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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리뷰]미니멀리즘 미학, 바로 이런 것…연극 '스테디 레인'

등록 2014.01.26 08:45:00수정 2016.12.28 12: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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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연극은 상상을 먹고 산다.  시·공간이 제약된 만큼 배우와 관객은 가상의 설정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내러티브가 성립된다.  연극 '스테디 레인'은 미니멀리즘을 통해 이러한 성향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대사와 독백 만으로 이뤄진 2인극이다.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연극은 상상을 먹고 산다.

 시·공간이 제약된 만큼 배우와 관객은 가상의 설정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 내러티브가 성립된다.

 연극 '스테디 레인'은 미니멀리즘을 통해 이러한 성향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대사와 독백 만으로 이뤄진 2인극이다. 철장과 테이블, 의자 두개, 무대도 최소화했다. 등장인물의 심리를 이해하도록 돕는 음악과 조명 사용도 거의 없다. 그럼에도 100분짜리 한 편의 누아르 영화를 보는 듯한 묘를 발휘한다.  

 작가 키스 허프가 극본을 썼다. 미국 희대의 연쇄살인마 제프리 다머의 실화를 차용했다. 정의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두 경찰관 '대니'와 '조이'가 주인공이다. 대니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법과 규율은 무용지물이라고 믿는다. 이는 비극으로 질주하는 폭주의 근원이다. 반면, 조이는 비전 없이 술로 반복되는 지리멸렬한 일상을 버텨낸다.

 절치한 죽마고우이자 경찰 파트너인 두 사람은 자신들 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려 한다. 그러나 비극적인 운명으로 인해 서로에게 말려들어간다.  

 극에서 그려지는 시카고는 사방이 늪지대인 범죄의 도시다. 이곳에서 아등바등하던 이들의 필연적 몰락을 그리는데 누아르만큼 어울리는 장르는 없다.

 이 모든 것을 대화와 독백으로 담아낸다는 사실이 가장 놀랍다. 인종차별은 물론이고 말을 내뱉을 때마 욕설이 뒤엉키는 이탈리안 미국인 대니는 전형적인 마초다. 반면, 조이는 섬세하고 다정다감하며 내성적이다.

 기질이 반대인 두 남자가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대사로 벌이는 신경전은 화학 작용을 일으킨다. 대화를 주고 받을 때마다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그려진다. 대화의 내용과 형식은 논리와 은유 등 다양하게 변주되며 극의 호흡과 리듬을 조절한다. 특히 두 배우가 서로를 쏘아붙일 때는 어느 서스펜스 영화보다 더 큰 긴장감을 안긴다.

 공연제작사 노네임시어터컴퍼니가 이 작품을 왜 '내러티브 연극'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내놓았는지 수긍이 간다. 이런 점들을 하나둘씩 느끼다보면 어느새 극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스테디 레인'이라는 제목처럼 가랑비라고 대단치 않게 여겼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옷이 흠뻑 젖어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대니와 조이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인 일들이 '나비효과'를 통해 자신들에게 커다란 사건이 돼 돌아왔을 때, 잔혹한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 이 부분에서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없어진다.

 이를 가능케 하는 건 배우들의 대단한 힘이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자베르' 경감 등 주로 강한 캐릭터를 맡아온 대니 역의 문종원(35)은 역시 제 옷 입은 듯 연기한다. 마초로 거칠 것 없었으나 서서히 몰락할 수밖에 없는 대니를 온몸으로 표현한다.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 총체극 '단테의 신곡' 등을 통해 날로 성장하는 기량을 뽐내고 있는 지현준(35)은 한층 섬세해진 내면연기를 선보인다.

 장대한 대본이 바탕인 연극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에서 정수를 뽑아내는 묘를 발휘했던 김광보(50)가 연출을 맡았다. '스테디레인'을 보고 나면, 왜 그가 미니멀리즘의 대가로 통하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할리우드 스타 휴 잭맨과 대니얼 크레이그가 출연한 브로드웨이 연극으로 이번이 한국 초연이다. 할리우드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뮤지컬배우 이석준이 문종원과 대니, 연극배우 이명행이 지현준과 조니 역에 더블캐스팅됐다. 29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볼 수 있다. 4만원. 02-744-4334

 미니멀리즘 통한 상상의 극대화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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