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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소녀시대, 콧대세우고 금테둘렀더니 통했다

등록 2010.09.18 10:11:00수정 2017.01.11 12: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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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ㅁ

【서울=뉴시스】이문원의 문화비평

 여성 아이돌그룹 소녀시대의 일본 데뷔 싱글 발매 첫 주 순위가 나왔다. 4위.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순위가 아니라 판매 수치다. 오리콘 차트에 따르면 소녀시대 데뷔 싱글 ‘지니(Genie)’는 발매 첫 주 4만4907장을 판 것으로 드러났다. 싱글을 첫 주에 이 정도 이상으로 팔 수 있는 여성 아이돌그룹은 일본에서도 AKB48과 퍼퓸 정도다. 일본 데뷔와 함께 ‘3위권’ 여성 아이돌그룹이 된 셈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같은 결과는 일정부분 실망감도 안겨주고 있다. 소녀시대에 대한 일본 미디어의 관심이 가히 현상적으로 뜨거웠던데 비해서는 다소 시시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장 시청률 높은 뉴스 프로그램 NHK ‘뉴스워치9’에서 첫 머리 보도로 만들어주고, 아침 와이드 쇼에서 연일 극진히 다뤄줬음에도 4위, 4만4907장은 너무 빈약한 결과라는 것이다.

  또한 시부야의 대형 광고탑을 차지하고, 시부야 타워 레코드는 물론이고 바로 옆 카페까지 온통 소녀시대로 치장하는 등 홍보 총력전을 펼친데 비해서도 밋밋한 결과인 건 맞다. 미디어 관심도와 홍보 폭풍만으로 볼 때 8만 장, 아라시 신보에 이은 2위라는 것이 2ch 등 일본 네티즌들의 일반적 예상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소녀시대의 일본 초반 성적은 ‘기대 이하’라는 평가가 맞을까. 엄격히 말해 그렇게 보기는 힘들다. 소녀시대에 대한 드높은 기대는 주로 미디어 버블 탓에 일어난 일종의 착시현상이었다. 소녀시대는 사실상 놀라운 수준의 판매량을 올린 것이 맞다. 애초 마케팅 자체가 일본 시장 내 분위기와 잘 맞지 않는, 일종의 도박이었기 때문이다.

 소녀시대와 비슷한 시기 공식 데뷔 싱글을 내놓은 또다른 여성 아이돌그룹, 카라를 예로 들면 쉽다. 지난 8월11일 첫 공식 싱글 ‘미스터’를 내놓은 카라는 첫 주 5위, 2만9238장 판매라는 기록을 세웠다. 소녀시대 진출 이전까지 한국 뮤지션의 데뷔 싱글 첫 주 판매량 최고기록이었다. 일본 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로 비쳐졌다.

 그러나 카라의 일본 진출 방식은 소녀시대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카라는 일본 첫 쇼케이스를 지난 2월7일 열었다. 데뷔 싱글 발매로부터 6개월도 더 전에 시도한 것이다. 이후 수차례의 악수회를 열고, 막상 데뷔 직전에는 공식 쇼케이스는 물론 시부야 중심가에서 게릴라 쇼케이스까지 여는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벌였다.

 이렇듯 대중과의 접점을 넓히고 거리를 좁히는 마케팅 활동은 일본 시장에서 매우 흔하게 쓰는 방식이다. 일본 아이돌산업은, 특히 데뷔 시기에는, 기본적으로 관계 마케팅 중심으로 마케팅 활동이 이뤄진다. 관계 마케팅은 고객 등 이해관계자와의 강한 유대관계를 형성, 이를 유지해가며 발전시키는 마케팅을 가리킨다. 기존 판매위주 거래지향적 개념에서 탈피, 장기적으로 고객과 경제·사회·기술적 유대관계를 강화한다는 개념이다.

 말은 어렵지만, 액면 그대로는 쉽다. 오랫동안 친숙하게 다가서고,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환심을 사며, 무엇보다도 ‘가까이 다가선다’는 것이다. 그런 ‘살가움’을 일본 대중은 즐긴다. 이를 방증하듯 이 같은 방식은 옛 다카라즈카 가극단에서부터 지금의 AKB48까지 모두 먹혀들어가고 있다. 매일 도쿄 아키하바라 소재 공연장에서 공연을 펼치는 AKB48도 예나 지금이나 캐치프레이즈는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다.

