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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81세 일본 목사, 위안부 소녀상 앞에 무릎 꿇다

등록 2012.02.13 14:08:04수정 2016.12.28 00: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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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동욱 기자 = 13일 오전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평화비에서 1970년대 '청계천 번민의 성자'였던 일본인 노무라 모토유키(81) 목사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사죄의 연주를 하고 있다.  fufus@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우 기자 = 13일 오전 10시40분께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앞에 백발노인이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은 이는 1970년대 청계천 등에서 빈민 구제 활동에 펼쳐 '청계천 빈민의 성자'라고 불렸던 일본인 노무라 모토유키(81) 목사. 

 그는 전날 여수에서 열린 고(故) 제정구 선생 13주기 추모행사를 위해 방한했다가 과거 일본강점기 피해자들에게 사죄 의미를 담아 플루트 연주를 하기 위해 소녀상을 찾은 것이다.

 80대 노인인 노무라 목사는 한겨울 추위에도 점퍼를 벗고 상의만 입은 채 오전 11시12분까지 30여분간 연주를 했다.

 그는 잠시 서서 기도를 한 후 '봉선화'를 시작으로 연주를 시작했지만  2~3분이 지나지 않아 눈물이 터져 연주를 멈췄다.

 노무라 목사는 서서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눈물을 흘리다 소녀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은 채 절을 하는 그는 터져 나오는 신음을 막기 위해 손수건으로 입을 가렸고 감정이 북받친 듯 어깨까지 흔들렸다. 눈도 붉게 충혈돼 있었다.

 노무라 목사는 들고 온 장미꽃 한 송이를 소녀상 앞에 바치고 2~3분이 지나서야 겨우 감정을 정리한 듯 일행의 부축을 받고 일어났다.

 그는 다시 '진혼가'와 '우리의 소원'을 연주한 후 '애국가'를 연주하려 했으나 악보를 찾지 못해 실패했다.

 한국인 일행은 "(노무라 목사의 행동이) 쇼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노무라 목사는 당초 소녀상 앞에 도착했을 때 취재진에게 한국어로 "나는 뮤비스타가 아닙니다. 돌아가세요"라며 취재를 거부했다.

 그러나 연주가 끝나고 그는 통역을 매개로 "개인적으로 왔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다섯살 때부터 (일본인에게 조선인들이)조센징이라고 차별받는 것에 대해 마음 아팠다"며 "75년간 생각했고 이런 마음으로 오늘 연주하고 싶었다"고 연주 의미를 설명했다.

 또 "얼마나 살지 모르겠다"며 청계천에서 빈민구제활동을 했고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여기서 이런 연주를 하고 싶었다"고도 덧붙였다.

 노무라 목사는 봉선화를 선곡한 이유는 "위안부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연주를 했다"며 "일본 침략이 없었다면 이런 노래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일본내 반응이 부정적일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이번 일로 대사관에 블랙리스트로 올라갈 수도 있다고 각오했다"면서도 "일본 사람으로서 당연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1970~1980년대 서울 청계천과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제 의원과 함께 빈민구제사역을 했다. 14일에는 당시 청계천 관련 사료가 전시된 서울역사박물관을 찾을 예정이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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