 14일 나치의 발칸반도 점령을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하느님은 우방국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와 우리의 지도자 파벨리치로 하여금 무력으로 우리의 압제자를 쫓아내도록 인도했다. 하느님께 영광을! 아돌프 히틀러에게 감사를! 파벨리치에게 무한한 충성을!"이라고 외쳤다.

 파벨리치는 종교적·민족적 순결을 추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곧 다른 민족이나 종교에 대한 대대적 박해를 의미했다. 나치즘을 모델로 파시스트 국가를 세우는 게 궁극적 목표였다. 

 파벨리치는 순수한 가톨릭 국가 건설에 필요한 제도를 도입했다. 모든 공공기관에서 가톨릭 교리를 준수하도록 의무화했다. 정부와 학교에서 비(非)가톨릭교도는 하나도 빠짐 없이 쫓아냈다. 세르비아인들이 사용하는 키릴 문자로 성경이나 책을 발행하는 것을 금지했다. 가톨릭 신자가 유태인 등 이교도와 결혼하는 것도 금지했다. 모든 공공시설 입구에 '세르비아인, 유태인, 집시, 개는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세워 놓게 했다. 

 종교적·민족적 순결을 지키려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인종 청소 작업도 병행했다. 파벨리치 정부는 이것을 '위험인물(Undesirables) 제거 작업'이라고 불렀다. 위험인물은 세르비아인, 유태인, 집시 등 비(非)가톨릭교도를 가리켰다. 파벨리치는 "세르비아인들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위험인물들을 청소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 당시 크로아티아 인구는 670만 명에 달했다. 크로아티아인은 330만 명, 세르비아인은 200만 명, 이슬람은 70만명, 유태인은 4만5000명에 달했다. 파벨리치 정부는 이교도 가운데 1/3은 살해, 또 다른 1/3은 추방, 나머지 1/3은 개종 대상으로 분류했다.

 인종 청소를 위해 그라디나(Gradina) 등 6곳에 강제수용소를 세웠다. 1941년 12월부터 그 이듬해 2월까지 4만 명의 세르비아인들을 처형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효율성은 높아졌다. 42년 6월부터 8월까지 처형된 세르비아인들은 6만6,000명으로 늘어났다. 여기에는 2,000명의 어린이들도 포함됐다.

 상당수 가톨릭 사제와 수사들이 사형 집행을 주도했다. 1941년 대학살을 주도한 것은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의 투고미레 솔도 수사였다. 보지다르 브랄로우 신부는 180명의 세르비아인들을 기관총으로 사살한 후 시신을 쌓아놓고 그 앞에서 춤을 췄다.

 1942년 예세노비(Jesenovie) 수용소에서는 '목 자르기 대회'까지 열렸다. 정해진 시간 안에 가장 많은 세르비아인의 목을 베는 시합이었다. 우승자는 '페테르 브르지카'라는 프란치스코 신학교의 교회법 교수였다. 그는 1,360명의 목을 베 금시계를 우승 상품으로 받았다. 이들은 독선과 광기(狂氣)를 '정의(正義)의 실천'이라고 자부했다.

 독일군조차 이들의 잔인함에 혀를 내둘렀다. 크로아티아 주둔 독일군 사령관 에드문트 글라이제 폰 호르슈테나우가 "크로아티아인들이 미쳐 날뛰고 있다"고 히틀러에게 보고했을 정도다.

 증오는 확대 재생산된다. 세르비아인들은 아들과 딸에게 크로아티아 가톨릭 교도들의 만행을 잊지 말라고 가르쳤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1989년 세르비아 대통령으로 선출되자마자 발칸반도를 '인간 도살장'으로 만들었다.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의 발언이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정권은 물론 국가마저 부정하는 듯한 발언으로 평범한 사람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종교인은 흔히 영적인 지도자로 불린다. 지도자는 권위와 존경의 상징이다. 그래서 언행은 신중해야 한다. 분열, 갈등, 증오를 부추긴다면 지도자로서는 결격 사유다.

 가톨릭은 교황의 무오류성(infallibility)을 내세운다. 하지만 가톨릭 외부에서는 이런 무오류성이 끊임없는 비판의 대상이다.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들도 마치 자신들의 무오류성을 확신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더욱 더 섬뜩함을 느낀다. 크로아티아 전역을 피로 물들인 신부들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들도 독선과 광기를 '정의'라는 단어로 포장했다.

참고문헌 1) Williams, Paul. 2003. The Vatican Exposed. New York: Prometheus Books. 2) Ante Pavelić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헤드라인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