 그러나 카라가 이렇게 ‘정석’을 꿴 반면, 소녀시대는 아예 일본시장 분위기에 역행하는 마케팅을 펼쳤다. 소녀시대의 마케팅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이른바 ‘고급화 마케팅’으로 분류할 수 있다. 또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압제적 마케팅’이다. 일본 대중에 친숙하게 다가설 생각을 버렸다. 대신 어마어마한 물량으로 시장을 압제하려는 의도를 보여줬다.

 소녀시대의 마케팅 활동은 8월25일, 일본 공식 데뷔로부터 불과 2주 전 도쿄 아리아케 콜로세움에서 2만2000여명을 끌어 모은 어마어마한 쇼케이스로 시작됐다. 팬서비스가 따로 있지도 않았다. 앙코르도 받아주지 않고 악수회 같은 것도 없었다. 짧은 쇼케이스 뒤에는 아예 일본을 떠났다. 그리고는 싱글 발매 직전 다시 일본을 찾아 대형 방송사 중심으로 라이브 무대를 한두 번 펼친 게 다다. 첫 싱글 위클리 기록이 나온 현재까지 소녀시대 본인들이 일본 시장에 들인 기간은 많아야 5일을 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소녀시대는 비싸다’는 것이다. 친숙함보다는 고급스러움, 상위 상품의 이미지를 풍기려 애썼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아이돌 천국 일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가끔씩 자니스 소속 남성 아이돌 등 몇몇 이들이 이 같은 고급화 마케팅을 펼치곤 하지만, 이미 자니스 주니어 시절 등을 통해 대중과의 접점을 넓힌 상황에서 데뷔하는 것이어서 소녀시대와의 직접적 비교는 힘들다.

 소녀시대의 일본 진출 방식은 사실상 머라이어 캐리나 마돈나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의 그것에 가깝다. 여타 아시아 국가에서 이런 종류의 마케팅을 펼친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 그러나 문제는, 소녀시대의 극단적 고급화 마케팅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도록 제시한 명분에 있다. 소녀시대는 일본 진출 내내 ‘아시아 넘버1 그룹’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날렸다. 그를 통해 ‘마침내 일본마저도 정벌하러 온다’는 식의 압제적 마케팅 인상까지 남겼다. 이런 인상 탓인지 일본 대중문화월간지 일경 엔터테인먼트 최신호는 한국 여성 아이돌그룹의 일본 진출을 ‘흑선(黑船)’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흑선’은 에도 막부 말기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끌어 일본에 개항을 요구한 함대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같은 캐치프레이즈는 사실상 허랑한 것이었다. 아시아 내에서 일본만큼 자신들이 ‘아시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라도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개화기 초기부터 탈아입구( 脱亜入欧), 즉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 사회를 지향한다’는 방향성을 기조로 삼은 나라다. 실제로 자신들을 아시아와 서구 사이 징검다리 격 존재라 생각하며, ‘아시아를 뛰어넘은 아시아’라는 식으로 파악한다. 이런 풍토가 있는 시장에 ‘아시아 넘버1’이라는 캐치프레이즈만큼 무의미한 것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후진적 이미지만 풍기게 된다.

 이제 논점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설정될 필요가 있다. 카라의 성공은 그렇다 치자. 일본 시장에 잘 적응한 상태고 몇몇 규칙들을 충실히 따랐으며 그만한 성과를 얻은 경우다. 그러나 소녀시대는 전혀 다르다. 한 마디로 ‘해선 안 될 짓’만 연달아 했다. 각도 나오지 않고 이치에도 안 맞는 마케팅 활동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어낸 결과가 발매 첫 주 4만4907장 판매, 데뷔 즉시 ‘3위권’ 여성 아이돌그룹 입성이라는 것이다. 저 허랑한 캐치프레이즈로도 고급화 마케팅에 성공한 경우다. 그리고 이는 그만큼 소녀시대라는 대중문화상품의 매력이 일본 시장에서 상당 수준에 이른다는 얘기기도 하며, 실질적으로 한국 여성 아이돌그룹을, 적어도 그 팬층의 중심인 10~20대 여성층 내에서는, 이미 ‘고급상품’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거부감이 없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한국 여성 아이돌그룹 열풍이 ‘이미지 거품’이라는 지적을 내놓기도 한다. 얼핏 말은 된다. 현 시점 일본 청년층 전체를 놓고 볼 때, 남성층은 점차 초식남(草食男)화 돼가는 반면 여성층은 반대급부로 육식녀(肉食女)화 돼가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육식녀들은 점차 자신의 성적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여성, 그러면서도 귀여움과 강인함을 동시에 지닌 슈퍼우먼을 선호하고 있다.

 문제는 남성 오타쿠 팬층을 타깃으로 삼은 일본 여성 아이돌그룹 콘셉트 내에선 이들의 요구를 채워줄 만한 상품이 극히 드물고, 대신 한국에는 이런 콘셉트가 수년 전부터 대세로 자리 잡았으므로, 수요와 공급의 일시적 불일치 상황을 해외 상품인 한국 여성 아이돌그룹이 채워주고 있다는 논리다. 그리고 ‘일시적’이라는 단어가 드러내듯, 일본이 이런 콘셉트를 제대로 받아들여 자국 내에서 소화시키기 시작하면 ‘한국 여성 아이돌그룹 붐’은 곧 끝나버리리라는 예상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것도 아니다. 한국 여성 아이돌그룹 붐은 단순히 ‘이미지 콘셉트’에만 기인했다 보기 힘들다. 예컨대 카라의 ‘미스터’는 발매 첫 주 3만장 가까운 판매량을 올렸지만, 일반 아이돌그룹 패턴으로 볼 때 첫 주 판매량의 1.5~1.8배 총판매량, 즉 5만장 내외의 최종성적을 올리리라 예상됐었다. 그러나 ‘미스터’는 9월 3째 주 현재까지 6만3000장 이상을 판매하고 있고, 최종 판매량은 8만장대로 예상되고 있다. 일반 아이돌그룹 싱글 판매 패턴에서 벗어난 것이다.

 소녀시대도 마찬가지다. 발매 첫 날 데일리 5위에 머물렀지만, 이후 4위, 2위로 차츰 치고 올라갔다. 그러더니 신보들이 쏟아져 나온 9월15일에도 데일리 6위를 차지하는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신보들을 제외하고 나면 바로 전 주 2, 3위를 차지한 여타 뮤지션들을 제치고 아라시에 이어 2번째가 된다. 여기에 ‘CD씩이나 사주는’ 열혈팬 층 외 일반 대중 반응을 엿볼 수 있는 아이튠스 뮤직비디오 랭킹 등은 아예 카라와 소녀시대가 연이어 1위를 차지하며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의 중심은 하나다. 단순한 이미지 콘셉트보다도, 한국 아이돌 음악이 어느 샌가 갖춰버린 변별성, 독보성, 그리고 높은 퀄리티가 일본 대중에게도 인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아이돌그룹이라는 상품 분류 내에서 ‘고급상품’이라는 인식이 실질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오히려 발매 초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중설득과 팬층 확보가 더 수월해지는 것이다. 단순히 이미지 콘셉트 차원이라면 일본도 얼마든지 유사상품을 내놓아 시장을 대체시킬 수 있지만, 이것이 독특한 문화 풍토에서 나온 특징과 퀄리티 차원으로 옮아가면 사실상 답이 없어진다. 이것이 ‘한국 여성 아이돌그룹 붐’이 예상 밖으로 오래 지속되리라 관측되는 까닭이다.

 이제 답은 다 나와 있다. 한국 여성 아이돌그룹은 가장 흔들리기 어려운 ‘고급상품’ 콘셉트로 당당히 일본 시장 내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시장 자체가 그것을 요구한다. 대중문화시장에 있어 민족주의적 특성이 지극히 희박한 일본 시장은, 현재 동맥경화에 걸려있는 일본 대중음악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서라면 한국 ‘흑선’의 침입 정도는 얼마든지 태클 걸지 않고, 오히려 독려할 가능성이 높다.

 이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류 드라마처럼 도떼기시장 장사로 망쳐버릴 생각 말고, 일본이 시장 대체를 본격적으로 꾀하기 전 한국 대중음악상품에 대한 대중적 신뢰도를 굳건히 쌓아 지속 가능한 시장 파이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 진출에 출사표를 던진 수많은 여성 아이돌그룹들, 그리고 향후 진출 계획을 갖고 있는 여타 여성 아이돌그룹들, 나아가 한국 아이돌산업 전체의 건투를 빈다.

 대중문화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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